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돌멩이의 외침

내 인생의 첫 수업[44] 김남근l승인2008.06.1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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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가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던 사회분위기였다. 자주 반복되다 보니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측면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일본의 정치인들이 전쟁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금기시되어 있었다. 일본우익들이 국제적인 우려와 그 동안의 금기를 깨고 본격적으로 역사왜곡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광주시민들의 항쟁을 피로 억누르며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에 대한 반감이 가뜩이나 높았던 시기에 군사정권이 일본의 이러한 역사왜곡에 저자세 외교태도를 보이고, 군사 쿠데타의 주역이 일본 정치인과의 리셉션장소에서 일본군가로 화답했다고 하여 대학사회는 일본 우익정치와 군사정권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다. 아직 학생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았던 나로서는 학내시위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이었던 만큼 앞뒤를 재지 않고 무조건 학내시위에 참여했다.

첫 시위에 바로 잡히다

그 당시 사복경찰들이 대학 내에 상주하고 있었는데, 첫 학내시위에 경험이 없어서였는지 시위가 마무리되어 석양이 지기 시작하던 무렵 사복경찰관들에게 붙잡혀 관악경찰서(지금의 방배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야말로 순진한(?) 나에게 그날 밤의 상황전개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형사들은 나이를 조사하더니 대학교 2학년 이상의 나이가 된 학생들은 따로 격리를 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밤 바로 군에 강제입대 시켰다는 것이다. 형사들은 집요하게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자백을 강요하였는데, 형사들의 코앞에서 당당하게 군사정권에 항의하기 위하여 돌도 던지고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였다고 나섰던 대학동기는 그날로 구류를 살러 갔다.

당당하게 맞서는 친구 옆에서 자존심을 구기며 용케 발뺌(?)을 하던 나는 훈방이 되었지만, 땀에 옷이 흠뻑 젖어 있었고 시위대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그 뒤 대학당국으로부터 징계대신이라며 소위 지도휴학이라는 강제휴학을 당하게 되었다.

군사정권의 반민족적 행보에 같이 공분해 줄 것이라 믿었던 지도교수님이 자네는 이제 시위전력으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사법고시에 합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외국에 나가 공부해 보라는 고마우신(?) 충고는 훈계로 들리기보다 커다란 사회적 장벽이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첫 시위는 군사정권이 지배하는 비민주적인 사회에 굴복하여 패배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더 많이 깨지더라도 고난을 이겨내며 양심적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도록 가르침을 주었던 인생의 첫 수업이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나에게 용기를 내라며 격려를 아껴주지 않았던 많은 선배와 동기들은 그 첫 수업을 같이 치루어 준 고마운 동료이자 스승들이었다.

선택의 갈림길

판사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시골출신의 대학동기는 나를 데리고 내장산 단풍구경과 전남대 시위현장을 거쳐 전남 강진의 아름다운 고향까지를 두루 보여 주며 넓은 세상의 안목을 키워주었다. 뒷날 서울대 학생회장으로 명성을 높였던 한 선배가 물려 준 ‘어느 돌멩이의 외침’이란 책은 나에게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과 또 다른 차원의 우리사회의 문제에 눈을 뜨게 해 준 또 다른 첫 수업이었다.

지금은 인천지역에서 활동하며 가끔 뵙게 되는 선배인 ‘유동우’ 라는 노동자가 부천의 한 제조업체에서 부당한 근로조건에 항의하고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내용이었는데,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근본적인 모순에 치열하게 맞부딪혀 살아가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게 해 주었다.

노동, 주택, 복지 등 서민들의 민생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현재 나의 모습은 이러한 인생의 첫 수업이 남겨준 훈련의 결과일 것이다. 나에게 대학 첫해에 겪게 된 일본역사 왜곡사건에 항의하는 학내시위와 ‘어느 돌멩이의 외침’이란 책은 그 뒤 20여년의 내 삶을 지배한 가치관과 인생역정을 가르쳐 준 인생의 첫 수업이었으리라.


김남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변호사)

김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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