노동운동 약화, 급격한 보수화 초래
마르크스주의와 생태주의 연대 가능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은 노동력을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무산대중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는 처음부터 불평등한 사회다. 이윤추구가 목적이 아닌 모든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된다.”

백발의 노인이 강의실 칠판 앞에서 경상도 특유의 강한 억양으로 청강생들에게 말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오게 된 마르크스 경제학의 권위자 김수행 교수(경제학)다. 구수한 그의 입담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분석과 비판은 날카로웠다. 지난 22일 그를 만났다.


-정년 퇴임 후 어떻게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오게 됐나.

▲서울대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지난 2월 신영복 교수에게서 성공회대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한신대에 있을 당시 박영호, 정운영 교수와 함께 마르크스 경제학을 연구하는 센터를 만들고자 했지만 실패했었다. 성공회대에서는 진보적 센터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 학교 교수들과 같이 하고 싶어 성공회대로 오게 됐다. 아직 이야기가 나온 건 아니지만 마르크스주의 연구소 같은 것을 제안하면 같이 할 용의가 있다. 이를 통해 학문에 기여 하고 싶다.

-서울대 마르크스 전공자 후임에서 보듯 경제학이 미국식 시장경제 논리를 따르는 주류경제학으로 편향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학의 경제학이 주류경제학으로 편향돼 있는 게 서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대학 전부가 그렇다. 해방 이후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가 미국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이 미국 가서 공부해오고 그런 사람이 학문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권력을 독점해 왔다. 대학의 학문은 다양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너무 일방적으로 우파에 치우친 것들만 가르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되는 것만 가치 있다는 시장주의 논리로 결국 학문의 다양성을 훼손할 것이다. 서울대 퇴임 당시 학교의 일방적인 모습에 불만도 있었다.

다른 나라에는 학문의 다양성이 보장돼 있다. 영국의 경우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 경제학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고 있다. 정부에서 지원받은 연구비를 학술지원재단 같은 곳에서 지원해 가능한 일이다. 주류가 아니더라도 학문은 다양성을 가져야 한다. 영국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지방의회를 통해 정책에도 반영되기도 한다. 사회 전체 분위기를 봤을 때 우리나라처럼 시장지상주의가 통하지 않는다. 사고 자체가 자유롭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좌파하면 빨갱이로 보는 사고의 협소함과 경직성이 있다.

학문의 다양성 ‘아쉬움’

-새롭게 부각되는 진보적 가치로 생태주의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어떻게 보나.

▲생태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결합이 가능하다고 본다. 생태주의에는 마르크스적 관점이 많이 있다. 자본가의 이윤추구 행위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윤추구 행위를 버리고 자연이 모든 사람의 쉼터가 될 수 있고, 생활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자본주의를 극복해야만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생태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얼마전 국부론을 재번역 했다. 시장주의자들이 신봉하는 국부론을 번역한 이유는.

▲자본론에서 마르크스가 가장 많이 인용한 게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다. 기존 이론을 흡수하고 비판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기 위해 국부론이 가장 적절했기 때문이다. 국부론은 그 당시 경제학을 집대성한 최초의 저작이었다. 국부론이 출판된 1776년은 절대 왕정 시기로 중상주의가 국가의 주요 경제정책이었다. 중상주의는 국부를 금과 은의 양에 따라 판가름했다. 그래서 절대주의 왕정은 금과 은의 보유를 위해 수출을 증대시키고 수입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아담 스미스는 이런 중상주의 정책이 소수 제조업자나 상인들에게만 이득이 간다고 봤다. 그래서 정부가 경제에 간섭하지 말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기적인 개인의 합리적인 경제행위가 국부를 증대시킬 것이라는 언급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자유방임을 용인한 것은 아니다. 단서를 달았다. 중상주의를 비판하면서 개인에게 맡기되 정의의 범위 안으로 규정했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자에게는 자유를 주지 말라고 말했다. 지금 현실은 어떤가. 신자유주의에 의해 시장 독점이 존재하고 있는데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다른 주장이다.

-현실로 돌아와, 수출은 늘고 있는데 내수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역대 정부는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만 이야기했다. 세계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갖기 위해 임금을 낮추고, 노조를 탄압하고, 비정규직을 양산시켰다. 그 결과 고용사정이 악화되고, 가계소득이 줄어들었다. 소득감소로 소비가 줄어드니 국내시장이 축소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기가 막히는 것은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수출만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 임금을 낮추고 비정규직을 양산시킴으로써 악순환은 계속 되풀이된다. 서민만 불행해질 뿐이다.

-규제완화, 민영화, 감세 정책 등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물건이 팔리게 하려면 서민에게 돈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내수가 살아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제도가 잘 완비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감세를 통해 복지 예산을 삭감하면 돈 없는 서민들만 경제고에 시달리게 된다. 규제완화는 기업 활동에 무제한 자유를 줌으로써 기업의 배만 불릴 뿐 서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규제완화로 기업의 성장을 통해 고용이 늘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대기업은 고용을 계속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파이의 분배’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이를 경제정책이라고 추진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 건설회사 CEO 수준 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미국식 경제가치의 맹점

-강성 노조가 경제성장에 걸림돌이란 일부의 입장에 대해선.

▲북유럽의 경우 노사 간 사회적 합의가 잘 돼 있다. 자본주의가 신뢰에 기반한 합의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그곳에서는 파업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나라처럼 늘 대치하기만 하면 기업가뿐만 아니라 노동자도 힘들다. 그래서 타협이나 협조가 필요하다. 그 기반을 만들어내야 한다. 독일은 노조가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동결정권을 사측이 노동자에게 준다. 노사 간 공동운명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기업 성장에 순효과를 발휘한다. 우리나라는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무리한 요구만 하고 노동자의 요구는 받아주지 않으니 노조가 강력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이랜드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무 이유 없이 해고 당하게 생겼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어야 하는가.

-이명박 정부의 ‘747공약’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는 수출이 경제성장에 주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세계경제 흐름에 상당히 의존해 있다. 거의 종속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와 상관없이 정부의 독자적인 정책만으로 7%의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지금 그 거짓말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4%대의 성장을 바라보고 있다. 수출을 늘리려고 환율을 상승시켰는데 덕분에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 역시나 서민만 괴로워질 뿐이다. 현 상황에서 금리마저 낮추려 했던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물가는 어떻게 잡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서민은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고 오직 수출증대를 통한 경제성장 밖에 말하지 않는다.

7% 경제성장은 ‘거짓말’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미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려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미국 정부가 한미FTA 전제조건으로 미 쇠고기 수입을 요구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30개월 미만 소만 되고, 특정위험물질은 수입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런데 미국이 보기에 이명박 정부는 말이 통할 것 같았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FTA 추진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수출을 늘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부시에게 선물 주듯이 검역주권을 넘겨버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보수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진보의 결집과 역량증대를 위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 이야기가 나오는데.

▲억지로 통합하려는 것보다 사안에 따른 범연대조직이 필요하다. 통합해서 서로 갈등하기 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게 더 낫다고 본다.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차이를 인정하면서 서로 연대하라는 말이다. 특히 노동운동에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80년대 영국의 대처 정부를 보면, 그 당시 정부와 노동자 간 대립이 첨예했다. 그런데 결국 노동운동이 약화되면서 사회가 급격하게 보수화됐다. 지금 우리가 그 기로에 처해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정부와 노조 간 대립이 점차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노조가 정부에게 밀리면 노조운동은 침체에 빠져들 것이다. 노조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아 노조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게 관건이다. 이는 시민운동 또한 예외가 아니다.

김현연 기자

김현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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