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10% ‘추첨’하자

‘대의민주주의의 위기’가 이야기되고 있다. 이념적 차이와 각각의 위치에 상관없이 터져나오는 목소리다. 새 정부 출범 100일도 안돼 거리로 촛불이 몰려나오고 있음에도 제도 정치권이 국민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여민주주의의 새로운 양상을 지켜보며 대의민주주의의 다양한 개선 방안이 나오고 있다. 그중에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학술적 가정의 토대 위에 제기돼온 ‘추첨제’도 떠오른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이같은 제안을 지난 1992년 군 부정투표 양심선언을 한 이지문 현 공익제보자와함께하는모임 부대표가 제기했다. 정치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 부대표의 제안을 ‘변화의 상상력’ 차원에서 싣는다. /편집자

국회의원을 ‘선거’라는 형식을 통해서만 선출해야 하는 것인가? 예를 들어 정원의 10%내지 20% 정도를 의원직을 희망하는 국민을 대상으로 ‘추첨’하여 선출하는 것은 ‘민주정치’에 반하는 것일까?

이러한 생뚱맞은 주장에 당장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을 것이다. 첫째, 지금 세계 어느 문명화된 국가에서 ‘추첨’을 통해 의원을 충원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국정을 논하는 ‘신성한’ 국회를 ‘로또식 뽑기’를 통해 일부라도 충원하는 것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둘째,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최소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셋째, 각 정당의 공약이나 정책을 보고 자신의 정책이해도가 일치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선거의 의미가 아니냐, 선거는 일종의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 평가 개념도 있는 것이다. 넷째, 정당정치라는 책임정치 구현이 아니라 중우정치가 되는 것 아니냐. 정치는 쇼가 아니지 않느냐.

그러나 ‘정치 패러다임’을 바꾸어보는, 예를 들어 요즘 논의되고 있는 대통령 및 국회의원 소환제나 국회와 대통령만 갖고 있는 법률발의권을 국민에게도 부여하는 직접 민주주의적 발상과 같은, 기존 정당정치 틀 안에서 파격적인 주장을 포함하여 1948년 정부 수립 후 지난 60년 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인 현 정치시스템에 대해서 본격적인 논쟁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하는 점에서 ‘도발적인’ 제안을 해 본다.

<시민사회신문DB>

'추첨제'는 문제의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다.
다양한 논쟁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정부여당뿐만 아니라 야당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갖고 직접 시민들이 목소리를 전하는 시민정치를 목도하면서, 그리고 과거 반독재 투쟁에서 보였던 재야사회단체 중심의 조직화된, 그리고 엄숙한 운동이 아니라 10대 학생부터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오는, 그러면서 조직의 일방적인 명령이나 지시에 의한 시위가 아니라 ‘명박산성’ 앞에서 자유롭고 치열한 의견 개진을 통해서 시위 방향을 정하는 현장을 보며 정치 패러다임을 한번 바꾸어볼 때가 되었다는 확신을 가져볼 수 있다.

그러면 일단 반론에 대한 반박을 거칠게나마 해보고자 한다. 첫째, 어디에서도 의원을 일부라도 추첨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선거는 정치귀족들의 잔치라며 추첨제 논의를 이야기하는 정치학 교수의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다. 아무리 돈 안 드는 선거를 한다고 해도 막대한 선거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 주위의 평범한 시민이 뛰어들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한다. 물론 진보진영 정당에서 환경미화원, 학습지 교사 등을 비례대표로 추천하거나 보수정당에서도 구색 맞추기로 장애인 등을 배려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들 역시 최소한 모임의 대표 등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번 18대 비례대표 의원 선정 과정에서 몇몇 의원들은 노골적인 공천헌금 대가로 의원직을 받기도 하였다.

