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운하 반대 “이제부터 시작”
성장 아닌 생명 패러다임 전환을

지난달 24일 서울 보신각 앞마당에서는 종교인 생명평화순례단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마지막 걸음을 마무리짓는 ‘생명의 강 모심 대행진’ 행사가 열렸다. 지난 2월 12일 경기도 김포에 있는 애기봉전망대에서 출발해 한강과 낙동강을 지나 영산강과 금강을 도는 장장 5천여리를 지나 서울로 회향한 것이다.

보신각에 모인의 종교인들은 한발 한발 걸으며 “‘무지와 탐욕을 지우기 위해 참회하고 또 참회하고, 아직은 지도위에 그린 망상이지만 머지않아 현실이 될지 모르는 한반도대운하를 지우기 위해 걷고 또 걸었노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미몽을 버리지 못한 채 ‘4대강 하천정비사업’이라 이름만 바꿔 대운하를 밀어붙일 태세다.

순례를 마친 종교인들은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라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은 순례를 통해 확인한 생명평화의 마음을 더욱 확산시켜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확산시켜나갈 것을 천명했다. 이날 보신각에서 만난 순례단장 이필완 목사를 만났다.


-103일 동안의 순례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올 때의 심경은.

▲서울로 돌아오는 마지막 길이 너무 힘들었다. 덥기도 했지만 냄새와 소음, 아스팔트, 이런 것들이 엉켜서 굉장히 힘들었다. 강변을 걸을 때는 오히려 자연 속에서 노닌다는 기분이어서 정말 평화로웠다.

출발할 때는 날씨가 춥기도 했지만 워낙 운하 찬성 기운이 세니까 대통령 취임과 4·15 총선을 앞두고 그때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떠나면서 운하 찬성기운이 높아 지역 사람들한테 환영을 받지 못 할거라 짐작하고 천막과 밥차를 준비했었다. 다행히 100일을 다니는 동안 운하에 대한 여론이 많이 바뀌었다. 돌아오기 며칠 전 이명박 정부가 다시 ‘치수’라고 이름만 바꿔서 운하를 개통하겠다고 했다. 한반도 대운하는 거의 물 건너간 일이라 생각했는데, 막판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여전히 대운하를 포기하지 않으니까 안타깝다.

개발주의에 대한 참회행렬

-이번 순례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이었나. ‘개발지상주의’에 대한 ‘참회의 마음’으로 떠나겠다고 말했는데.

▲한반도대운하에 대한 성찰과 자본이나 개발에 시달리는 이 사회, 그런 사회에 바른 말하지 못하는 종교에 대한 참회와 반성을 위해 떠났다. 100여일을 걸으면서 종교인들이 의견을 모은 것은 한반도대운하 반대도 반대지만 성장논리로만 치달아왔던 사회를 뒤 돌아 보고 자본과 개발이 아닌 생명과 평화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회가 되어야하지 않을까하는 각성이었다. 그런 각성의 기회를 준 이명박 대통령에게 오히려 고마워해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이야기를 했다. 서울에 들어와서 도법스님은 아무리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온갖 치장을 해놨어도 아름답지가 않다고 했다.

그동안 새만금이니, 사패산, 천성산 등의 개발을 막기 위해 종교인들이 나섰다. 그것들은 사업이 어느 정도 진척된 후 시작한 것이었지만 다행히 한반도대운하는 삽질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막아내는 데 있어 환경단체나 시민단체 힘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우물거리다가 삽질하고 말 것이다. 그 전에 막아보자, 그런 각오였다.

-4대 강역을 돌아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옛길을 걷는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낙동강의 ‘개비릿길’이라는 길이 있다. 7km 남짓 되는 거리인데, 거기는 아직 도로가 없다. 영산강에서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소로를 걸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개발되지 않은 채로 옛날 사람들이 다녔던 길을 강과 눈높이에서 걸었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부정적이었던 것은 낙동강 구간에서 모래 채취 모습이었다. 옛날부터 해왔던 건지, 아니면 한반도대운하 사업 한다니까 지자체에서 모래를 확보하기 위해 미리 하는 건지 모르지만 엄청난 모래를 퍼 올리고 있는 것을 보고 굉장히 슬펐다. 사람들은 낙동강의 모래가 돈으로 보였나보다. 영산강은 강이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참 많이 썩어 있었다. 아직 여름이 아닌데도 냄새가 날 정도였다. 영산강에서 광주로 올 때까지 오수처리시설 하나 없었다. 광주 사람들이 식수원을 광양댐이나 주암댐에서 끌어오니까 그렇게 방치해두는 지 모르지만 호남이 푸대접받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런 대책없이 썩어 있었다.

한반도 운하를 만들어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처럼 한번 걸어봤으면 좋겠다. 이재오 의원이 자전거 타고 돌았다고 했는데, 우리가 본 것의 10%나 봤을까. 몇 군데 만이라도 걸었으면 좋겠다.

