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 땀방울 송알송알 돋도록 놀던 아이는 한 해 두 해 자라면서 나이 서른을 남겼고, 머잖아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됩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살아갈 터전을 헤아리면, 이 아이한테는 또래 동무가 동네에 많지 않은 가운데, 뒹굴 흙이나 뜀박질할 골목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구석구석 골목이 남아 있습니다만, 차츰차츰 넓어지는 골목은 자동차가 차지하기 일쑤라, 애써 또래동무를 만나더라도 집 바깥에서 흙범벅이 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저와 옆지기는 집에서 일을 하니 늘 아이와 함께할 수 있고 학원에 따로 보내지 않아도 될 뿐더러 학원에 보내야 할 까닭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는 동네에서 외돌토리가 될 수 있겠지요. 학원 한두 곳 안 다니는 아이가 없는 가운데, 아이들은 골목동무보다는 학원동무로 함께 놀곤 하니까요.
학교를 마치거나 학원을 마친 아이들을 반기는 골목동무가 없는 가운데, 집에서는 또다른 숙제와 책읽기와 논술이 기다립니다. 어머니나 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수수께끼를 즐기거나 다문 끝말잇기라도 하면서 놀아주지 못합니다. 교재를 챙기고 학원 시간을 챙기며 ‘공부하는 틈틈이 먹을 참’을 챙기는 손은 있지만, 여리고 보드라운 아이 손을 맞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손은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함께 보는 손은 있고, 아이한테 책을 쥐어 주는 손은 있으며, 아이가 연필을 들도록 다그치는 손은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한테 수세미를 맡기는 손이나, 빨래비누를 들도록 하는 손이나, 걸레를 들도록 하는 손은 없습니다.
벼락을 이끌며 내리는 빗줄기를 창밖으로 바라봅니다. 오늘날은 우산 없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국민학교 다니던 때, 우산이 없으면 책가방을 머리 위로 쓰고는 냅다 달리기를 했고, 가방을 쓰나 마나였으면 그냥 비를 맞으며 걸었습니다. 비가 와도 빗속 공차기를 했고, 웬만한 비는 맞을 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미끌미끌한 비이며 우리 몸을 망가뜨릴 걱정이 있는 비인 한편, 받아서 빨래를 하거나 마실 수도 없는 비입니다.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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