다시 주장으로 돌아가서, 지금은 없지만 고대 아테네에서는 공직 일부를 추첨한 바 있으며, 15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피렌체에서도 있었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도 익숙한 미국 사법부의 배심원제는 전형적인 추첨 방식을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도입한 국민참여재판제도 무작위 추출 방식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재판이 전문적인 법률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음에도 이러한 제도를 도입한 것은 일반인의 ‘상식적 판단’을 중요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지금 ‘선거’라는 것이 그러한 도덕적, 능력 검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인가? 직업 자체가 능력 검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아직도 속칭 전문직이라는 직업군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셋째, 각 정당의 공약이나 정책을 보고 자신의 정책이해도가 일치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것에 선거의 의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에 대해서다. 또 선거는 일종의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 평가 개념도 있는 것 아니냐라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보자. 최근 들어 메니페스토라고 해서 정책보고 투표하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진보진영 정당을 제외한 보수정당 경우 솔직히 무슨 정책 차이가 크게 있는지 모르겠다. 추첨제 주장은 무기력해진 정당정치를 보완해보고자 하는 것이고, 오히려 이것이 정당정치에 자극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넷째, 정당정치라는 책임정치 구현이 아니라 중우정치가 되는 것 아니냐, 정치는 쇼가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즉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의회에 들어와 대중에 편승하는 무책임한 인기성 정책을 내놓고, 국회의원 면책특권 등을 악용하여 국가기밀을 함부로 누설할 수도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 국민의 수준은 전 세계 여타 국민과 비교했을 때 교육수준이나 인터넷 사용 수준 등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국민은 아닌 것이다.

최소한의 자격기준은 둔다

정당정치의 구현인 선거의 투표율을 한번 보자. 1987년 대통령선거와 총선거 투표율은 89.2%와 75.8%였으나 2000년 총선거는 57.2%, 2002년 지방선거 48%에 불과했으며 2007년 대통령선거는 62.9%로 하락했고, 이번 2008년 총선거는 반수에 못 미치는 46%로 나타났다. 재보궐선거는 10%대까지 떨어짐으로써 대표성 시비까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총선 때는 투표율 제고를 위해 ‘티켓’까지 내걸었다. 몇 년 전 재보궐선거 때는 경품까지 내걸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것은 국민을 우습게 아는 작태가 아닌가? 기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달 안에 사용해야 되는 할인이나 냉장고 등 경품으로 일종의 호객행위를 할 것이 아니라 왜 유권자가 갈수록 투표에 냉담해지는지 그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은 투표가 ‘내 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정치는 쇼가 아니지 않느냐 주장에 대해서 한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정치는 재미있는 쇼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쇼가 저질, 1회성, 인기 위주, 거짓과 속임수 등의 개념이 아니라 나, 내 가족, 내가 사는 지역, 내가 다니는 직장, 그리고 이번 촛불시위의 직접 계기가 되는 내가 먹는 먹거리에 대해서 함께 토론하고 소통하는 진정한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내본다. 비례대표 포함한 국회의원 299명 정원은 그대로 두고 현 정원의 최소 10% 내지 최대 20%를 의원직 수행을 희망하는 국민을 대상으로 추첨을 한다. 다만 추첨 대상이 되는 국민은 최소한 자격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당연히 피선거권이 있어야 할 것이고, 최근 2년 내 특정 정당의 당직을 맡지 않아야 하고, 범죄, 탈세, 병역기피 등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작위 추첨이 아니라 유권자 기준으로 남녀, 연령별로 추첨해야 할 것이다. 30명 추첨이라면 당연히 남녀가 15명씩 되어야 할 것이다. 최소 10%를 제시한 이유 중 하나는 20명 이상이 되어야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 도입 전에 반드시 국민소환제 도입이 필요하며, 선출직 의원보다 추첨 의원 경우 좀 더 강한 소환 기준을 통해 무책임한 활동시 소환이 용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추첨제는 당장 헌법 개정 문제가 있으니까 2년 뒤 치르지는 지방의회 선거 때부터 적용해볼 수 있다고 본다.

지방선거부터 시행 어떨까?

이것이 전부고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추첨제라는 기존의 정당정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쟁점을 갖고 직접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또 헌법 1조에 규정되어 있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조문에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는 차원에서 거칠지만 아이디어를 내놓아 본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위기라고 한다. 무력해진 정당정치를 복원함으로써 해결하자는 전문가들의 의견들을 여러 지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정당정치가 복원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대의민주주의가 마치 민주주의의 전부인 양 생각하고 싶지는 않기에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인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다 의원이 될 수는 없기에 최소한의 ‘추첨’이라는 형식을 제안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