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없는 오해라고?

[문한별의 미디어 바·보] 문한별l승인2008.06.2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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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얹힌 듯 답답하다. 짙은 한숨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화산처럼 뿜어져 나온다. 뒷목이 뻣뻣하다. 손발이 절로 떨린다. 콧구멍이 두 개나 뚫렸는데도 숨 쉬기가 힘들다. 증상만 보면 영락없이 환자다. 몸은 멀쩡한데, 가슴에 내상을 입어서 그런가. 아! 새벽에 인터넷으로 조선일보를 보는 것이 아닌데.

조선일보 양상훈 논설위원이 지난 18일 칼럼을 한 편 올렸다. 그런데 그 타이틀이 뜬금없이 비장하고 숙연하다. ‘대중(大衆)의 믿음과 다른 기사를 쓰려니’다. 진실의 이름으로 거짓된 세상에 맞서 홀로 싸우는 고독한 구도자 냄새가 물씬 풍긴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하려고 저렇게 분위기를 잡는 걸까.

내용은 외려 간단하다. 간단하다 못해 2MB급 아메바처럼 단순하다. 작금의 모든 파동이 '미국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는 대중의 맹신에서 비롯된 것이란다. 결국 다시 그 놈의 '광우병 괴담' 얘기다. 그러면서 양 씨는 천연덕스레 조선일보가 이제껏 우려먹은 구닥다리 레파토리를 되뇌인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광우병 소로 확인된 것은 세 마리 뿐이며, 세계 96개국이 미국 쇠고기를 제한 없이 수입하고 있고, 미국 사람 중에 미국 쇠고기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뻔한 스토리.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참을 만하다. 워낙 많이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 됐으니까. 이만하면 감각도 무뎌질 법 하잖은가.

그런데 기자의 길을 설파하는 마지막 단락에서 갑자기 깬다. 뭐라 했길래? 양 씨 왈, 국민 대다수가 믿고 있는 것이 실은 사실과 다를 때 기자는 어려워진단다. 기자는 정치인이 아니라서 국민 다수를 따라가기보다 사실의 편에 서야 한단다. 이런. 속에서 불기둥이 슬슬 솟기 시작한다. 이어서 한다는 말이, 정권의 생각과 다른 기사를 쓰기는 쉽지만, 그러나 국민의 믿음과 다른 기사를 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다. 오호라. 열사가 따로 없다. 이것만으로도 뚜껑이 열릴 판인데 결정타를 날린다. "미국 편 든다", "정권 편 든다"는 턱없는 오해도 사기 십상이란다.

조선일보가 이명박 정권 편, 미국 편을 든다는 것이 턱없는 오해라고? 정말? 이명박 정부 들어 오해신공이 난무한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이건 진짜 최고다. 문득 양 씨의 정신상태가 궁금해진다. 정말로 이렇게 믿고 있을까? 아니면 시국이 험악해서 괜히 유머로 한 번 말해 본 걸까? 전자라면, 정말 심각한데.

생각할 수록 열불이 난다. 조선일보가 '미국 편'이 아니라고? 그래서 효순이 미선이가 미군 탱크에 깔려 죽었을 때, 신문지면에서 그 기사를 삭제했나? 조선일보가 '정권 편'이 아니라고? 그래서 노무현 정부의 '언론탄압'(?)은 길길이 날뛰면서 모든 언론을 통째로 접수하려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에 대해선 꿀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고 계시는가?

조선일보라는 거짓의 공장에 몸담고 있는 양 씨가 '대중의 믿음과 대립하는 사실' 운운하며 입방정 떠는 것도 참 그렇다. 양 씨가 광우병 문제에 대해 발언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 문제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입을 열 자격이 생긴다.

첫째, 말끝마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그토록 홍보하면서 왜 조선일보 구내식당에선 수입필증이 붙어있는 호주산 청정우만 취급하나? 둘째, 노무현 정권 때는 불안하고 위험하던 미국산 쇠고기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갑자기 안전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돌변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명박 집권 후 아무리 몰상식이 상식을 대변하고, 비정상이 정상을 희롱하며, 거짓이 진실을 교살하는 세상이 됐기로서니 조선일보 기자가 순교자적 진실과 정직을 입에 담아서 안된다. 대한민국의 양심과 지성을 언제까지 욕보일 참인가?

글을 맺기 전에 부탁 하나 하자. 제발 어디 가서 조선일보가 '미국 편' '정권 편' 아니라는 말, 그리고 기자는 정치인이 아니라서 사실만 추구하고 다닌다는 말, 함부로 하고 다니지 마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의 불통지대(不通地帶)에 사는 사람이라 이 말이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아! 뒷골 땡겨.


문한별 미디어 전문기자

문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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