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여야 할 사람들

[시민운동 2.0] 이창훈l승인2008.06.30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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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협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촛불문화제가 두 달여 계속되고 있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나,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 바로 ‘대의민주주의의 실패에 따른 직접민주주의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도 이러한 직접민주주의 형태의 역사적 사건이 수차례 발생하였다. 1960년의 4·19혁명이나 1980년의 5·18민중항쟁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하며, 1987년의 6·10 민주항쟁은 현재의 헌법을 만들어낸 직접민주주의의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 촛불문화제는 과거의 직접민주주의와 다른 발전적인 면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정권퇴진이나, 헌법 개정을 요구하거나, 해당시대의 정권의 정통성을 따지는 부분에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 즉 대의민주주의의 큰 틀을 잡아주는 사안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현 정부의 법적 정통성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라는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오만방자한 정부와 잘못된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직접적인 의사표현이다. 이것은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스위스와 같은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정치행위이며, 국민들의 감시망이 더욱 촘촘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과거에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직접민주주의보다 한 단계 발전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국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이 발전했기 때문이며, 과거의 직접민주주의 역사들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 온라인 공간이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정치권이나 일부 국민층에서만 공유하던 고급정보들이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지 100일 동안 잘한 일이라고는 온 국민들을 공부-헌법, 광우병 등-시킨 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이 점을 잘 시사해준다.

또 이번 촛불문화제를 두고 소설가 이문열 씨가 말한 ‘끔직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라는 빈정거림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근거이다. 누구나 한번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방에 들어가 보라.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나라의 주권자들의 토론과정을 지켜보라. 주권자들의 정보력과 이해력, 그리고 집회문화에 대한 의식수준까지. 세계의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주권자들의 모습 아닌가?

결론이 이렇다면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점에 대해 준열한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허나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6월 10일 전국 1백만 촛불-인터넷을 통한 참여자까지 감안 한다면 수백만명은 될 것이다-을 보고 머리 숙여 두 번씩이나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광우병 괴담’을 운운하고 있다. 지지율 10%를 오락가락하는 정권이 제 주제파악도 못하면서 ‘우매한 국민’을 탓하고 있으니, 향후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기간 내내 참다운 국민의 대변자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야기 하자. 먼저 진보운동을 하고 있다는 나로서도 반성을 ‘뿔나게’ 하려고 수시로 촛불광장에 나가 촛불 앞에 고개 숙이고 있다. 우리 시민단체들이나 사회변혁을 자처하며 나서고 있는 단체들도 촛불 앞에 당당할 수 없다. 우리는 과거 민중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힘을 얻어 정권을 감시하고 바른 방향으로 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들이다. 한국에 시민운동이 뿌리를 내린지 20여년이 넘었고, 세계의 유수한 NGO단체들의 대열에 앞세워도 당당할 수 있는 단체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촛불은 그 막강한 NGO단체들에 의해 주도된 것이 분명 아니다. 온라인 클럽에서 ‘학업의 어려움을 서로 나누던 어린 중고교생들, 시장의 콩나물 값을 두고 수다를 떨던 아주머니들, 화장품이며 패션이며 다양한 취미를 통해서 만나던 젊은 여성들’ 등이었다. 우리의 처지가 앞서 말한 국민의 대의를 호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주권자인 국민의 대의를 위해 뽑아놓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감시하기 위해 국민들의 성원과 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우리들이 그 ‘감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시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게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지난해 대선이 끝나고 한 회원으로부터 받은 전화 내용이 다시 떠오르게 된다.

“야! 사무국장. 20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회비를 꼬박 냈는데, 왜 대선에서 진거야.”


이창훈 경희대 총민주동문회 사무국장

이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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