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해결책 또는 과정?

대만 총통선거와 동아시아 100년의 화두 양태근 한림대 중국학과 교수l승인2020.01.1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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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현임 총통은 2018년 11월 24일 지방선거 대패 후 겨우 27% 정도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 1월 11일 총통선거에서 무려 57%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연임에 성공했다.

또한 같은 날 치러진 입법위원(국회의원)선거(총 113석)에서 여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이 61석을 획득해 비록 7석이 줄었으나 여전히 확고한 과반을 확보했다. 중국국민당(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현 가오슝 시장의 득표율은 2016년 국민당 후보의 31%보다 7%가량 늘어 38.6%였고, 국민당의 의석도 35석에서 38석으로 증가했다.

▲ 차이 잉원 총통은 대만 사상 최다 득표를 기록하며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민진당이 입법위원선거에서 638만여표를 얻은 데 비해 총통선거에서는 817만여표를 받았다는 것이다. 차이 잉원이 여권, 무소속뿐만 아니라 심지어 입법위원선거에서 국민당에 투표한 사람에게서도 표를 얻었다는 뜻인데, 이를 바탕으로 대만 사상 최다 득표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다양한 언론매체도 이 문제를 실시간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전이 가능했던 이유를 제대로 살피려면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기에 앞서, 2019년이 지닌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2019년은 중국 근현대계몽운동의 시작을 알린 5·4운동(1919) 100주년, 미국이 대만의 안전을 보장한 ‘대만관계법’ 제정(1979.4.10) 40주년, 그리고 개혁개방의 문제점을 지적하던 학생들과 시민이 유혈 진압된 톈안먼사건(1989.6.4) 30주년이 된 해이다.

작년에 열린 5·4운동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중국 및 홍콩의 학생들은 “과학이라는 도구로 민주를 억압하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토로한 적이 있는데, 5·4운동이 ‘민주’와 ‘과학’이라는 기치를 내걸었음을 상기해보면 2019년의 역사적 의미가 더욱 부각된다.

100년 전 중국 계몽지식인들이 추구했던 민주가 왜 여전히 뿌리내리지 못했는지, 앞으로 이를 어떻게 추구할지는 이 학생들에게 역사의 문제이자 현실의 문제인 것이다. 홍콩에서 벌어진 강압적인 시위 진압을 바라보던 대만 민중이 중국과의 통일 가능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생각하며 이번 선거 결과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국민당의 자만과 자중지란

이번 연임의 원인을 분석한 다양한 기사들은 공통적으로 홍콩 민주화운동, 미국의 대중 봉쇄정책과 무역전쟁, 국민당 내부의 후보 분열 그리고 국민당 후보 한궈위의 미숙하고 불안한 언행을 지적한다. 그러나 필자는 “국가의 크기와 사람이 많음을 믿고 적에게 위력을 보이려는 군대를 일컬어 교만한 군대라고 하며, 교만한 군대는 반드시 멸망한다(驕兵必敗)”라는 『문자(文子)』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국민당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두 가지를 오판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여론조사 결과에 심취해 어떤 후보를 내보내도 차이잉원을 이긴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당은 지나친 내부경쟁을 벌였고, 총통선거 후보 선정 과정에서도 끊임없는 분란으로 결국 지지자들 사이의 감정적 충돌을 초래했다.

국민당 후보가 곧 총통이 된다는 인식 때문에 한국과 삼성전자를 이기는 게 일생의 목표라며 반한주의를 자극해온 폭스콘의 궈타이밍(郭台銘) 회장이 후보 경쟁에 뛰어들기도 했다.(국민당은 대만이 한국에 뒤처진 것이 적극적으로 중국과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꾸준하게 추진하는 동력으로 반한운동을 정치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권파와 본토파는 국민당 정치경력과 내부 연고가 그나마 많은 한궈위를 위해 내부 선거규정을 다양하게 개정해 결국 그를 국민당 후보로 만들었다. 이 불공정한 경선 과정에 실망한 궈타이밍은 제3의 길을 외치던 커원저(柯文哲) 타이베이 시장과 협력하면서 제3후보 출마를 저울질했다. 그러나 커 원저가 만든 대만민중당(민중당)의 지지를 등에 업고 총통선거에 나올 것처럼 준비하던 궈타이밍은 갑자기 출마를 포기하고 친민당의 쑹추위(宋楚瑜)를 지지하면서 결과적으로 반(反)국민당 노선으로 돌아서게 된다. 이

러한 국민당 내부의 분열 과정에 실망한 상당수 지지자들은 투표를 포기하거나 민진당 지지로 돌아섰고, 결과적으로 이는 국민당 패배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물론 민진당도 경선 시기를 차이잉원이 승기를 잡을 때까지 미루는 등 수많은 반칙을 자행하면서 경쟁자였던 라이칭더(賴清德) 전 행정원장에게 극히 불리하게 진행되었으나 라이칭더가 결국 부총통직을 수락하면서 내부 단결에 노력한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국민당의 또 다른 오판은 중국과의 화해를 바탕으로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2018년 선거의 승리 요인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당은 성급하게 92공식으로의 회귀를 주장했다.(‘하나의 중국’ 원칙을 두고 “중국과 대만은 하나의 중국이며 그 중국은 바로 중화민국”이라는 국민당의 입장과 “그 중국은 바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중국공산당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차이잉원과 민진당은 이런 합의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2018년 지방선거 때 국민당의 승리는 연금개혁에 분노한 이들의 결집에 힘입은 바 컸다. 이때의 민심은 빈부격차·청년실업 해소나 소득증대 같은 경제문제는 도외시한 채 정치운동에만 몰두하는 민진당이 싫다는 것이었지 결코 중국이 좋다는 것은 아니었다. 『중국시보(中國時報)』는 1월 12일자 기사에서 이번 선거가 ‘민진당이 싫다’와 ‘공산당이 무섭다’ 사이의 경쟁이었다고 분석했는데 이는 정확하게 대만 민심을 꿰뚫어본 것이다.

