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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허프포스트코리아 고문l승인2019.12.1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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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언론은 ‘무관의 제왕’이 아니라 ‘유관의 쓰레기’다!” 며칠 전 언론계 선후배들이 만난 자리에서 선배 한분이 작금의 언론 현실에 던진 통렬한 비판이다. 권력을 감시하는 제4부로서 민주주의의 보루가 되어야 할 언론이 스스로 통제되지 않는 권력이 돼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 공익과 진실에 복무하고자 하는 더 많은 언론과 언론인들을 지원할 수 있게 된다면 왜곡된 언론 지형을 바로 잡고, 진실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언론 현장의 후배들이 이 비판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언론개혁이 시급한 과제인 것만큼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2016년 세계 70위에서 올해 41위까지 수직 상승했는데도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세계 38개국을 대상으로 매년 하는 언론 신뢰도 조사에선 4년 연속 20%대로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는 현실에 언론계는 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언론의 위기를 불러온 원인은 다양하지만, 크게 보면 민주화 이후 심화된 언론의 정파성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대한 기존 언론의 대응 실패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언론의 정파성 자체를 문제라 할 수는 없다. 각 언론사가 지향하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그 정파적 가치가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과 일치하는지, 그리고 해당 언론기관이 정파적 이익을 위해 사실과 다른 내용과 입맛에 맞는 견해만 선택적으로 전달해 진실을 왜곡하는지 여부다.

지난 100년간 친일·친미·반공·독재 세력의 편에 서서 자신의 배를 불려온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수구언론의 정파적 행태는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반면 87년 6월항쟁의 결실로 탄생한 『한겨레』는 이들이 지배하는 언론 지형 속에서 그 대척점에 서게 됨에 따라 또 하나의 극단으로 치부돼버렸다.

언론의 극단적 정파적 대립은 사회 전체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관련 당사자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박형규 목사의 민청학련 사건 재심 등에서 검찰의 지침을 무시하고 무죄를 구형해 논란이 됐던 임은정 검사는 법률에 따른 판단을 정파적으로 해석해 비난하거나 반대로 추어올린 언론 탓에 5년간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고 개탄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언론의 지나친 정파성 못지않게 언론의 위기를 배태한 핵심 요인이다. 디지털 기술 덕에 뉴스 제작의 진입장벽이 사라지고 뉴스의 생산과 유통도 분리됐다. 1인 미디어를 비롯해 소규모 인터넷 매체들이 폭증하고, 뉴스의 유통을 장악한 포털과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광고수익을 상당부분 가져감에 따라 올드 미디어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됐다.

그 결과 취재인력은 감축되고, 줄어든 인력으로 인터넷 뉴스까지 책임져야 하니 탐사보도나 심층취재는 꿈도 꾸기 어렵게 됐다. 그리고 어렵게 심층취재를 한다 해도 현재와 같은 포털 환경에선 그 노력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클릭 수에 목을 매는 여타 언론사 기자들이 공들인 남의 기사를 적당히 가공해 올리는 통에 원 기사의 주인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뉴스는 하루 6만건이나 쏟아진다지만 읽어볼 가치가 있는 것은 몇 안 되고 재탕 삼탕의 쓰레기만 계속 쌓이는 형편이다. 이러니 좋은 기사를 평가하는 기준인 미국의 PEJ(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 지수를 적용할 경우, 『뉴욕타임스』는 전체기사의 55.6%가 좋은 기사에 속하지만 국내 주요 일간지 기사는 7.5%만 그 범주에 든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주류언론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질 높은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정파적 이해를 위해 사실 왜곡을 일삼는 현재 상황은 언론 위기의 또 하나의 주범인 가짜뉴스를 번식시키는 토양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언론 위기에 해법은 없는 걸까? 한칼에 해결할 순 없겠지만, 언론의 3주체인 뉴스 생산자와 공급자 그리고 수용자가 함께 노력하면 길이 없지는 않다. 뉴스 생산자가 신뢰 위기의 근본 원인인 극단적인 정파성과 기사의 질 문제를 해결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우선이다. 자체 기사를 검증하는 부서를 신설해 지나친 정파성을 경계하는 한편 기사의 질을 관리하고, 편집국이나 보도국을 심층보도 중심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최근 한국방송(KBS)이 출입처 제도를 폐지하기로 한 것은 이를 위한 의미있는 일보로 평가할 수 있다. 출입처 제도는 최근 조국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권력이 자신이 가진 독점적 정보를 이용해 언론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심층보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도의 폐지가 성공적 결과로 이어지리라 쉽게 장담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필자가 『한겨레』 편집국장이던 10여 년 전, 같은 시도를 해봤지만 출입처에 길든 기자들은 그 길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했다. 출입처 제도의 폐지는 관성을 떨쳐내겠다는 각 기자의 결단과 그들의 결단을 지원할 교육 시스템, 그리고 기사의 숙성을 기다려주는 조직의 인내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힘든 일이다.

심층보도 중심의 뉴스 생산체제를 정착시키려면 포털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 등 뉴스 유통체제에서 이에 대한 추가적 보상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긴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언론사들이 클릭 수가 아닌 기사 질로 경쟁하게 되고, 1인 미디어를 비롯한 작은 매체들도 의미있는 탐사보도에 뛰어들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수용자도 한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최초의 국민주 신문인 『한겨레신문』을 만들고 지켜온,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뉴스타파’를 만들고 지켜온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을 되살려 시민의 힘으로 미국의 비영리뉴스재단(Institute for Nonprofit News) 같은 탐사보도 지원제도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이를 통해 공익과 진실에 복무하고자 하는 더 많은 언론과 언론인들을 지원할 수 있게 된다면 왜곡된 언론 지형을 바로 잡고, 진실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한겨레신문을 만드는 일이 ‘대통령 뽑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면, 2019년 현재 언론개혁은 검찰개혁과 더불어 ‘대통령 뽑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우리 모두 더 늦기 전에 행동에 나서야 한다.

권태선 허프포스트코리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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