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얼마나 질긴지 보여줘야 한다"

비폭력 무저항 평화행동 중 경찰이 폭행
“힘으로 이길 수 없음을 정부는 깨달아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지명도 높은 시민단체인 YMCA의 수장 이학영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이 경찰 폭력으로 병상에 누웠다. 이 사무총장은 특히 비폭력 무저항 시위 중 일방적 폭력을 당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YMCA전국연맹은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140여명의 시민들이 연행된 지난달 28일 시민들의 안전과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주장하기 위해 아무런 저항수단 없이 길거리에 눕는 ‘YMCA 촛불평화행동-눕자’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사무총장은 회원들과 시민 100여명과 함께 태평로 옆 골목에서 스크럼을 짜고 누워있던 중 전경 1개 중대의 급습을 받고 ‘무참하게 짓밟혔’다. 이 사무총장 외에도 홍경표 YMCA 지도력개발국장과 윤경아 간사 등 단체 상근가와 시민들이 무차별 폭력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는 등 피해가 컸다.

지난 2일 입원 중인 병원에서 만난 이 사무총장은 “총만 안들었지 5·18과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몸 상태는 어떠한가.

▲팔 골절은 주말까지 가 봐야 알 것 같다. 여기저기 맞은 부위에서 퍼렇게 멍이 올라오고 있다.

-비폭력 무저항 시위 중에 폭력을 당했다.

▲경찰이 물리적 탄압을 가하면서 집회 참가자들을 폭도로 몰고 있었다.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경찰이 아니라 시민들이 점점 더 많이 피해를 입고 있어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무차별 곤봉과 물대포에 시민들을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눕자’ 평화행동이었다. ‘누워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생각했지만 나간 첫날 이렇게 됐다. ‘그냥 밟고 가’라는 지휘관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전경이 달려들었다. 시민들은 머리가 깨지고, 얼굴에 금이가고, 팔이 부러지고, 허리를 다치는 등 참담한 상황이다. 이 정부가 최소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이 있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나타났다.

-경찰 폭력 이후에도 YMCA는 눕자 평화행동을 계속할 방침을 밝혔다.

▲그렇다. 국민과 맞서는 정부는 민주적 정부일 수 없다. 더 큰 전면적 저항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에게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경찰이 시민들을 강경 진압하려 해도 눕자 평화행동의 취지가 살아 있는 한 눕자 평화행동은 계속 진행할 것이다. 지난달 28일 폭력적 진압 만행에 항의하는 서한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 사과를 촉구했다. 또 전국 63개 YMCA가 개별 지역 경찰서를 항의 방문할 예정이다. 그리고 5일 집회에는 시민들과 함께 또다시 눕자 평화행동을 진행한다. 오히려 경찰폭력이 더하면 더 할수록 평화행동은 더 크게 일 것이다.

‘눕자’ 평화행동 계속 할 것

-고시 강행 후 정부는 촛불집회와 행진에 대해 강도 높은 대응 입장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에 시민들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과 함께 평화집회를 진행하면서 더 많이 광장으로 나오는 형국이다. 시민들의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시민들이 가진 것은 촛불밖에 없다. 국민의 뜻을 전혀 받아 안지 못하는 정부를 원망하면서 이렇게 나오는 것이 아니겠나. 전경 버스를 끌어내려 한다고 해서 넘어가지 않을 것임을 시민들도 알고 있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막힌 의사를 표현하려는 것이지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어떻게든 시민을 폭도로 몰아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촛불을 왜곡해 더 이상 시민들을 합류하게 하지 않으려는 생각이다. 때문에 시민들도 폭력 시위로 몰고 가려는 시도에 결코 빌미를 줘선 안된다. 시민들은 이미 평화 시위를 천명하고 있다. 경찰들도 더 이상 폭압적인 진압을 해선 안될 것이다.

-경찰 폭력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면.

