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극 외교

트럼프 씨, 할리우드 3류 주제로는 ‘기생충’ 못해본다네...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l승인2020.03.0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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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만큼 얼굴도 큰 트럼프 대통령, 봉준호의 ‘기생충’과 ‘기껏 그 한국영화’에 상을 준 전통의 아카데미를 내놓고 씹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선셋대로(大路)’같은 좋은 영화도 아닌, 문제 많은 한국에 왜 상을 주느냐 하는 거다. 한 나라의 수장이 할 수준의 얘긴 아니다.

▲ 뿔소라고둥. 농림부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김성훈 교수의 기증품으로 조성된 목포 자연사박물관의 세계각지 조개컬렉션 중 하나다. 신용카드 ···페이 등 ‘디지털 돈’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조개가 돈이었다는 옛일은 신기할 터다. (사진 전라남도 제공)

물론 마음 가난한 그의 국민들의 ‘표심’을 겨냥한 속셈이겠지만, 미국이 어쩐지 쩨쩨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를 보면 ‘다수결의 민주주의’ 또한 덜 미쁘다. 미국영화도 그가 언급한 그 시대와는 다르다. 이게 ‘아메리카 퍼스트’인가?

압도적인 힘과 함께 세계를 흠뻑 적시던 미국의 정서적 파워가 시드는구나, 그 중에서도 요즘 할리우드는 그나마 인질극이 압권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영웅(들)의 치명적 살인기술과 무기 시범이 본질이고 핵심이다.

멋진 배우가 수십, 수백 명을 너끈히 죽인다. 현실에선 영화 같은 총기사고 비극 잇따르지만, 피 튀는 영화는 지어낸 허구(虛構)이니 괜찮다고? 여기에 인질극(人質劇)은 필수다.

황당한 액수와 명목(名目)의 청구서 내밀고, 이치에 맞춰 따져보자는 상대에게 ‘내 말 안 들으면 알지!?’ 눈 부라리는 것은 거래(去來)가 아니다. 거래는 ‘가고 오는’ 것이다. 본 듯한 장면, 마피아 영화였을까? 조폭이 인질을 잡고 위협하면, 영화는 슬며시 클라이맥스로 오른다.

식민지 백성에게 팔뚝 알통 과시하는 제국주의나 질권(質權) 앞세운 악성 채권자의 수법이라면 모를까, 나라 사이의 외교(外交)가 이런 모습일 수 없다. 미국이 한국더러 ‘얼른 내놔!’ 을러대는 이 드라마, 현실 아니리라. 고감도 판타지 아닌가.

말 안 들으면, 자기들 미군 위해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다는 ‘카드’도 내놓았다. 말 그대로 인질극이다. 평화 지키자는 협력의 본질(本質)이 무너지는 모양을 본다.

아픈 대목 잘 잡은 것 같다. 백악관 사람들은 영리한 영화 팬들인가 보다. 허나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주한미군의 본질은 뭐지? 태평양전쟁 때부터만 보더라도 그렇다. ‘병 주고는 약 사라.’는 심보일까, 우방(友邦)의 마음자리인가. 또 자기네 (전략상) 이익이 더 크지 않은가?

저런 영화적 상황 속에서 그 근로자들, 인질이 발언했다.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 떳떳하게 행동하겠다.’는 요지다. 껄끄럽고 마음 불편한 이 드라마, 어디까지 갈까?

‘인질극 외교’를 살핀 것을 계기로, ‘바탕’이라는 뜻의 단어 질(質)의 용례(用例)를 곰곰 생각해 본다. 인질, 질권과 같은 말에서 볼모나 저당물(抵當物)의 의미를 짓는 데 쓰인다. 바탕이 왜 볼모가 되지? 다른 표정의 얼굴 아닌가. 두 이미지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바탕은 본디다. 質은 도끼(斤 근) 두 개 붙은 은(斦)과 조개 패(貝)의 조합이다. 조개는 문명의 새벽에 돈의 역할을 했다. 이 물건을 부르는 貝자는 이 글자 質에서도 중심이다.

은(斦)은 (한 개를 쪼개서 둘로 나눈) ‘쇠붙이 신표(信標)’ 즉 부절(符節)로 풀이한다. ... 젊은이가 내민 칼 조각을 자기 것에 맞춰 보고는, 너는 내 아들이로다 하였다... 역사 드라마에 나올 법한 장면이다. 다른 문명에서도 때로 볼 수 있는 인류학적 (설화) 주제 중 하나다.

신표의 믿음(信)과 조개(貝 돈)가 만났으니 현금이나 같았겠다. 쌀이나 쏘나타로 바꿀 수 있었다. 전당포 갈 때의 저당물이었고, 이는 곧 볼모 인질의 뜻으로 번졌다. 질박(質朴) 소박(素朴)의 質은 사물의 원래 뜻을 새기는 이미지인가 하면, 인질극의 볼모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저당물이나 인질이 돈이나 가치 자체는 아니지만, 그것의 배경(빽)이 된다는 뜻에서 ‘가공하기 전의 원래 가치’를 뜻하는 글자로 변용(變容)되어왔을 것이다. 저당물로서의 가치, 인질로서의 쓸모가 얼마나 큰가 하는 점은 곧 ‘질이 좋으냐, 나쁘냐’의 저울이었을 터.

‘기생충’은 인질극과 격(格)이 다르다. 트럼프 씨에게 권하고 싶다. 손에 땀을 쥐며 이 영화 즐겨 보시라, 미국의 여러 문제 해결할 영감을 얻을 수도 있으리.

토/막/새/김

문자는 공식(公式) 아닌, 시(詩)의 마음으로 읽는 것

중국 산(産) 우한바이러스의 창궐에 온 누리 우울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 왔으되 봄 같지 않다. 似(사)는 닮았으되 같지 않다는 사이비(似而非)의 뜻이다.

놀이 겸 공부 겸, 흠(鑫)자로 마음이나 달래 볼까나. 쇠 금(金)은 돈, 셋 합치면 기쁘다는 뜻 鑫이다. 돈 많으면 기쁘기도 할 터, 절실하고 적실한 글자요, 의미다. 중국집 간판에서 가끔 본다.

글자 합치는 것은 나무 목(木) 수풀 림(林) 나무 빽빽할 삼(森)처럼 그 의미의 변용, 주로 강화(强化)나 강조에 쓰이는 조자법(造字法)이다.

차(車) 셋 모은 굉(轟)은 지축 울리는 소리 굉음이다. 불 화(火)는 더울 염(炎), 화염 혁(焱)을 낳았다.

풀(草 초)의 사촌 훼(卉)는 열 십(十)자 모양을 3개 합쳐 무성한 풀숲이 됐다. 2개 초(艹)도 같은 뜻인데, 줄기와 이파리 그림인 艸(초)의 간략한 그림이다. 자주 보는 물건 품(品)은 흔히 말하듯 입 구(口)가 아닌, 그릇 3개를 합친 그림이다.

도끼 두 개 은(斦)은 모탕으로도 푼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이 단어 모탕은 나무를 팰 때 아래에 받치는 두 개의 (나무)토막이다. 이 뜻 ‘밭침’에서 바탕, 본질이라는 풀이가 나왔다고도 한다.

문자는 공식(公式)이 아닌, 시(詩)의 마음으로 읽는다. 이 마음, 세상 읽는 철학이다.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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