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를따라31 붉은 황토와 갯벌의 세상, 무안

“처절한 생, 눈부신 붉은 황토길” 남효선l승인2008.07.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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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하운 시인을 따라 걷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길 전라도 길.
한하운, 「전라도 길 전문」『한하운 시집 보리피리』

남효선
소낙비가 그친 뒤 무안 갯벌에는 붉은 황토길이 힘줄처럼 드러났습니다.

중학생이었던 시절, 손에 잡히지도 않는 문학열병을 앓으며 청계천 어디쯤에선가 헌 책방에서 한하운 시집 ‘보리피리’를 사서 밤새 읽었습니다. 밤 세워 시집을 읽으며 처음으로 한하운 시인이 천형의 시인임을 알았고, 그 후로 시인이 가슴 저미도록 노래했던 ‘붉은 빛 황토길’이 내내 열병처럼 가슴 속을 떠돌았습니다. 그 길을 따라 걷고 싶어 언젠가는 꼭 한하운 시인의 걸음을 따라 ‘붉은 황토길’을 걸어보리라 다짐했습니다.

삼십여 년의 시간이 지나 오십을 넘기고 비로소 무안 땅에서 ‘붉은 황토길’을 만났습니다. 황토길 위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바다안개가 만드는 낯선 서해안의 그림처럼 떠 있는 섬 풍경보다 붉은 황토길은 내내 마음을 사로잡고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이렇게 처절한 빛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마침 장마철을 예고하는 듯 장대 같은 소나기가 퍼부었습니다. 소나기는 흡사 울음처럼 붉은 황토 길을 적시고 바다를 적셨습니다.

한하운 시인은 이토록 붉은 황토길을 따라 따가운 햇살 속에서 바람 속에서 비를 맞으며 소록도로 걸었을 것입니다. 소록도로 걸으며 시인은 생을 움켜쥐듯 미치도록 가슴을 달구는 붉은 황토를 주머니 가득 퍼 담았을 것입니다.
남효선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무안 양파'는 무안바다를 지키는 바다바람과 안개와 황토가 빚은 토속 먹을거리입니다.
남효선
수확을 앞두고 웃자란 양파는 흡사 '부리를 곧추세운 홍학'처럼 꽃대를 피워올렸습니다.

붉은 황톳길과 안개에 휩싸인 섬은 몸을 뒤채이며 가물가물 눈앞에서 사라졌다가 이내 다시 솟구치며 온 몸으로 소나기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문둥이 시인, 한하운이 온 몸으로 천형을 받아들이며 걷던, ‘발고락이 떨어져 나가는’ 황톳길 위로 거뭇거뭇 바다안개가 밀려들었습니다. 한참을 내리쏟던 소나기가 그치자, 맑은 햇살과 함께 섬이 발밑에 떼밀려왔습니다.

바닷물이 썰려 나가면서 끝자락이 가물거리는 갯벌이 펼쳐졌습니다. 뭍에 몰려있던 빗물이 이내 개펄에 황토 길을 만들었습니다. 붉은 갯벌 황토 길을 따라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었습니다. 닻줄에 묶인 전마선이 사람들처럼 흔들렸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전마선은 사실 그냥 배가 아니라 무안바다와 갯벌을 지키는 파수꾼이자 바다사람들을 살리는 탯줄입니다.
남효선
남효선


사람들은 갯벌에서 바닷바람을 마시거나 갯벌이 쏟아내는 숱한 생명들의 현란한 몸짓을 들여다 봅니다.

‘모든 길은 마을로 통한다’는 어느 시인의 정의처럼 빗물은 뭍과 바다를 잇는 황토길을 만들었습니다. 무안은 세발낙지와 양파와 연(蓮)의 고장입니다. 그닥 맵지 않고 달짝지근한 무안 양파를 키우는 것은 붉은 황토와 손가락으로 비비면 쩍쩍 달라붙을 건만 같은 끈적한 바닷바람입니다.

바다와 갯벌을 머리에 이고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일궈진 사래 긴 밭에는 양파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리 웃자란 양파가 피워올린 꽃대는 부리를 곧추 세운 ‘홍학’같습니다.

질 좋은 무안양파는 무안사람들에게 독특한 먹을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바로 ‘양파 김치’입니다. 무안 상큼한 양파 맛을 고스란히 맛 볼 수 있는 먹을거리입니다.

무안의 10월은, 아니 10월의 무안 갯벌은 현란한 불빛의 세계입니다. ‘무안 갯벌낙지 축제’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무안 세발낙지는 밤 기온이 쌀쌀해지고 달이 기우는 10월의 하현 무렵에 들불처럼 창궐합니다. 야행성이기 때문입니다.

무안 갯벌낙지 축제의 컨셉은 횃불입니다. 손에 손에 횃불을 밝히고 사람들은 먹이를 찾아 나선 세발낙지를 잡아 올립니다. ‘무안갯벌낙지’는 무안군이 2002년부터 낙지축제를 개최하면서 공동브랜드로 개발해 상표등록을 마쳤으며 청정한 무안갯벌에서 생산돼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무안 갯마을에서 맞는 새벽은 안개와 바닷바람과 붉은 황토가 빗은 ‘양파 김치’맛처럼 달짝하면서 상큼한 기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남효선 기자

남효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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