▲ <자유시보> 1면에 실린 광고.

미국, 중국 그리고 홍콩

중요한 외부요인으로 꼽히는 대미관계를 보면, 작년 5월 7일 ‘대만보증법(台灣保證法, Taiwan Assurance Act)’이 미국 하원에서 통과되면서 차이잉원은 실질적 후광효과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대만 총통으로는 최초로 뉴욕의 UN을 방문했고, 컬럼비아대학에서 강연을 하는 등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또한 대만관계법 40주년을 기념해 미국 대사관 역할을 수행하는 AIT(미국재대만협회)는 작년 1년간 경축행사를 진행하면서 “대만과 미국의 관계가 역사상 가장 좋다”며 민심을 다독였다.

미국 폼페이오(M. Pompeo) 국무장관은 차이잉원의 승리가 확실해진 뒤 “대만의 강력한 민주제도야말로 인도태평양지역의 모델”이라고 축하했다. 물론 중국은 이를 두고 중화인민공화국의 한 지방인 대만 선거에 미국이 개입한 것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과 비판은 오히려 이번 선거가 지니는 상징성과 중요성을 더욱 잘 보여주는 것 아닐까?

중국공산당 역시 국민당과 마찬가지 오판을 했다. 작년 1월 2일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평화통일, 일국양제’를 천명하며 대만과의 통일방안을 제출했는데, 이는 국민당의 지방선거 압승으로 대만 민심이 통일에 호의적으로 변했으리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차이잉원에게 기회가 되었다. 차이잉원은 시진핑의 통일방안을 비판하며 ‘92공식 지지’와 ‘일국양제 지지’를 같은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국민당과 한궈위는 중국공산당의 일국양제에 명시적으로 찬성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92공식을 인정하고 중국과 평화 번영을 주장하는 것은 일국양제에 찬성하는 것’이라는 민진당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었다. 홍콩 시위가 강경 진압되는 장면에 경악한 대만인들이 “국민당은 대만이 홍콩처럼 되기를 원하느냐?”는 구호에 호응한 것도 민진당 승리의 주요 원인이다.

차이 잉원은 11일 선거 승리 후 연설에서 중국에는 ‘평화, 대등, 민주, 대화’를 요구했고, 대만 국민들에게는 이번 선거가 ‘대만의 자유와 민주의 승리’라며 선거에 승자와 패자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내일부터는 단합된 대만으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실제로 타이베이 시내는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날 민진당과 대만독립을 지지해온 『자유시보(自由時報)』 1면에 ‘대만을 지켜내고 다시 홍콩을 탈환하자(保衛臺灣重奪香港)’는 광고가 실렸다. 이는 이번 선거가 홍콩과 대만, 그리고 미국이 ‘민주’ ‘자유’ ‘인권’에 기반해 연합전선을 펼친 것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후대의 역사는 이 총통선거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지금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 차이잉원은 비록 연임에 성공하고 민진당은 과반 수성에 성공했지만, 경선 과정에서 불공정 시비가 불거진 점이나 국민당을 일국양제 찬성으로 낙인찍은 점 등은 이번 선거가 건강한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진행됐는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대만에는 이제 향후 중국과의 대결구도뿐 아니라 빈부격차, 세대격차, 청년실업 등 해결해야 할 내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어쩌면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와 동아시아의 미래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갈수록 첨예해지는 가운데, 대만 선거에서도 이러한 충돌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떤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을까? 동아시아는 한국 대만 일본 중국의 교차무역을 통해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협업체제를 만들어왔고 한국의 삼성전자, 하이닉스 그리고 대만의 TSMC 같은 반도체 파운드리와 폭스콘 등의 첨단기업들이 다양한 경쟁과 협업을 펼쳐왔다. 동아시아 각국이 100년간 그렇게나 원했던 부국강병의 꿈은 세계 IT 협업의 중심으로 성장한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이미 이뤄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과 중국의 대결구도가 무역전쟁으로 발화되면서 동아시아 각국은 양자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되었다. 이와 관련 필자는 5·4운동의 주창자이자 자유주의자인 후스(胡适)의 경구를 기억해본다. 그는 “자기와 다른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유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심지어 모든 자유의 근본은 바로 나와 다른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며 내가 옳다고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억압과 압박의 시작이라고 보았다.

이 말은 동아시아에 사는 사람, 이를 넘어 특권이나 편견에 휘둘리는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세계인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다. 강대국임을 자랑하는 교만한 군대는 반드시 멸망한다는 말처럼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억압과 압박의 시작일 것이다. 상생의 동아시아를 바라는 이유도, 그 동아시아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기를 바라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대만 총통선거에서 보인 정치세력 사이의, 그리고 국가들 간의 충돌을 보면 ‘부딪치며 나아가는’ 민주주의에 대해 되묻게 된다. 민주주의는 해결책일까, 이상일까. 아니면 그저 끊임없는 과정일 뿐일까.

또 중국과 대만 역사 100년의 창상은 어디로 향했는지, 또 앞으로 동아시아의 100년은 어디로 향할지 다시 한번 겸허히 곱씹어본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은 대만과 홍콩의 민주주의에 커다란 희망과 영감을 줘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대만을, 동아시아를 더 주목해야 한다.

양태근 한림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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