-순례를 마무리 지으면서 운하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욱 명확해졌는지.

▲출발할 때도 한반도대운하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돌아와서는 ‘절대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첫째 강은 강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이 운하가 되면 이름 자체가 바뀐다. 둘째는, 다녀보니까 강은 모든 문화, 종교, 생명의 근원이었다. 생명의 어머니인 강을 운하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셋째는, 조령에 터널을 뚫겠다는 계획이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허황하고 무모한 일이다. 그렇게 할 이유도 없고, 더구나 그것을 관광으로 이용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자연을 나름대로 적당히 개발하고 보존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한반도대운하처럼 4대강을 한꺼번에 뒤엎어 운하를 만든다는 것은 종교인의 양심으로, 신앙의 관점에서도, 생명평화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는 운하를 이름만 바꿔서, 그것도 밀실에서 추진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CEO출신 대통령의 한계인 듯하다. 유가는 계속 오르고 국제 정세는 계속 어려운데 7% 경제성장이라는 약속을 지킬 마땅한 방법은 없고, 결국은 토목사업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강을 돌아보았더니 국토해양부나 환경부의 치수를 위한 예산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예산을 통해 얼마든지 일자리창출을 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운하사업을 하겠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강이나 청계천에서도 드러난 것이지만 콘크리트로 발라놓은 곳은 생명이 살 수가 없다. 전 국토의 강을 콘크리트로 정비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강 주변을 습지나 수초지대를 통해 자연정화의 기능을 살리면서 강을 개발해야 한다.

종교인들의 기도걸음은 정권에 대한 대척점에 있었던 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 정권이 국민과 대치하지 않고 지혜롭게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포기하고 강을 살리는 방향으로 결정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걸었던 것이다.

결국 식수 문제다

-촛불문화제에서 순례보고를 했다. 수만의 촛불 물결을 보고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한반도대운하를 놓고 아직까지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식수문제이다. 영산강을 빼놓고 나머지 강들은 모두 식수로 쓰이고 있다. 2천500만명의 국민들이 강을 식수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식수원에다 운하를 만들어 2천500톤짜리 바지선을 다니도록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식수로는 못쓴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권도 알고 있다. 그 대안으로 따로 댐을 만들어서 끌어오거나 강변여과수를 쓴다고 하는데, 강변여과수로 그만한 양을 끌어들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은 옛날 같지 않아서 새로운 댐을 만들기는 더 어렵다.

결국 운하는 식수의 문제이다. 쇠고기 문제도 먹거리와 직접적인 문제라 사람들이 이것을 그냥 보아 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국민들이 대운하를 식수의 관점에서 인식하기 시작할 때는 거대한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먹을 거 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았으면 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이명박 장로에 대해 비판을 자주 하신 것으로 안다.

▲이번 100일 순례에 참여한 결정적인 까닭은 교회 안에서 목회자가 먼저 입바른 소리를 들려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교회나 목회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은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옹호하다가는 나라를 망친다. 그렇잖아도 교회가 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는데, 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목회자가 바른 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순례의 특징 중 하나가 4대 종단이 하나가 돼 참회의 길을 걸었다는 것인데.

▲4개 종단 종교인들이 한솥밥 먹고, 천막치고, 한데 자고 함께 어울렸다. 굉장히 큰 수확이다. 각각 믿는 대상은 다르지만 한반도대운하라는 것을 가운데 두고 서로 이해하고 마음을 모으는 일에 동참한 것은 일반인들에게도 아름답게 비춰졌을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우리 기독교는 최근 배타성이 큰 문제였다. 서양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개신교가 이 땅의 근원적인 종교인 것처럼 배타적이고, 독선과 오만이 가득한 태도로 세상을 대했다. 그것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성경이나 예수님의 말씀과도 관련이 없다. 개신교의 원래 모습이 배타성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고, 함께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모습을 일부 보여줬다는 것에서 다행이지 않나 한다.

신념의 발언은 계속된다

-종교인들의 공동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되나.

▲한반도 대운하사업을 막기 위해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민행동이 조직되어 있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각종 종교, 사회, 문화를 총망라하는 범국민운동본부가 마련돼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한강에서 낙동강까지 ‘60만 인간띠 잇기’ 운동을 벌일 수 있는 국민운동본부를 조직하고 있다.
현재 국민행동은 1천만명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4대 종단별로도 운하반대국민행동이 조직되어 있다. 교회나 사찰, 성당 등을 통해 대운하 반대운동을 넓혀가고, 때에 따라서 한반도대운하에 대한 추진 움직임을 보일 때 이보다 더 적극적인 종교인 활동을 할 것이다. 오체투지(두 무릎과 두 팔,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불교식 의례)를 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종교인은 신념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만만하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100일 순례 끝났으니까 조용하겠구나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향미 기자

이향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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