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망년, 아름다운 송년

나이 잊는 공부는 동양의 주제 德의 방법 강상헌 논설주간/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9.12.2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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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툰베리의 분노’는 인류의 위기를 건질 德일 것

문자의 뜻 아는 이들이 여러 번 얘기했듯이, 망년의 뜻은 나이(연령 年齡) 또는 나이의 차이를 잊는다(망 忘)는 것이다. 그리 쉬울까? 쉽지 않았으니 선조들이 ‘덕스럽게 살자’며 늘 스스로 경계하는 주제로 삼았으리라.

‘그 말’보다 느낌이 좀 나은 송년(送年)이란 단어를 대신 쓰자는 요즘 ‘망년회’의 망년과는 아주 다른 말이다. 일제 때의 퇴폐적 잔재(殘滓)인 ‘술잔 속에 한 해 세상을 버리자’는 더러운 뜻 말 거의 스러져가니, 이제는 원래의 크고 아름다운 뜻 망년을 되살려봄이 좋지 않을까.

▲ 툰베리에 제인 폰다도, 미셀 오바마도, 타임지도 마음 맞춘다. 그 보편성은 이제 태양처럼 거대한 힘으로 작동할 터다.

망년지교(忘年之交), 나이 잊은 멋진 친교로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 1168∼1241)와 그보다 35년 연상인 오세재(吳世才)의 짝을 꼽는다. 아버지뻘 선비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의 본보기 같은 18세 청년을 동무삼아 학문과 인생을, 시(詩)와 정(情)을 기꺼이 주고받았다.

50대의 지혜 담은 속 깊은 격려는 덕스러움의 표본이기도 했겠다. 그런 우정 또는 지도에 힘입어 이규보는 최씨 무인(武人)정권의 ‘힘의 정글’을 줄타기하듯 정치인으로 너끈히 살아냈고, 뛰어난 세계관의 문장으로도 일가(一家) 이뤘다.

두 사람만의 얘기가 아니다. 나이나 나이 차이를 잊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자주 쓰는 말이면서 퍽 어려운 개념 중 하나인, 덕(德)의 뜻이나 정의(定義 definition) 중의 하나라 할 것이다.

‘철들면 늙는다’는 농담 같은 요즘 말에도 그 뜻은 살포시 담겨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던가? 나이의 더께를 뽐내지 말지니, 철 지난 아지랑이 아닐지 몰라.

더 풀자. 내일의 숫자가 (나보다) 더 많은 이들, 미래가 더 큰 세대, 아우 자녀 손자와 그들 자손들의 복된 삶을 내 일처럼 마주 보는 지혜와 축복하는 여유다. 세상 깨우치는 죽비를 든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를 마음으로 느끼는 공유(共有)의 감수성일 것이다.

소녀는 외친다. ‘내가 살 세상’을 어찌 사사로운 이익만 음모(陰謀)하는 정치꾼들이 망치는가? 무너져 내리는 벼랑 끝에서도 아귀다툼에 눈이 먼 저 기성세대는 이제 모두 썩 물러서라! 살만큼 산 이들이 무얼 더 챙기겠다고 손자들 몫을 가로채는가 하는 꾸중이리라.

다만 선(善 good)과 악(惡 bad)의 기준만으로 우주의 영원, 영원의 우주를 판단하고 재단(裁斷)하겠다는 효율 위주의 서양문명이 이제껏 가지지 못했던 큰 원리가 동아시아의 덕이다.

인류 구원의 돌파구를 가리키는 툰베리를, 트럼프 씨는 “친구랑 영화나 보며 놀아라.” 했다 한다. 아마도 ‘망년’의 덕을 몰라서일 터다.

툰베리가 덕을, 망년지교를 아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소녀의 외침은 현대 인류 최고의 ‘덕’이다. 우리를 살려낸 가능성이 있는, 그 당돌한 함성은 큰 반향을 끌어낸다. 아름다운 할머니 배우 82세 제인 폰다가 거리에서 툰베리의 깃발을 들었다고 갈채 받으며 수갑을 찬다.

미국 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새로운 영향력’의 툰베리를 선정했다. 소녀는 인류의 절실한 염원을 품은 새로운 문명의 표지로 우뚝 섰다. 보편성 얻은 개벽(開闢)의 깃발처럼.

허나 이를 전하는 일부 대중매체는 아직 ‘해외토픽’ 정도의 이야깃거리로 파악하는 모양새다. 우리 미디어들도 대충 거기서 거기다. ‘어린’ ‘16세 소녀’ ‘최연소’ 등을 다 나열한 후에 정작 본론인 ‘기후위기 대응’ 목소리는 액세서리 삼는다.

문득 ‘부덕(不德)의 소치(所致)’란 말이 떠오른다. 우리만 모르는, 언론만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이겠거니. 우리 사회에도 녹색당 청년들의 고함 소리 커간다. 정의당이 또한 ‘내 일’이라고 함성 지른다. 그러나 아직은 우물 안에서 개골거리는 안타까움이다. 지성의 쓸모는 무엇인가.

툰베리가, 기후위기가 기껏 ‘정치’인가? 진정한 망년과 아름다운 송년, 신나는 새해를 위해 우리는 이제 마음의 가난함을 기뻐하는 생명의 명상에 들자. 그 소녀를 배우자.

영화 ‘기생충’에도 덕이 안겼다. 책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충고는 아프지만 따뜻하다. 우리 청년들도 이제 어린냥 그치고 우물 박차라. 마음 열어 멋진 2020년을 축원 드린다.

▲ 좋다, 착하다를 넘어 ‘크다’라는 뜻으로 정의되는 철학적 개념 덕(德)의 옛 글자.

토/막/새/김

“한 점 한 획이 절절하다”

큰 덕(德)을 그려보자. 행(行)과 척(彳)은 교차로 또는 교차로의 생략이다. 직(直)은 똑바로 앞 바라보는 눈, 마음(心 심)으로 이 장면을 본다. 3천년도 더 된 과거 사람들은 ‘가치의 상징’을 이렇게 그렸다. 그 뜻을 지금 ‘크다’로 파악한다. 德은 ‘착하다’ ‘좋다’를 넘어서는 말이다.

형태나 뜻의 다소간의 차이는 피카소의 추상화를 떠올려 풀자. 한 점 한 획이 절절하다. 한자의 첫 문자(그림)인 갑골문과 그 업그레이드 버전인 금문(金文)에서 덕은 세상의 거리 풍경이다. 속세에 처해서도 정직한 (선비의) 마음일 터. 덕스러우면 돈도 (좀) 따른다고 보았을까?

얻을 得(득)은 거리(彳, 行)에서 조개(貝 패)를 손(寸 촌)으로 줍는 그림이다. 조개는 문명의 초기에 돈이었다. 일확천금은 아닐지라도 정직하게 살면 먹고는 산다는 뜻이었을 듯, 물질문명이 세상의 마음 뒤집는 요즘도 그 기준 타당할지?

강상헌 논설주간/우리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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