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련설-연꽃을 사모함

청결한 선비의 德 또는 염화시중의 미소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l승인2020.08.1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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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을 노래한 글이 어찌 하나뿐일까. 허나 연꽃 둥글게 세상 맑히는 계절엔 늘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애련설(愛蓮說)이 사람들 마음에 나돌기 마련이다.

‘... 진흙에서 나왔으되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비어 있고 밖은 곧으며...’ (蓮之出於淤泥而不染 濯淸漣而不夭 中通外直)

처염상정(處染常淨), 더러운 곳에 있어도 늘 깨끗하다는 연꽃의 이 이미지는 여러 형태로 변용(變容)되면서까지 갈수록 또렷하다. 누구의, 어디서 나온 글인지가 무슨 상관이랴, 연꽃 좋아하는 마음, 공감하는 바가 이토록 절실한 것이니.

▲ 무안 백련지의 연꽃. 이쁘기 미묘하나 요염하지 않다. 느낌 만만치 않은 부처님 꽃이요, 선비 덕(德)의 상징이다. (이돈삼 사진)

이 정경(情景)은 부처님 모습과 겹친다. ‘이(李)가 마음이 전(全)가 마음’이라는 객쩍은 농담으로도 회자되는 이심전심(以心傳心·마음으로 마음에 전함)과 비슷한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에 연꽃 한 송이가 들어선다.

꽃(花)을 들어(拈) 사람들(衆)에게 보이다(示), 석가모니가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다.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으나, 제자 가섭(迦葉)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불교 관련 숙어 불립문자(不立文字)와 맥(脈)이 통하는 이야기다. 때로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禪宗)의 바탕, 또 불교 바깥으로도 진출한 선(禪) 또는 참선의 의의로 설명되는 본보기다. ‘나’에게는 그 연꽃, 무슨 뜻일까?

하늘 향해 높이 걸린 해남 미황사의 탱화(幁畵)를 보았다. 부처상 양발 떠받치는 연꽃 족좌(足座)와 주변 연화당초가 아름다웠다. 앉은 자리부터 선 자리까지, 앉으나 서나 저렇게 연꽃 바다다. 인도부터 동아시아까지 불교의 장면들에 오래 펼쳐져온 그림이다.

연꽃 자태를 기꺼워함은 여름의 놓치지 못할 정취다. 전남 무안 회산마을 백련지, 충남 부여 궁남지, 경기 양평 세미원 등은 이즈음 경향(京鄕) 각지 애련인들의 발자국 요란하다.

착한 뜻만으로 애련의 마음이 이렇게 쌓였을 리는 없다. ‘집착(執着) 버리라’ 되뇌는 절집의 전통도 차마 내치지 못한 ‘꽃의 미학’의 완결편이랄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연꽃의 미묘함은 향기만큼 은은하다.

색이 깨끗하고 곱다. 원만(圓滿)한 모양이 편안하다. 한없이 투명한 그 기품(氣品)을 문득 닮고 싶다. 유럽의 꽃말도 청결, 신성(神聖), 아름다움 등이니 우리 생각과 통했구나.

연꽃은 3일간 제 ‘생명’을 펼친다. 첫날은 절반만 피어 오므라든다. 이튿날 활짝 피어나 화려함과 향기를 터뜨린다. 3일째 낮에 연밥과 꽃술 남기고 꽃잎을 떨군다. 제 몸이 아름다울 때 스스로 낙화(落花)를 택한다.

그래서, 물러날 때 알아 스스로 뒷모습을 마무리하는 ‘군자(君子)의 꽃’이라고 칭송하기도 한다. 유교문화와 어울리는 이미지여서 또한 애호의 표적이 되어온 것이다.

말과 글은 비유(比喩)의 세계다. ‘깊이’는 거기서 나온다. ‘속 보인다’는 말도 그렇다.

▲ 사람 인(人)과 옳을 가(可)를 합친 모양인 어찌 하(何)는 어깨에 짐 실은(맨) 사람 그림의 변형, 풀 초(艸) 더해 ‘싣는다’ 뜻도 담은 연잎 뜻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 하(荷)다. (이악의 著 ‘한자정해’ 삽화)

토/막/새/김

설익은 지식, 코로나바이러스만큼 역겨워

경북 영양 삼지리의 하담정(荷潭亭)은 호(號)가 하담인 조선시대 문인 조언관이 조성했다. 하(荷)는 연(꽃)의 다른 이름이다. 담(潭)은 둠벙이다.

널따란 연잎, 인도에선 음식 펼치는 밥상으로도 쓰더라. 개구리 놀이터다. 하(荷)가 (물건을) ‘싣는다’는 뜻으로도 쓰이게 된 까닭이다. 수하물(手荷物·손짐)의 荷다. 연꽃의 영어 lotus(로터스)가 물류회사나 스포츠카의 이름에 들어있는 이유겠다.

연꽃이 ‘군자의 꽃’이니, 군자(선비)는 먹고 사는 지식과 함께 마음에 덕(德)을 실어야 제격일 터. 아니면 우수마발(牛溲馬勃·쇠오줌과 말똥)이지 어찌 사람이랴. 말은 이렇듯 엄정한, 어마무시한 뜻 싣는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 찌르려던 경감 자베르의 최후에서도 보았다.

덕 없는 자들, 부덕의 소치들이 나댄다. 전공밖엔 가진 게 없는 ‘전문바보’들의 행진을 저어한다. 무슨 ‘교수’라는 친구, 공부 좀 하고 세상에 나오면 좋으련. 아니면 마스크로 얼굴 덮고 묵언(默言)하라. 설익은 지식이 풍기는 썩은 냄새, 코로나바이러스만큼 역겹다.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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