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국이 물난리

“피해에 고초를 겪은 분들께 심심한 위로” 양병철 편집국장l승인2020.08.1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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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물 폭탄으로 인해 경남 창녕군 이방면 마을 2곳이 낙동강 제방 유실로 침수됐다. (사진=YTN)

지금 내 나이는 62년생이다. 이런 나이다 보니 가끔 예전을 회상하는 게 나의 버릇이다. 그도 그럴 게 이 나이엔 그 예전을 추억하는 게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 같고 그렇고 그런 기억을 갖고 있어 그래도 나름은 인생이 있는 것 같은 기분. 그런 예전 기억과 지금을 이래저래 비교하면서 씨익 웃는 것도 이 나이엔 어떻게 그런 시절을 살았냐는 것으로 흐뭇할 따름이다.

지금 전국이 물난리이다. 하늘 문이 열린 듯 엄청나게 퍼부어 전국 어디든 무슨 놈의 이런 비가 있냐며 아우성이다. 연일 티브이는 이런 물난리 피해 지역에 카메라를 들이대어 마치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노아의 홍수 같다. 한 마을이 온통 그 누런 물에 잠긴 거며 제방이 터진 장면, 도로가 주저앉은 모습들은 가히 물난리 그 자체이다.

이런 물난리에 내가 실제 경험한 기억 하나가 있다. 그때가 76년도인지 77년도인지 모르겠다. 시골에서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이었다. 우리 집, 창녕의 유어에서 학교까지는 거리상 15km쯤 되고 그때 그 거리를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아이들과 다녔다. 이번의 물난리처럼 그때도 며칠 폭우가 쏟아져 마을에서 4km떨어진 동정리 앞 늪이 불어난 물로 잠겨 있는 마당이었다.

지금도 그 기억이 선연하기만 하다. 누런 황토 같은 물이 들어차 골짝 골짝마다 다 잠겨 있고 동정리 앞의 도로까지 잠겨 있는 호수 같은 그 장면을 들머리 마을의 집마다 그 누런 물이 들어가 지붕만을 내놓게 했고, 홰나무·느티나무만 나 있는 그 모습들을 이렇게 온통 물바다이면 사람들은 어디로 갔냐며 둘레거리며 주위를 바라보자 그 뒷편의 야트막한 야산에 죄다 있는 듯 민둥산 여기저기에서 띄었고 밥을 짓는 새하얀 연기도 났다.

그때도 비는 부슬부슬 왔다. 중학생인 나는 오늘과 같은 비닐 우의를 입었지만 오래 입다 보니 이래저래 뜯기고, 찢어지고 해 그 비로 전신이 물에 빠진 꼴이었다. 이렇게 늪이 잠겨 학교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서 10km쯤을 가야 학교인데 자전거 길이 물로 덮힌 판에 어떻게 가리. 한데 동정리 위쪽에 있는 미동이란 동네의 선배가 학교는 가는데 의의가 있다며 가자는 거였다.

이런 비에 사나이가 떨어서야 되겠냐며 가자는데 그 선배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군대와 마찬가지로 당시 중학교도 선배는 하느님과 친구였다. 하느님이 가자는데 아니 갈 수 없는 노릇. 이러해 가방만 어깨에 멘 채 자전거는 거기 미동이란 마을 앞의 자전거방에 두고 우리는 그렇게 잠긴 늪의 둑길로 올라 그 질척한 흙길을 걸으며 나아갔다.

그 선배 말대로 우리는 학교에 가는데 목적이 있으니까. 물에 잠겨 있는 그 늪의 둑방길을 걸으며 또 물에 잠겨 있는 골짝 골짝의 마을들을 바라보자 어떻게 우리들 사는 터전은 저러한지 마냥 고개가 저어졌다. 그때 도합 댓 명이 그 선배를 따라 그 빗속을 뚫고는 걸은 것 같다. 아마 선배가 아니었으면 우린 학교 가는 걸 포기했으리라.

그렇게 해 산기슭과 닿아 있는 그 둑방길이 끝나면 일제 때 동척(東拓)이 만든 영남에선 젤 크다는 영남수리안이란 둑길이 있었다. 학교로 가려면 그 둑길로 가야 했다. 어쨌든 그 둑방길을 걸어 영남수리안으로 오르는 그 길까지 온 거였다. 그리고 그 길의 위에 들어서는데 우리가 선 제방의 오른쪽 끝 부분에서 그 둑이 갑자기 무너져 터지는 거였다.

그러니까 박원순 시장의 고향인 장갈(장가리), 그 위쪽은 초곡이며 화왕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넘쳐 이곳 늪을 못 넘게 막은 제방을 터지게 했다고 할까. 우리와 반대편에서 제방이 터진 게 천만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 누군가 둑이 터진다는 말이 있고 그와 함께 그 엄청난 물소리를 나는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 이러고부터 우리는 오로지 산쪽으로 뛰었다.

부리나케 뛰었다. 그렇게 뛰어 산자락에 다다랐는데 거기엔 복숭아밭이 있었다. 주먹만 한 복숭아가 열려 있기에 그런 총중에서 나는 복숭아 3개를 땄다. 그렇게 제방이 터져 그 물이 우릴 따라 오는 것 같았다. 그때 물소리인 쉬쉬익거리는 그 소리도 못 잊는다. 그랬어도 견물생심이라고 그놈 복숭아를 딴 거였다. 다른 때는 거기 원두막에 주인이 지키는데 이날은 비도 오고 늪이 물바다인지 아무도 없었다.

아, 이리하여 그 복숭아밭을 지난 야산 중턱에서 그렇게 제방이 터져 불어나는 물을 바라보고, 사방 마을마다 물에 잠긴 전경을 바라보며 그 복숭아를 먹은 그때도 나는 못 잊는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다들 몇 개를 따서는 거기 산 중턱에 쪼그려 앉아 그 부슬비를 맞으며 베어 먹는 그런 장면도 못 잊는다. 그날, 학교 가는데 의의가 있고 나발이고 우린 숫제 말로 농땡이를 쳤다.

그런 복숭아를 먹자 배가 일어났고 얼마 후 비가 그쳐 야산 꼭대기로 올라 거기 돌팍에 앉아 또 물에 잠긴 동네며, 천지가 물바다인 주변을 바라보며 각자 가방에 있는 도시락을 거기서 까먹은 그때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나서 도회생활을 하다 세월이 흘러 그 늪을 지나게 되었다. 그 누런 물바다였던 늪이 경지정리가 되어 옥토로 바뀌어 있었다.

그때 터진 그 제방은 아주 탄탄해 어떤 물벼락에도 견디게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제방이 터질 때 자칫 잘못했으면 그 급물살에 휩쓸린 번한 거였다.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아, 그런 판에서 그 복숭아는 그 얼마나 맛이 있던지...

이 물난리에 그때의 기억이 아련히 떠올라 몇 자 적었다. 섬뜩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만 한 기억이다. 이번 물난리 피해에 고초를 겪은 분들께 심심한 위로를 드리며 힘내시기 바랍니다.

양병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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