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대통령’과 정교분리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8.07.0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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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촛불집회를 이끌어온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빈자리를 종교계가 채워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서울광장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하자마자 천주교, 기독교, 불교, 원불교 등 종교계가 서울광장에서 시국집회를 열고 있다. 자칫 정권의 손아귀에 잡힐 뻔한 서울광장을 국민의 품에 되돌려 준 것이다.

지난달 30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시발로 기독교, 불교, 원불교 등 종교계 성직자들이 가세하여 소중한 촛불을 지키고 있다. 특히 5일에는 종교계는 물론, 노동계와 정치권까지 참여하여 대한민국 중심부의 밤하늘을 촛불로 밝혔다.

촛불정국 노둣돌 놓다

2개월여 계속되던 촛불이 MB정부의 80년대를 방불케 하는 강경진압으로 사그라들까 우려되던 시점에 종교계가 나섬으로써 지치고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에 위로와 화해의 노둣돌을 놓은 것이다. 촛불을 끄기 위해 시민운동가를 구속·수배하고 이들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공안 통치시대를 부활시키려던 ‘장로 대통령’은 이들의 출현에 머쓱해지고 말았다.

촛불집회에 나선 성직자들은 과거 독재체제에서 국민을 구한 정의의 마지막 불빛이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유신독재의 서슬퍼런 탄압을 뚫고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을 한 ‘명동사건’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서왔다. 폭압정치가 극에 달했던 전두환 정권 치하에서도1986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공동으로 ‘보도지침’을 폭로했고 이듬해인 1987년에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을 알리며 6월 항쟁을 촉발했다.

사제단은 민주화 이후에도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평택 미군기지 이전반대, 효순·미선양 사건 등 사회정의를 내세우는 사건이 있을 때마다 때로는 전면에서 때로는 뒤에서 묵묵히 ‘진실’을 외쳐왔다.
개신교의 기독교 교회협의회(NCCK)는 유신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의 보루였다.

유신독재에 저항한 1973년 남산부활절연합예배를 비롯해 시국의 분수령 때마다 힘을 보탰다. 구속되거나 수배당한 학생이나 민주인사들의 뒷바라지는 물론, 이들의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1986년에는 ‘땡전뉴스’로 상징되는 전두환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KBS 시청료거부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NCCK가 있던 종로5가는 민주화의 성지로까지 불렸다. 특히 많은 목사님들은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민주화 고비마다 일어선 교계

불교계의 실천불교승가회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적극 나섰다. 1987년 해인사에서 전국승려대회를 열고 전두환 정권 독재타도에 앞장섰으며 ‘박종철군 49재’ 등을 통해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북한동포돕기운동과 천성산 터널 및 한반도 대운하 저지운동 등 환경보호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우리의 뜻있는 종교인들은 민주화의 고비마다 국민의 아픈 가슴을 달래며 민주와 평화를 위해, 그리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몸을 던졌다.

이러한 종교인들의 현실참여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매우 우려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종교가 정치의 영역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정교분리’라는 원칙이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언론들은 종교의 권위를 찾는 것은 촛불 정국에서 침묵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교분리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정교일치로 교황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황의 힘이 약화하고 군주들의 힘이 강화하면서 권력을 군주에게 넘기고 살 길을 궁리한 결과다.

대한민국에서의 정교분리는 ‘정부가 일정한 종교에 편향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종교는 정치에 참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무릇 종교란 민중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잘못된 정치에 일침을 가하는 등 민중을 위한 정치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오늘날 정교분리의 가치는 종교가 권력을 위해 복무하지 않는 데서 성립한다. ‘장로 대통령’을 위한 기도회나 정부의 한반도대운하 정책을 밀어주려고 ‘친환경 물길 잇기 전국연대’ 같은 단체를 만드는 일이 정교분리에 어긋난다. 더구나 ‘장로 대통령’이 등장한 이후 ‘정부 복음화’ 운운하는 종교 편향적인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정교분리 원칙에 맞지 않는다.

종교인 현실참여는 지당하다

이 때문에 지난 1일 한승수 국무총리가 조계사를 방문하려다 불자들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했다. 조계종은 현수막에 조용기 순복음교회 목사와 어청수 경찰청장이 함께 찍은 선교포스터 사진을 비롯해, 국토해양부 대중교통정보 시스템 ‘알고가’의 사찰이름 삭제, 경기여고 교장의 불교 문화재 훼손 등 종교 편향적인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소중한 촛불을 지켜준 성직자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장로 대통령’은 진정한 정교분리가 무엇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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