▲이전에도 집회에 안나가본 것이 아니다. 그 때는 끌려가면서 닭장차에서 때리던가 취조받으면서 맞았었다. 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백골단이 있었을 때도 비폭력 시위 중 그 자리에서 짓밟히는 일은 없었다. 전혀 상상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폭력적으로 나올 줄 알았다면 여성들의 참여를 말렸을 것이다. 특히 여성들에게 군홧발로 대응한 것은 정부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처럼 폭력으로 진압하고 끌고 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군사독재정부의 몰락을 보고도 민간정부가 힘으로 정치를 하려는 것은 시대정신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총 만 안든 5·18'이라고도 지적했다.

▲5·18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그 상황은 잘 안다. 평화 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토끼몰이하듯 끝까지 따라가 짓이기는 경찰을 용인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시민들은 그래서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데.

▲어청수 청장 개인의 뜻이라기보다 청와대의 요구가 있었지 않았겠는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힘으로 국민을 억누를 순 없다. 그건 80년대까지 통용되던 이야기다. 지금의 국민들은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다. 원한다면 질 높은 정보와 뉴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힘으로 누른다고 눌러지겠는가. 일시적일 순 있어도 장기적으론 불가능하다. 이젠 국민들에게 잘못을 용서받고 그 다음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총만 안든 5·18과 다름없어”

-촛불이 두달여를 넘기며 장기화되고 있다. 어떻게 마무리 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촛불은 누가 뭐라 해도 시켜서 나온 게 아니라 들어가라 해도 안들어가는 시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이다. 스스로 거둘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 광우병 위험 속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그냥 못먹겠으니 안전대책을 확보하라는 것이 국민들의 뜻이다. 휴대폰과 자동차를 팔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생명의 불안을 느끼는 가운데서 그 돈이 무슨 소용이냐고 외치는 것이다.

-경찰이나 청와대에서 찾아오진 않았는가.

▲임삼진 신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이 오늘 왔다 갔다. ‘며칠 깔아뭉개면 사라진다’는 식으로 청와대로 보고되는 정보가 상당히 왜곡돼 들어갈테니 정확히 시민사회의 의견을 전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경찰 쪽에서는 찾아온다고 했지만 오지 말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민들은 ‘끝까지 가보자’고 외치고 있다. 세상을 너무 쉽게 보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만든 정책은 끝까지 밀고 가야한다는 생각으로는 향후 임기 동안 내내 힘들 수 밖에 없다.

덧붙여 일부 보수 언론에도 할 말이 있다. 국민들로부터 받은 수모는 자업자득이다.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지난 정부에선 그렇게 위험성을 강조하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말을 바꾸는 것을 국민들은 똑똑히 보고 있다. 이제 몇 개 언론사가 사회적 의제를 제시하면 국민들이 믿는 시대는 갔다. 그것이 또한 왜곡으로 점철됐다면 국민들의 뜻은 명확해 진다. 정론직필이라는 언론의 본연 자세로 거듭나지 않고 끝까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태로도 일관한다면 역사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왜곡 언론, 역사에서 사라질 수도”

-시민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면.

▲언론과 정부는 촛불에 나온 시민들을 계속 폭력집단으로 매도해 국민들과 유리시키려는 게 분명한 의도다. 다시 강조하지만 빌미를 주면 안된다. 국민이 가진 것은 맨손밖에 없다. 다수 국민들을 설득하고 지지를 이끌어내서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그 자리에서 경찰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간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평화적으로 아름다운 시위문화를 지켜갔으면 좋겠다.

장기적인 전망을 가져야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5년 내내 촛불을 밝힐 수도 있다. 우리의 뜻이 전달될 때까지 끊임없이 의사를 표현하는 수 밖에 없다. 끌려가도 다시 촛불을 들고 국민들이 얼마나 질긴지 보여줘야 한다.

어느날 갑가지 쫒겨나 셋방도 못얻는 비정규직, 겨우 직장에서 월급받아 자식 키우며 쩔쩔매는 무수한 대중,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임을 보수언론과 이 정부에 보여줘야 한다. 오로지 기업 하나만 잘되게 하면 온 국민이 잘 살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논리로 정책을 펼치는 정부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사진=류승태 기자 aquamacker@ingopress.com
이재환 기자

이재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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