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가해기업 처벌…“너무 더디다”

가습기넷 “대통령·국무총리 등 범정부적으로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라” 양병철 기자l승인2020.04.3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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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7일 기준, 접수 피해자 6763명ㆍ이 중 사망자 1549명

(환경산업기술원 신청ㆍ접수 현황,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 기준)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이하 가습기넷)는 “애경산업·SK케미칼 등은 피해자들에 사죄하고 제대로 배·보상하라”고 요구하고 “피해구제, 재발방지 등 참사 해결에 범정부적으로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 산소호흡기를 단 피해자 서영철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 해결을 호소하는 자필 편지를 읽고 있다. (사진=가습기넷)

이 단체에 따르면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에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29일 확정됐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SK케미칼과 함께 CMIT-MIT를 원료로 ‘가습기메이트’ 제품을 제조, 판매한 애경산업 임직원들이 증거인멸과 증거은닉을 교사하고, 증거인멸과 증거은닉을 이행한 죄를 사법부가 최종 확인한 것이다.

특히 참사가 벌어진지 9년째다. 검찰 수사 뿐 아니라, 사법부 단죄까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날 실형이 확정된 고 전 대표는 2016년 검찰이 소비자들에 가장 많은 피해를 안긴 옥시에 대해 수사에 들어가자, ‘가습기살균제 사건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고 전 대표가 증거가 될 수 있는 애경산업의 가습기살균제 자료들을 인멸, 은닉하도록 지시와 보고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고 전 대표 등이 2016년 10월 국회 국정조사 이후 애경 본사 근처 별도 건물에 TF를 꾸려 2차 자료 삭제에 관여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1심 재판부도 “고 전 대표 등은 죄책감 없이 일상적 회사 업무로 증거은닉과 증거인멸 교사죄를 저질렀고, 우리 사회에 큰 문제를 야기한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실체 규명 가능성에 손실을 초래했다”고 봤다.

사법부의 이번 판결은 애경산업이 ‘가습기메이트’ 170여만개를 사서 쓴 소비자들을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 속에 살게 만들고,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범죄행위가 담긴 증거들을 없애거나 숨긴 행위만을 겨우 단죄한 것이다.

2016년 검찰이 옥시 등을 전면적으로 수사할 때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은 원료물질인 CMIT-MIT의 인체 유해성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은 커녕 검찰 수사조차 피해갔다. 2018년 11월에 피해자들과 가습기넷이 세번째 고발한 뒤에야 겨우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그 사이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은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배상 대신 조직적으로 증거들을 없애고 숨기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피해 구제를 맡던 환경부 담당 서기관이 관련 정보들을 가해기업들에 넘기고, 애경산업은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의 브로커까지 동원해 진상규명과 피해 구제를 방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참사가 벌어진지 9년째지만, 정작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와 애경산업 안용찬 전 대표 등은 아직 재판을 받고 있다. 피해자들이 호소해 온 진상규명과 가해기업 관련자 처벌은 이렇게나 더디다.

피해자들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진상규명, 가해기업들의 사과와 관련자 처벌은 제대로 된 배·보상을 통한 피해 구제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으로 넘어가기 위한 기본 전제다. 그러나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은 아직 피해자들에 사과조차 한 바 없다.

▲ “문재인 대통령님께 면담을 요청합니다”, “전신질환 인정하고 판정기준 완화하라” 지난해 6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이성진씨(왼쪽)와 산소호흡기를 찬 조순미씨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요구사항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오히려 코로나19 국난을 틈타 재벌·경제단체들이 조직적으로 ‘규제 완화’를 외쳐왔고, 청와대에서는 ‘적극 검토’한 뒤, 정부는 이를 받아 ‘수출 활력 제고 방안’ 등의 이름으로 화학물질 안전관리 법규와 정책을 후퇴시키고 말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많은 피해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라에서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피해자들이 국가가, 정부가 자신들 편에 서 있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다.

가습기넷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가습기메이트’로 인한 폐질환자 수는 총 1500명이다. 사용자 중 약 25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천식질환을 신고한 피해자는 총 1444명이고, 태아 피해는 15명이 신고했다.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은 더는 이 피해자들과 가족들을 기만하지 말고 사죄하라. 그리고 제대로 된 배·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애타는 요구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와 환경부에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직후인 2017년 8월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공식 사과하고 피해 구제 등 참사의 해결을 약속했다. 진상규명은 물론 피해 구제와 지원,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국무총리 주도로 범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양병철 기자  bcyang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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