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를 넘어

[시민운동 2.0] 피재현l승인2008.05.2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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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정치의 작동원리는-맑시즘조차도-금 긋기와 추방하기였다. 이러한 정치의 작동 원리는 최소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산되지 않고 있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유효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적과의 투쟁이며 적의 소유를 내 것으로 만드는 탈취의 과정으로서의 정치의 원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오래도록 장수할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시민운동의 내부에서조차 이 (근대적)정치의 작동원리는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나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상대와의 차이를 극대화하고 논쟁과 대결을 통해 추방한다. 나를 선명하게 하기 위해서 상대를 더욱 선명하고 단일한 것으로 묶어 세워야 하는 반운동적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의 분당이 그랬고, 메워지지 않는 깊은 골을 만들어 두고 있는 많은 시민단체들의 속앓이도 우리가 투쟁의 방법으로 삼았던 이러한 근대적 정치의 방법이 우리 속으로 스며든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운동이 이렇게 적대적이어서는 안될텐데. 사실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은 적대적 대상과 투쟁하여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소유를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적대를 형성하는 구조 자체를 허물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지는 않을텐데.

시민운동은 그 조직(공동체)의 내부에 전위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전위라는 것은 누군가 먼저 그렇게 보여주는 것이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거나 앞장 서 걸어주는 것이다. 대중성이라는 것은 혹은 대중이라는 것은 전위에 의해서 묶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 흐름과 폭발성을 내재하고 있는 도도한 물결이다. 반동적으로 흐르다가도 어느 한 지점 촉발되는 국면에 서면 사회의 흐름을 내용까지도 바꿔내는 민중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운동 속에서는 이 두 가지가 마치 적대적인 것인 양 부딪히기도 하고 종종 당파성 투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당파성은 어느 한 쪽의 입장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주관적이면서 나와 적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서 중간 입장이라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적대적 관점에서 벗어나 한 조직 안에서 전위와 대중이 함께 관계 맺기를 한다면 우리가 공들여 만들고 지속시켜 온 조직은 비로소 대중의 지근거리에 든든한 진지를 구축하며 이끌기도 하고 함께 폭발하기도 하면서 역동적 운동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우리는 인간의 역사에 대해서 새롭게 고민하고 있다. 철학적 접근에서부터 경제적 생물학적 입장에 이르기까지 그동안의 역사를 일별하며 새로운 해답을 찾고 있는 이때에 우리 시민운동은 여전히 대결과 적대의 방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를 바란다면 너 자신이 먼저 변하라는 말이 있다. 인간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해서조차 새로운 사유를 요구하고 있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조차 관계를 맺기는커녕 구분하고 적대시해서 추방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는 사이 탈주자들이 생겨나 수구반동의 정당 앞잡이가 되기도 하고, 스스로를 부정하고 대열에서 이탈하는 사람도 생겨나는 것이다.

탈주와 이탈을 눈앞에서 자주 목도하게 되는 요즘 나는 슬프다. 또한 두렵다. 이렇게 스스로를 분할하고 금 그어서 혼자가 된다면 나는 탈주자가 될 지, 이탈자가 될 지 어떻게 두렵지 않을 수 있는가.
최근에 나는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한 조직이 이러한 딜레마에 빠져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그 조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활동가로서 내가 어떻게 일하고 사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가, 자기 성찰과 자기 혁신을 통해 새롭게 시민운동의 중심에 서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피재현 평화공간 콤 활동가

피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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