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광장서 진리의 불꽃으로 타다

철학여행까페[34]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8.05.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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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브루노가 강의하는 모습.

“목요일 날 아침에 꽃의 광장에서 나폴리 놀라 출신의 그 흉악무도한 도미니코 수도사가 산 채로 불에 태워졌다. 그 매우 고집 센 이단자는 우리의 신앙을, 특히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에 반대하는 여러 가지 다른 교리들을 기분에 따라 제 멋대로 만들어 냈다. 이 흉악무도한 자는 고집스럽게 자신이 만든 교리들을 위해 죽기 원했다. 그는 자신은 순교자로서 죽으며, 그렇게 죽기를 원하며, 자신의 영혼은 화염 속에서 천국으로 올라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이 말한 진리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죠르다노 브루노의 화형

이 글은 죠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의 처형에 대해 당시 로마의 신문 아비시 디 로마Avvisi di Roma가 보도한 것이다. 죠르다노 브루노는 1600년 2월 17일에 로마에 있는 꽃의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 광장 한 복판에는 장작더미가 쌓이고 그 위에 결박당한 죠르다노 브루노를 사람들은 증오와 안타까움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의 입에서는 한 마디의 신음도 호소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십자가를 건네주었을 때에도 그는 달갑지 않은 비웃는 표정으로 말없이 뿌리쳤다. 그렇게 철학자 죠르다노 브루노는 자신의 온 몸을 진리의 불꽃으로 불살랐다.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지키기 위해 결국 화형까지 당한 브루노와 비교되는 사례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경우다. 갈릴레이는 지구가 자전을 하고,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주장해 종교재판소에 회부되었다. 그는 종교재판소에서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주장을 철회하고, 지구가 움직인다는 불경스러운 견해를 다시는 결코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겨우 풀려났다. 그렇게 해서 그가 종교재판소에 빠져 나오면서 한 이야기는 아직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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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코스
갈릴레이는 자신의 신념을 철회해도 우주는 여전히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자연과학자의 입장을 나타낸다. 그러나 죠르다노 브루노는 자연과학자에 다르게 자신이 믿는 신념과 진리를 위해 목숨을 내던졌다. 어쩌면 이것이 자연과학과 철학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죠르다노 브루노는 1548년 이탈리아의 나폴리에 근처에 있는 놀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필리포라는 이름을 버리고 브루노라는 세례명을 받고 15세에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단했다. 그는 24세인 1572년에 신부서품을 받고 나폴리에 있는 성 도미니코 마기오레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하여 1575년에 졸업했다. 그는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수도사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연에 대한 당시의 과학적 연구 성과에 대한 관심을 저버리기 어려웠다.

1576년에 그는 도미니코 수도회와 가톨릭 교회를 떠나야 했다. 왜냐하면 나폴리의 교회에서 그에 대해 130개 항의 고발요목을 제기하여 그를 이단자로 판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1576년부터 1592년 5월 베네치아의 종교재판소에 체포되기 까지 16년간 방랑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처음에 제네바로 갔다. 여기서 그는 스콜라 철학을 옹호하는 권위 있는 철학교수를 논박했다고 해서 1579년 8월 6일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그는 스콜라 철학에 대한 자신의 반대견해를 철회해 곧 풀려 날 수 있었다. 이후에 그는 툴루즈, 파리, 런던, 비텐베르크, 마르부르크, 쮜리히, 베네치아 등 여러 도시들을 전전해야 했다.

그는 어느 도시에서도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가 없었다. 강연이나 강의로 많은 추종자를 모으지도 못했고, 이단적인 그의 책을 출판해 줄 출판업자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그는 베네치아의 귀족 모체니고(Giovanni Mochenigo)로부터 기억술을 가르쳐 달라는 초청을 받고 1591년 8월 베네치아로 갔다. 그는 아마도 귀족 모체니고의 후원을 받아 안정되게 연구와 저술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 다르게 모체니고는 브루노의 사상을 의심해 그를 종교재판소에 밀고해 버렸다. 브루노가 모체니고를 믿고 신의 아들 예수, 삼위일체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생각을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신앙과 학문 구분 주장

모체니고의 밀고로 브루노는 1592년 5월 24일 체포되어 악명 높은 납으로 된 감옥에 갇힌다. 5월 29일 첫 심문이 행해지고, 6월 초 브루노는 과감하게 삼위일체와 인격신을 반대하는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는 신앙과 학문을 구분할 것을 역설했고, 자신은 철학자로서 모든 것을 탐구한 것이지 신앙을 직접 비판한 일은 없다고 역설했다. 같은 해 6월 30일 브루노는 모진 고문에 견디다 못해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자신의 입장을 바꾸겠다고 맹세했으나 이미 화형이 결정되었다. 1599년 1월 14일에 브루노에 대한 8가지 죄목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브루노는 자신은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으며 자신의 견해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그는 1600년 2월 17일 로마 꽃의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형에 처해졌다.

브루노는 도대체 어떤 철학적 입장을 가졌기에 화형이라는 끔직한 형벌을 받은 것일까? 브루노는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을 받아 들여 그것을 자연 형이상학적으로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태양계는 다른 보다 더 큰 체계에 끼워져 있으며, 그 체계는 다시 더 큰 체계에 끼워져 있으며, 우주는 이렇게 끝없이 무한하게 펼쳐진다는 사상을 표방한다. 그리고 그는 우주는 지구에서와 똑같이 거주자가 있는 무한수의 다른 세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또한 그는 개별 세계들은 변화를 시작해서 소멸되는 반면, 우주 전체는 영원하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주는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그 자체가 모든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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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동상.
그는 일체의 사물을 지배하여 여기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을 곧 ‘신’이라 불렀다. 신이란‘전체-일자’로 거기서 모든 존재의 대립은 와해된다. 신은 최대의 것인 동시에 최소의 것으로 무한자인 동시에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미묘한 것이며 가능과 현실을 그 자체 내에 담고 있다. 브루노의 ‘신’에 대한 생각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인격신’이 아니라 사물에 내재한 자연법칙 또는 세계영혼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신과 자연을 일체로 보는 범신론에 가까운 것이다. 브루노는 이러한 학문적 입장에서 인격신, 삼위일체, 성모 마리아에 대한 부정적 주장을 펼쳤다.

‘범신론’의 관점에서 신을 이해하는 브루노의 입장은 기독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일 뿐만 아니라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신의 창조물이지 신과 동격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격신, 삼위일체, 성모 마리아에 대한 브루노의 부정에 대해 교회가 더 이상 그를 놔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화형을 통해 그의 흔적을 지우고자 했던 교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브루노의 사상은 모나드론을 주장한 라이프니츠, 범신론을 주장한 스피노자 등으로 전승되어 여러 사상들로 부활하였다.

정신의 자유지킨 철학자

그가 처형된 광장의 중심에는 1889년에 정신의 자유를 지킨 철학자 죠르다노 브루노를 기려 놓은 기념 동상이 세워 진다. 내가 죠르다노 브루노를 찾아 이 꽃의 광장을 방문했을 때에는 노상 시장이 열려 물건을 구경하고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북적이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기념동상 앞으로 가보니, 누군가 그를 기리기 위해 오래 전에 그의 발밑에 놓고 간 꽃들이 시들은 채 여러 송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동상 옆면에 새겨진 부조를 살피다 보니 누군가 신선한 장미 한 송이를 부조에다 꽃아 놓은 것이 눈에 띠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진리의 불꽃의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타오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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