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위참가자들의 구성과 그들의 요구사항들을 보면 단순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반대저지를 위한 집단항의의 수준을 넘어선다. 지난달 29일 수입이 고시되고, 재협상이 불가능하다는 뉴스와 주말이 겹치면서 촛불시위는 더 확산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한 정책 입안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대중들이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개방 압력도 압력이지만, 쇠고기 개방을 다른 상품 교역과 연결하여 추진하고 있는 상황과 미국 시장에 대한, 한국 내에서 운동하는 자본의 필요성 때문에 쇠고기 정도를 수입하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미국 의회가 한미FTA 비준을 승인하게 하여 다른 상품을 더 팔아 이익을 볼 수 있는데 왜 다 되가는 밥에 초치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즉 수입은 경제상 필연적이니 소비자들이 알아서 먹든지 말든지를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안 사먹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사태의 악화를 막으려고 책임 장관의 경질과 대통령의 사과로 무마시키려는 모양이다.
촛불시위는 단순한 쇠고기 수입반대운동이 아니다. 현재의 욕망의 충족결핍과 미래의 삶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이 다양한 층의 대중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정책입안자의 비합리적인 행동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입안자들의 비합리적인 행위의 토대는 무엇인가. 바로 그들에 반대하고 있는 대중들의 조작 가능성에 있는 것 같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많은 한국의 대중들이 명백하게 밝혀진 비도덕성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살려 자신들의 의식주 같은 기본적인 욕망을 안정적으로 충족시켜줄 수도 있는 대통령을 선택했다.
대통령 하나 잘 뽑으면 자본주의 경제의 모든 모순을 해결하고 행복한 미래를 약속한다는 신비적인 믿음이었다. 하지만 현 정권은 임기 시작 전부터 많은 문제를 드러냈고, 경제는 좋아지기는커녕 악화되고 있다. 평범한 대중들은 견디기 힘든 높은 물가상승을 경험하기 시작했으며,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다. 정치권력은 안정적인 욕망을 충족하려는 대중들의 비합리성의 표현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얼마 후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대운하 건설을 찬성하는 촛불집회가 실업자와 실업 예정자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열릴 수도 있다.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의 구호들을 보면 재협상, 수입반대로부터 정권퇴진, 반미구호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구호는 사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다양한 계층의 입장을 반영한다. 특이한 상황은 노동자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것이다. 일간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열린 현대 자동차 임금투쟁에서는 5천여명이 참석하였지만, 밤의 촛불시위에는 고작 90여명이 참가하였다고 전한다.
대량실업이 구조화되고 비정규직이 계속 확산되는 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자는 하나의 특권계급인 듯하다. 상대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단순한 의미의 노동귀족을 넘어선다. 자본주의 모순이 극대화되는 세계적 차원에서의 경쟁체제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는 돈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자본주의 상품경제에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게 한다.
가진 노동력 이외엔 팔 것이 없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실업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망의 포기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노동사회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노동하지 않고는 생존, 즉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재화를 구매할 수 없다. ‘노동’이라는 단어가 자본주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하기 위해 태어나고 성장하고 배운다.
군수공장에서 무기를 만드는 노동자가 일을 마치고 저녁에 반전 촛불시위에 참석할 것인가? 쇠고기를 판매하는 마트와 음식점의 서비스업 노동자들이 시위에 참석하고 있는가? 그들은 주인과 함께 손님이 없다고 한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주인의 의지대로 호주산, 미국산 쇠고기를 한우로 둔갑시키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삶이 다른 사람의 불행을 전제로 하는 많은 노동이 도덕적으로 정당하게 행해지고 있으며, 어느 단체 하나도 이러한 노동에 대한 거부를 찬미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물론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의 군수산업자본이 부시를 내세워 이라크를 공격했을 당시 이라크에 무기들 팔던 독일의 한 도시에 일시적이지만 실업자가 급속하게 줄었다. 동시에 시내 중심가에서는 학생과 일반 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반전시위가 진행되었지만, 노동자의 참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처럼 대중들은 경제적 현실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균열을 경험하며, 반동적 성향과 혁명적 성향의 모순에 사로잡힌다.
문제는 욕망의 충족 결핍에서 오는 대중의 성격구조의 비합리성과 조작가능성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얼마 후 서울 광화문에 운하건설 찬성 촛불시위가 대통령을 비롯하여 수십만 명의 실업자와 노동자가 참가하는 가운데 진행될 수도 있다.
온 나라가 한일 월드컵 당시의 광기로 빠져들 수도 있다. 대한민국을 재건할 운하건설에 반대하는 자는 ‘민족의 배반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민족’이라는 추상화된 신뢰, 그리고 신비화된 권위에 기반 하여 ‘우리’와 ’너‘를 구분하여, 우리가 아닌 모든 것을 적으로 규정하는 획일적인 파시즘적 공격성이 전염병처럼 확산될 수도 있다. 민족주의가 좌파로 분석되는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운동이 히틀러의 독일사회처럼 진보의 가면을 쓸 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사회경제적 과정에서 형성되고 정박되며, 그 과정을 영속화하는 경직되고 권위적인 대중의 성격구조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문제 제기로 시작되어야 한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 이의 실천으로서의 지식활동과 노동에 기초한 책임을 대중 스스로가 질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욕망 뿐만 아니라, 타인의 욕망도 함께 충족하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즉 나의 노동이 다른 이의 삶에 필수적이라는 주인의식을 대중이 가져야 한다. 여기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은 이데올로기적 선동이 아니라, 순수하게 과학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황선길 사회과학 아카데미 교수
황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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