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차례상에 왜 茶가 없지?

술 향연(饗宴)을 잔잔한 차 여운(餘韻)으로 바꿔보자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l승인2020.01.2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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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한가위 같은 명절에 조상께 추모의 마음 드리는 절차가 ‘茶禮’다. 기제사(忌祭祀·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나 묘사(墓祀·무덤서 지내는 제사)보다는 덜 무거운, 좀 캐주얼한 제사라고 할 수 있다. 저 단어를 한자로 쓴 것은 같은 말을 ‘차례’라고도, ‘다례’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전에 이 글 ‘차 이야기’의 상(上)편과 중(中)편에서 설명한 대로, 차례와 다례는 같은 말이다. 차례는 민간에서, 다례는 궁중이나 사찰에서 쓴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자료도 있다, 그러나 실은, 어원을 따져도 다 뻥이다. 아무 때나 안심하고 둘 다 써도 된다.

▲ 차(茶)와 선(禪) 함께 보듬어내는 남도 차밭 언덕의 속뜻 깊은 풍광을 그리워하다. 눈 내린 보성의 다원에서. 사진=전남새뜸 이돈삼

발음기호 같은 한자의 발음표시법인 반절(反切)로 茶는 택가절(宅加切)이다. 宅의 한국어 발음 중 자음인 ‘ㅌ’과 가(加)글자의 ‘ㅏ’를 합친 소리값(음가 音價)에서 ‘다(타)’가 왔다. 중국말 첫 소리에 가까운 ‘ㅊ’과 ‘ㅏ’를 합치니 ‘차’다. ‘다’나 ‘차’나 뜻과 소리의 원리가 원래 같다.

둘 다 무방하나, ‘차’가 현장에서 더 자주 쓰이는 것 같다. 요즘 유행어 ‘별다방’의 다방이란 말에서처럼 ‘다’로 쓰이는 단어들이 또한 여럿 있다. 차실(茶室)이라고 하지만, 차방이라는 말은 좀 어색하다.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습관적으로 쓰다 보니 굳어진 말인 것이다.

수, 당나라 때 지금 중국 땅인 그 곳 사람들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 쯤의 우리 선조들은 아주 비슷한 소리로 한자를 발음했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지역에 따라 달라진 것이 한국과 중국의 한자어 발음 차이다. 북경(北京)과 베이징의 차이도 그렇게 본다.

하여튼 이 글의 열쇠말(키워드)은 차, 차례(茶禮)다. 그런데 정작 차례에서 차(茶)가 사라진 것이 요즘 상황이다. 조상을 대접하는 음료가 모두 술(주 酒)로 변한 것인가. 그럼 차례 말고 주례(酒禮)라 해야 하지 않나?

‘음복주(飮福酒) 한 잔’의 음주운전의 폐해가 명절 전후에 그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음복차(飮福茶)가 해답이리라.

명절의 의례(儀禮)를 보여주는 거의 대부분의 교본이 차례 또는 다례를 설명하면서 술을 (정중히) 따르는 절차만을 언급한다. 신문이나 방송도 대개 이를 따라 (베끼듯) 적는다. 명절마다 차례에 술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된 내역이다. 한 자료의 차례 순서를 보자.

1. 목욕재계, 차례 지낼 마음 준비 / 2. 제상(祭床) 집기 설치, 제수(祭需) 준비 / 3. 명절 아침 제복 입고 제 위치에 정렬 / 4. 제상 차리기와 신위(神位) 봉안(奉安) / 5. 신내림(강신 降神)의 예(禮) / 6. 조상신에 대해 모든 참사자(參祀者) 참배 / 7. 제찬(祭饌 제사음식)과 잔 올리기 / 8. 시립(侍立)해 신위에 식사 권유 / 9. 수저걷기와 합동 배례 / 10. 사당(祠堂)으로 신위 모시기 / 11. 제상 정리, 음식 나눠 먹는 음복 (한국일생의례사전)

5, 7, 8번의 절차에 술을 따르는 장면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11번의 음복은 조상이 세상에 끼친 덕을 기리는 의미라고 설명된다. 술 한 잔 걸치는 것을 포함한 헌주(獻酒)가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음복주는 복을 마시는 것 아닌가. ‘음복=술’이란 생각도 많다. 차는 없다.

차례 또는 다례에 차를 어떻게 우려(만들어) 어떤 절차로 조상께 대접한다는 얘기가 실종된 세상의 형편이다. 그러고 보니 ‘차 한 잔 하자.’는 말의 차를 매실차 인삼차 쌍화차 칡차와 같은 음료로만 여기는 이들도 많다. 차나무와 녹차, 홍차의 관계를 모르는 이들도 드물지 않다.

차는 전통의 음료다. 다른 식품들처럼 영양소도 맛처럼 유익하며, 마음(정신) 추스르는 연장으로서의 의미도 인류 특히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공감을 키워왔다. 차 마시는 것을 다도(茶道)라고도, 다선(茶禪)이라고도 하는 까닭이다. 제사에 차를 조상께 대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반사(茶飯事)는 차 마시듯, 밥 먹듯 예사로 하는 일이다. 우리는 밥 먹는 그만큼 차를 마셨다. 어쩌다 한겨레가 잠시 차를 잊었다. 다시 다반사로 차를 마시면, 거리의 넘치는 술의 향연(饗宴)을 잔잔한 차의 여운(餘韻)으로 바꾸면, 몸과 마음에 또 우리나라에 평화가 올 터.

토/막/새/김

차(茶), 이제 매일 다반사(茶飯事)로 마시자

‘보성 녹차밭’이 남도의 뛰어난 풍광의 하나라고 하는 글이나 영상을 늘 본다. 꽤 정평 있는 언론이나 작가도 예사롭게 쓴다. ‘언중(言衆) 즉 말글 쓰는 뭇 사람들의 습속을 이기는 어법(語法)은 없다’며, 대중의 회오리바람에 함께 휩쓸리는 것인가? ‘홍차밭’도 있을까나?

녹차밭은, 없다. 녹차는 차밭의 차나무에서 딴 찻잎을 덖어 만든 차 제품의 하나다. 녹색 우러나도록 싱싱한 (발효 안 된) 상태에서 만든 것이다. 발효된 차는 여러 종류가 있다. 영국 사람들 애호하는 홍차나 ‘퇴비내음 난다’는 중국의 보이차는 발효차다. 홍차밭도 당연히 없다.

겨울 풍경도 좋지만, 새 봄 오면 보성 등 남도의 차밭 녹색 물결은 기운생동(氣韻生動) 그 자체다. 겨울에 걸터앉아 멀리 바다도 내려다보이는 그 황홀을 그린다. 태평양의 호연지기(浩然之氣) 바다 냄새 짙은 언덕, 그 보성 차밭으로 가고자.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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