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三伏)

인류 문명, 개와 뜀박질 한다면 개보다 나을까?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l승인2020.07.0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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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뜀박질은 안 하는 게 낫다. 개보다 잘 뛰면 ‘개보다 더한 놈’, 못 뛰면 ‘개만도 못한 놈’, 엇비슷하면 ‘개 같은 놈’이라니… 이런 우스개가 더 자주 들릴 터다. 웃기지만, 씁쓸한 뒷맛도 남긴다. ‘불편한 진실’이란 말도 떠오른다.

▲ 전 세계 확진자 10,000,000명 기록 직전의 최근 방송 화면. 미국은 그 수의 4분의 1을 넘었다. 사망자 수 비율도 비슷하다. ‘강대국’은 미국의 다른 이름이다. (CNN 화면)

‘개 팔자 상팔자’ 속담은 사람과 개 사이를 빗댄다. 반려동물로서의 ‘지위’가 나날이 새롭다. 심지어 ‘사람팔자’가 한스러운 (못난)이도 없진 않겠다. 멍첨지나 견공(犬公)은 개의 오래된 ‘직함’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뉴월 개 패듯’이란 말도 있어 그 이미지의 간격은 자못 크다.

음력 오뉴월인 7월과 8월의 삼복(三伏)은, 개에게 공포의 나날이었다. 사람(人 인)과 개(犬 견)가 나란히 선 글자 伏에서 그 꼬투리를 잡자. 어떤 사전들은 이런 취지의 풀이를 올렸다.

‘사람이 개를 잡아먹었다고 하여 생긴 말이 아니고 뒤집어질 정도로 더운 날을 표현한 것이 초복 중복 말복의 伏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래 사람 살아온 모습을 편견으로 왜곡(歪曲)한 것이다. 伏은 지금 ‘엎드리다’ ‘굴복(屈伏)하다’는 뜻으로 쓰는 단어다.

글자 아는 사람은, 더구나 사전은 이래서는 안 된다. 또 요즘 애견인들의 메시지에서 이런 의도의 언급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러나 바람(소망)과 진실을 혼동해서는 아니 된다.

개보다 못하던지, 더하던지 사람이 개와 함께 선 모습은 둘 간의 인연을 보듬는다. 동아지중해의 갑골문 시기(3500여 년 전)에 이미 사람과 개의 (그림)글자가 만들어졌고, 복(伏)은 그 후 금문(金文)의 시기에 생겼다.

갑골문 창안(創案) 시기인 상(商)나라를 지나, 춘분 하지 추분 동지 등 24개 절기(節氣) 개념이 빚어진 주(周)나라 시기에 금문이 활발했다. 청동기 즉 금속 기물(器物)에 새긴 문자인 금문은 갑골문의 업그레이드 판(版)이었다. 3개 복날은 이 절기와 연결된 이름이다.

더위와 관련한 삼복의 의미는 주나라와 비슷한 시기의 진(秦)나라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중국과 우리, 동아시아의 옛 기록은 복날 개고기 먹는 풍속이 일반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개를 식용으로 하는 이유를 오행(五行)으로 설명한 기록도 전해진다.

개는 오행으로 금(金)에 속한다. 화기가 극성을 부리는 복날은 불이 쇠를 녹이는 화극금(火克金) 즉 금의 기운이 쇠퇴하기 때문에 개를 먹어 부족해진 쇠(金)를 보충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여 더위로 허(虛)해진 심신의 균형을 바루고자 했다는 얘기다.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 5원소의 상극(相克)과 상생(相生), 옛 과학의 그 원리가 개고기 식용의 바탕이었다는 것이다. 반려동물 개나 그 반려자(伴侶者)인 애견인들의 취향이나 주장에 흔들려, 또는 의도적으로 역사나 전통의 전말(顚末)을 뒤집으면 안 되는 이유다.

당연히 주나 진나라 때 개 식용의 풍속이 복(伏) 글자에 스몄을 것으로 풀이한다. 아시아나 아시아 사람을 혐오하는 구미인들의 편견에서 비롯한 문화적 갈등 중의 대표 격(格)인 개 식용의 실상을 살피는 것은, 개인적 취향이나 소망과는 별도의 엄정한 지성의 문제다.

지구상 여러 지역의 풍토와 전통, 문명의 모습에 따른 생활의 여러 갈래를 16세기 대항해시대 이후 총칼로 주도권 쥔 구미(유럽과 미국)의 삶의 패턴(형식)으로 재단(裁斷)해 선악과 미추를 판별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가. 그들 풍속 속의 야만성을 우리는 다만 지켜볼 뿐인데.

인류는 이미 인식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코로나바이러스 19, ‘흑인의 생명은 귀중하다’는 BLM(Black Lives Matter) 등은 그 허망함을, 침략과 약탈의 제국주의로 세운 문명과 ‘선진국’의 취약한 인간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이는 ‘대통령 트럼프’의 바탕을 설명하기도 한다.

뒤집어야 산다. 서구가 강요한 원칙을 벗고 ‘새로운 나’를 세우는 것이다. 변화 말고 개벽(開闢)이다. 개를 먹든 말든, 三伏에서 찾아낸 절실한 뜻이다. 이제 ‘우리’가 기준이다. 청년들아, 코로나 이후가 어떨지 묻지 마라. 당신이 만들어라...

▲ ‘엎드리다’는 뜻 복(伏)의 금문. 갑골문 인(人)과 견(犬)자가 합쳐서 새 단어가 됐다. 그림(글자)의 해석에는 상상이 필요하다. (이악의 著 ‘한자정해’)

토/막/새/김

우랄알타이어=한국어?

복(伏)은 사람 人과 개 犬이 합쳐진 회의(會意)문자다. 뜻은 그림에 있다. 상형(象形)문자의 새 글자 빚는 방법 중 하나다. 한글 ‘가나다…’의 글자 하나하나는 본디 뜻이 없다. 발음을 나타내는 무, 지, 개는 합쳐서 홍(虹) 즉 무지개(레인보우)의 뜻을 이룬다. 소리글자 한글과 뜻글자 한자(문자)의 차이다.

서양 언어학은 교만한 우월감으로 ‘뜻글자 한자는 (소리글자 알파벳에 비해) 열등하다’고 했다. 뜻글자는 소리글자로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억지도 부렸다. 뜻 없이 어찌 말글 되랴.

지도만 보고 한국어를 우랄알타이어계(系)에 속한다고 규정한 것도 그 무지의 폭력이다. 우리와 우랄알타이의 언어적 촌수(寸數)는 여태 짐작도 안 되고 있다. 엉뚱한 서구 언어학의 억지를 신봉해 ‘우랄알타이어=한국어’라고 인터넷 베끼는 ‘지식인’들 아직 많아 비웃음 산다.

소리글자 영어에서는 라틴어 그리스어 등의 (선배) 언어가 뜻을 품어 (새) 말을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역시 소리글자로 표기되는 한국어에서는 한자가 그 역할을 한다. 영어권에선 선배언어 공부가 인문학의 기본이다. 우리는 외국어(중국어)라고 한자를 왕따시킨다.

갑골문 시기, 황하 유역이 중국 영토였던가? 우리(선조)는 그 때도 두만강 백두산 압록강 아래서만 같잖은 활갯짓 흉내 내던 쪼잔한 겨레였던가? 부디 정신줄 놓지 말게나…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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