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기와 구별짓기

내 인생의 첫 수업[5] 오성규l승인2007.06.0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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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훌쩍 지난 얘기다. 어릴 적부터 나의 운동적 삶에 많은 영향을 준 선배를 시민운동 신출내기 시절에 만났다. 그 때는 시민운동이 웬만한 사회집단보다 훨씬 크게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터였지만 한편으론 시민운동(가)의 권력 지향성, 대안부재, 백화점식 운동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막 던져지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는 마치 내안에 있는 과제인 양 그 문제를 가지고 선배와 얘기를 나누던 차에 내 마음에 큰 무게로 다가온 말을 기억한다.

“중요한 것은 운동의 성과를 어디에 담느냐는 것이다. 개인 운동가나 조직의 성과로 담을 수도 있고, 제도적으로 안착시킬 수도 있을 텐데,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인식에 담지 못하면 한계가 있다”라는 얘기였다.

지극히 당연하고 원칙적인 얘기일 수 있으나, 현실 시민운동에서는 자칫 빗겨가기 쉬운 덕목이다. 기실 우리 시민운동 내에서는 어떤 내용의 운동을 시민들과 어떻게, 얼마나 공감을 이뤄냈는가에 대한 관심보다는 누가, 혹은 어느 단체가 그 운동을 했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아예 리더와 단체를 알리는 것을 운동의 주요목표로 올려놓고 기획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안다.

물론 언론 등 주변의 관심사가 운동내용보다는 사람과 조직에 더 맞춰지는 관행도 한 몫을 했겠지만 그것이 운동의 성과(목표)를 비틀어 놓는 빌미가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제도 도입 자체가 운동의 성과로 설정되는 것 자체도 한계가 있다.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지만 89년에 창립한 경실련은 꾸준하게 ‘토지공개념’ 제도도입을 주장했고, YS정부는 깜짝쇼 하듯 ‘토지공개념 3법’을 제도화 했다. 하지만 YS정부는 준농림지 제도를 만들어서 전국을 난개발 천국으로 만들었고, 97년 외환금융위기 상황에서 정권을 잡은 DJ정부는 토목·건축 경기진작을 위해 토지공개념 3법을 일거에 폐지하고 말았다.

얼마나 허탈한가? 시민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함의 결과는 그랬다. 그 즈음 나는 운동의 얕음은 의도하지 않게 시민들과 구별짓기로 나타나고 그 결과는 심각한 역사의 후퇴를 동반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어쨌건 지금껏 나의 의식은 운동의 성과를 사회화시키는 쪽으로 맞춰져 있다.

그 탓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에 미운털이 박힌 적이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당선되자마자 내친걸음으로 청계천복원 공사에 돌입했고, 주변의 이러저러한 우려에 아랑곳 하지 않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환경정의, 녹색연합 등은 청계천의 물리적 복원도 중요하지만 복원의 과정에서 시민들과 공감하는 사회적 학습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제안을 수없이 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장은 덧없이 사라지고 냉대와 배제만이 되돌아왔다. 이 역시 정치와 행정이 시민들과 공감하기보다는 개인의 정치적 성과에 집착한 결과라 하겠다.

정치가 우리의 희망이지 못한 지금, 우리 시민운동만이라도 민초들에게 희망일 수 있어야 한다. 그 길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크든 작든 운동의 성과를 민초들과 공감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운동의 본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

오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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