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 똑부-코로나19 인물론

‘멍부는 천재지변’…선거, 사람 제대로 뽑았기를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l승인2020.04.1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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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존슨 총리가 코비드-19 판정을 받았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음성(陰性)이랬다. WHO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무표정한 뒷북 경고를 계속했다. 일본 아베 총리는 당황했고, 중국 시진핑 주석은 의기양양했다. 대구 시장은 실신(失神)했고 서울 한 구청장은 ‘선의(善意)의 피해자’론을 폈다.

▲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이 인류적 바이러스 재앙에 어찌 대응할 지에 골몰하는 모양새다. (TV보도 화면)

크든 작든 조직을 이끄는 이는 나름의 방법과 스타일을 가진다. 그의 취사선택(取捨選擇), 취하고 버리고 가려서 뽑는 행위는 중요하다. 인류를 흔드는 이 바이러스(한국이름 코로나19) 시국에서는 더욱 절실하다. 상황 전체를 보고 때맞춰 결정을 내려야 한다.

상황을 보는 능력과 결정의 적시성(適時性)으로 인물을 재는 색다른 기준이 있다. 경영학 교재에는 없으나 대개는 수긍하는 개념이다. 똑똑하고 멍청함, 부지런하고 게으름의 짝짓기다. 전부터 해학(諧謔)의 탈을 쓰고 인구(人口)에 회자되어왔다.

멍청한데 부지런하면(멍부) 최악, 곧 천재지변(天災地變)이다. 대개 똥고집이며 자기를 잘 난 사람이라 여긴다. 함께 일하는 이들 특히 부하들 골 때린다. 깊은 위로를 보낸다.

멍청한데 게으르면(멍게) 멍부보다는 좀 낫다. 지 스스로 멍청한 줄 안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그나마 다행이다. 헛된 공명심(功名心)만 없다면 나름 좋은 사람이겠다. 잘 도와 드리게나.

똑똑한데 부지런하면(똑부) 좌우(左右)와 하(下)가 피곤하다. 윗사람에게도 똑똑하고 부지런하다면, 상(上)도 피곤할 터. 그의 생각이 바르다면, 세상엔 좋으리. 그의 생각 속을 드나들듯이 궁리 계속하지 않으면 매일 깨지느라 바쁘겠다. 긴장하여 공부하든지, 널널한 자리로 옮기든지 쉬 결단할 것.

똑똑한데 게으르면(똑게), ‘문제적 인물’이다. 어진 사람일까? 주변과 후배들이 일 찾아서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줄까? 지 뱃속 우선 챙기는 실속파일까? 그 게으름은 혹 의도적일까? 경계 풀면 하릴없이 당하는 수가 있다.

이런 뒷담화 겸 해설은 많고 길다. 얼핏 다른 이들, 특히 선배 상사들 얼굴 떠올리는 분들 많으리라. 그러나 이 때 ‘나는 어떤지’ 생각하는 이가 진짜 똑똑한 사람이겠다.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얽히고 설킴, 결국 생극(生剋)의 어떤 자세 또는 균형점을 확보하는 것 중요하다. 처세학이라고 하던가. 그러나 부디 이익보다는 도리 즉 의(義)를 앞세우는, 이쁜 생각하실 것.

義는, 좀 손해 보는 듯해도 상수(上手) 중 상수다. 제대로 영리해야 슬기롭다.

이 시국 주요 인물들은 저 지표(指標) 중 어떤 타입일까. 존슨, 트럼프 씨 등 여러 뉴스피플들은 ‘멍 똑 부 게’의 어떤 스타일인지, 이미 술안주 감으로 그 얘기들 많이 돌아다닌다.

기왕지사(旣往之事·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만약 ~했다면’ 하는 가정법은 역사(학)에서처럼 허망하다. 그러나 저들의 결정은 철저히 해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소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쳐야 하는 것이다. 그 중 우선 살펴야 하는 부분은 시간이다.

부지런함과 게으름,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 그들의 결정의 시점(時點)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다. 괴질(怪疾) 출현을 알려 탄압을 받은 우한(武漢·한자어발음 무한)의 청년의사 故 리웬리앙(李文亮 이문량) 선생의 ‘경고’를 중국(시진핑)이 제때 알아들었더라면... 이런 가정 말이다.

또 한 부분은 ‘시간의 자비(慈悲)가 일찍 와주신다면’이란 가정(假定)이다. 코로나가 지나면, 인류는 비로소 겸손해질까? 자신을 낮추고 섭리(攝理)의 우주를 경건하게 우러를까?

한 정치인은 ‘IMF 때도 없었던 충격파...’라고 했다. 천지개벽을 찻잔 속 소용돌이로 밖에는 못 읽는 좁아터진 우물 속 인간성을 본다. ‘미국 우선’(트럼프) ‘중국 덕분’(거브러여수스) ‘부흥 올림픽’(일본 아베 총리) 등 이 시기 키워드들과도 같은 싸구려 코미디들이 그래서 늘 출몰한다.

하늘과 인간은 둘이 아니다. 인내천(人乃天)의 화두다. 다들 착각하듯 토끼 간은 바위 위에 있지 않다. 깨우치는 시간, 이 개벽의 기회는 우리를 오래 기다려주지 않을 터.

▲ 공간과 함께 우주의 두 축인 시간의 시(時), 아시아 고대인들은 시간을 이렇게 그렸다. 위로부터 갑골문 금문 소전체의 時. (이락의 著 ‘한자정해’)

토/막/새/김

“마음속에 그림 그려 문자 속 깨쳐라”

풍류(風流)처럼 시간(時間)은 흘러간다. ‘과거는 흘러갔다’ ‘순간에서 영원으로’는 제목은 한갓 유행가와 대중소설의 이름이되, 시간의 본질을 뚫었다. 시간 흘러 코로나의 오늘은 뭐라 불릴까?

해자(解字), 즉 글자를 풀어 시(時)를 보자. 날 일(日)자는 해 그림. 옆의 절 사(寺)자는 갑골문의 발(足 족) 그림이 변한 之나 止자의 변형으로 본다. [시]로도 읽는 寺자가 소리요소로 日에 붙었다는 설도 있다. 서울시청 건물 지하에는 군기시(軍器寺) 유적이 있다.

갈 지(之)와 그칠 지(止)는 발 그림에서 비롯된 형제지간 글자다. 갑골문 그려진지 3,500년 역사 속에서 ‘간다’와 ‘그치다’로 나뉘어 전해졌다. 가고 오는, 멈추고 떠나는 것은 발의 일이다. 문자는 이렇게 제 정체를 스스로 보여준다. 거기 잠긴 그림 이미지를 읽어내는 것은 숨은그림찾기를 타갰다.

글자의 그림, 옛적 서당 아이들의 놀이였다. 마음속에 그림 그려(心象 심상) 문자 속 깨쳤다. 옛 선비들은 그래서 대개 시인에 가까웠다.

당신 마음 속의 어릴 적 그 시인,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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