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는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철학여행까페[39] 이동희l승인2008.07.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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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신학-정치학 논고>에서 종교에 대한 맹신, 종교와 결탁한 정치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자연권 개념에 기초한 국가에 대해 서술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바라는 바대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자연이 우리에게 준 권리이다. 이 권리는 국가 전체에 대해 심각한 손상이 없다면 제한 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동희
헤이그에 있는 스피노자 동상
사상과 표현의 자유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이성적 사유를 보장한다. 모든 사람의 이성적 사유에 기반한 국가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국가이다. 이러한 국가의 법과 질서에 복종하는 것은 시민의 ‘자유’ 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들의 자유의지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민’의 자유에 기초한 국가는 내적인 안정성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종교는 이러한 정치에 종속되어야 한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정치에 대한 기존 종교의 지배를 비판하고, 종교적 자유, 정치적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민주정체를 옹호한다.

스피노자의 이러한 과감한 생각은 기존의 종교권력자와 지배계층으로부터 심한 반발을 불러 왔다. 곧 바로 <신학-정치학 논고>에 반대하는 책자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책을 스피노자라는 유태인이 지옥의 악마와 결탁해 만들어 낸 책이라고 비난을 하기도 하였다.

<신학-정치학 논고> 때문에 강한 반발과 비난을 샀지만, 다른 한편으로 스피노자의 명성은 높아져 1673년에 독일의 팔츠 지역의 영주 카를 루드비히에게서 철학교수 자리를 제안 받는다. 카를 루드비히는 한 신학교수를 통해 그러한 제안을 스피노자에게 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심사숙고 끝에 이렇게 답장을 보낸다.

“교수직을 맡는 것이 나의 소망이었더라면, 저는 다른 자리가 아닌 팔츠의 영주 전하께서 당신을 통해 제게 제의한 바로 그 교수직을 맡았을 것입니다. 자비로운 영주께서도 황송하게도 제게 허락해 주는 철학의 자유 때문에라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공적인 자리를 맡는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기에 이 훌륭한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철학함의 자유가 어떠한 한계에 머물러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공인된 교회를 혼란시키려 든다는 인상을 불러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불화란 종교에 대한 내적인 사랑에서 생기는 것 보다는 오히려 인간 감정의 상이함 또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왜곡하고 단죄하는-이렇게 얘기해도 된다면- 대립의 정신에서 생겨나옵니다. 저는 이미 저의 고독한 사생활을 통해서도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처럼 영광된 자리에 오를 경우에는 얼마나 더한 일들을 우려해야 하겠습니까? 따라서 진실로 존경하는 선생님, 당신께서는 제가 어떤 더 나은 삶에 대한 전망 때문에 거절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방해 받지 않는 생활에 대한 애정때문에-그러한 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기 위해- 제가 공식적인 강의를 거절하였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동희
헤이그에는 이준 열사의 묘소도 있다.
스피노자는 하이델베르크 교수직을 거절하고, 철학함의 자유를 지키면서 <신학 정치학 논고> 이후 마무리 짓지 못했던 <윤리학>을 완성시키는 데 몰두했다. <윤리학>의 1, 2부는 이미 <신학 정치학 논고>이전에 써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부분들을 그는 완성했지만 그의 생전에는 발표할 수가 없었다.

<윤리학>은 기하학적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5부로 되어 있다. 각 부는 <신에 관하여>, <자연과 정신의 기원에 관하여>, <정념에 관하여>, <인간의 부자유에 관하여>, <지성의 힘 혹은 인간의 자유에 관하여> 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오직 하나의 실체

스피노자의 철학 중 가장 독특한 점은 오직 하나의 실체만이 존재하는 데, 그것은 무한한 신적인 실체이며, 자연과 동일하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실체는 그 개념의 형성을 위해 다른 사물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자 ‘자기 원인을 자체 내에’ 가진 것이다. 달리 말해 실체는 자기가 존재하기 위해 다른 어떤 원인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 부모라는 원인이 있다. 부모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조부모라는 원인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은 실체이기에 존재의 원인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다. 또한 신은 무한하고 그 자신 안에 어떠한 제한이나 부정을 포함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은 분할 가능하지 않으며 자신의 내부에 모든 실재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두 실체라고 보았던 정신과 물질은 신이라고 하는 실체의 두 속성에 불과하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이러한 신을 자연이라 말한다. 신을 자연으로 본다는 것은 신을 질료적 물체인 자연으로 본다는 뜻이 아니다. 스피노자는 자연을 생산하는 자연(natura naturans)과 생산된 자연(natura naturata)으로 구분한다. 창조하는 자연과 창조된 자연은 같지 않다.

“신은 창조하는 자연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졌고, 하느님에 의해 존재 안에 보존된다.”

스피노자가 강조하는 신은 우리가 대하는 세계와 대자연의 내적 원인이다. 유태교나 기독교에서 볼 때, 신과 자연을 동격으로 본다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을 동격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격적인 신인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신을 자연으로 설명하고, 신의 법칙을 인과론에 근거한 필연성으로 이해한다.

신은 우주의 뒷편에 앉아 세상사에 일일이 간섭하고 참견하는 늙은 노인네가 아니다. 그는 전통적 기독교 신이 행하는 기적과 같은 자의성이나 우연적 간섭을 배제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빙자한 종교의 횡포도 막고자 했다.

스피노자는 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이성은 자연, 즉 신의 변하지 않는 필연성을 통찰함에 따라 자신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원인은 ‘신’ 이다. 다른 외부적인 원인이나 영향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자기 자신이 원인이 되어 움직일 때, 스피노자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이제 신이 우리의 원인임을 인식하고, 신의 법칙의 필연성에 따라 행위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의 근거는 필연적으로 신에 있다고 인식하며, 신이 규정하는 세계 진행에 자신을 내 맡길 때에 자유롭다.”

필연적인 ‘신’의 인식

스피노자는 인격신을 부정하고 기계적 인과론에 기초해 필연적으로 진행되는 자연으로서의 신을 긍정했다. 당시 유태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창조주이자 인격신을 부정하는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고, 스피노자가 죽고 나서도 증오감과 적개심을 거둘 수 없었다.

이동희
스피노자를 찬양한 괴테
스피노자는 서양사상사에 분명 이단아였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신’에 대한 이해를 다르게 보여 줌으로써 기독교적 ‘신’ 관념에 의해 지배되던 유럽의 세계관에 새로운 사고 지평과 세계관을 열었다. 레싱과 괴테, 헤르더와 슐라이어마허, 피히테와 셸링 등 스피노자 철학에 대해 동조하거나 새롭게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괴테는 이렇게 스피노자를 평했다.

“분명 그의 정신이 나의 정신보다 더 심오하고 순수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에게 매우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이해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도 생겨났다. 슐라이어마허는 신학자였지만 <종교론>에서 이렇게 그를 찬양한다.

“성스러웠지만 버림받은 스피노자의 영혼에 경건한 마음으로 내 머리털을 제물로 바친다!그는 신앙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성령으로 충만해 있었다네.”

분명 스피노자는 무신론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를 단순하게 범신론자라고 하기에는 신에 대한 그의 지적인 사랑을 충분하게 표현할 수 없다.‘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을 한 평생 추구하며 렌즈를 갈던 스피노자는 유리 가루 분진 때문에 진폐증에 걸려 1677년 2월 21일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고독하게 살면서 철학을 했지만, 세상과 유리되어 살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과 거리를 두고 세상의 문제를 바라보며 치열하게 고민한 철학자였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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