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 60주년, 촛불, 헌법

[시민운동 2.0] 박준우l승인2008.07.1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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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촛불시민들의 애국가 ‘헌법 제1조’의 가사는 이 두 문장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촛불시민들이 특히 절실하게 불렀던 가사는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리라.

오는 17일은 제헌헌법이 제정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60년이면 적어도 제 1조만큼은 더 이상 의심받지 않아도 될 때가 되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정말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지’를 심각하게 회의하고 있고, “국민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라고 외치면서 촛불을 들고 있다.

18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개헌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시 나오고 있다. 민주화 이행기의 임시 협약적 성격을 지녔던 것이 지난 1987년에 제정된 현행 헌법이다. 개헌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문제는 개헌의 방향이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에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내각제적 요소의 도입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촛불시위에서 드러났듯이 우리 국회와 정당들은 사실상 식물국회, 식물정당이었다. 이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지금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정치권 자신들밖에 없을 것이다. 해서 촛불시위에 필 받은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국민발의나 국민소환 같은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도입을 주장한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제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비판이 있다. 심지어 지금 국민투표를 한다고 해서 촛불의 민심이 투표 결과로 나타나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은 사실 이번 개헌의 핵심이 단순히 정치권력의 행사 과정 그 자체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디어스 신학림 기자는 이번 개헌의 핵심은 재계의 119조 2항 폐지 시도가 될 것이며, 현재와 같이 재계의 힘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이 조항의 폐지를 막기 어렵다는 이유로 개헌 논의에 부정적이다.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조항 하나로 인해 금산분리나 종부세 같은 법률들이 위헌 논란을 벗어날 수 있었다. 흔히 사회적 시장경제 조항이라고 불리우는 이 조항은, 사실 제헌헌법 이후로 유신헌법 때까지 지속적으로 우리 헌법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5공화국 7년간 잠시 “독과점의 폐단은 적절히 규제·조정한다”로 축소되긴 했지만 87년 헌법 개정에서 다시 부활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걸 폐지하는 것이 재계와 이른바 신자유주의자들의 간절한 소망임이 분명하다. 보수세력이 국회의 3분의 2 이상을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섣부른 개헌 논의가 위험한 것 또한 정확한 지적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목표가 '호헌'이어야 할까? 드넓은 촛불의 민심을 하나로 재단하는 것은 무리지만, 그 속에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의 삶을 내팽겨쳐버린 국가에 대한 항의'가 존재함은 분명하다. 119조 2항을 사수한다고 그 국가를 되돌려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학림 기자도 연이은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한미 FTA는 지금의 헌법 그 자체도 무력화하고 있는 것 아닌가?

촛불 시위가 한참이던 중에 한가롭게도 휴가를 얻어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를 읽었다. 라이시는 미국의 경제가 세계화되고 중산층 사회가 붕괴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현재의 민주주의만으로 세계화된 슈퍼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원하는 시민이기도 하지만, 슈퍼 자본주의와 이해를 같이하는 투자자이자 소비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 국민들 안에 있는 투자자와 소비자로서의 정체성 말고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불러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구축하기 위한 급진적인 제안들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업에게 부여된 법인격을 무효화하여 입법, 사법, 행정의 과정에 참여할 수 없게 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 제안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상상력들이다. 당장 개헌에 나설 필요도 없고 그랬다가는 오히려 큰 위기를 겪을 수도 있겠지만, 국가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헌법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박준우 함께하는시민행동 기획팀장

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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