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횃불을 들다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08.07.2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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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주권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도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본격적으로 발 벗고 나섰다. (사)소비자문제를연구하는시민의모임(회장 김재옥)은 ‘과학적 평가와 공론화 과정 없이 정치적, 산업적 고려를 우선으로 한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대한 소비자들의 분노는 당연하고 예측된 것’이라며 수입 쇠고기의 전수(全數)검사가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성명을 최근 발표했다.

전수검사는 미국이 한국에 수출하기 위한 소를 일일이 검사하여 광우병 등 안전이 확인된 후 도촉하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국내 일부 수의(獸醫) 과학계가 그 필요성을 주장했고, 김성훈 상지대 총장(전 농림부 장관)이 필요성과 함께 구체적인 타당성을 주장해 주목을 받고 있는 방안이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관해 소비자단체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깊은 우려를 표명해 왔다. 그러나 주요 언론매체들은 소비자단체의 이런 우려에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에너지나 소비절약, 유전자조작 농산물, 이물질 함유 적발식품, 휴대전화나 인터넷 서비스 과다요금 등 정부 시책이나 기업의 영업과 관련된 분야에 대해 민감하게 보도하는 것과 크게 대조적이다. 정부의 ‘강행’ 방침에 기죽은 데다 당장의 광고 수입과도 관련이 없기 때문으로 해석되지만, 사안의 중대함에 비춰 ‘소비자로서의 알 권리’를 바르게 부각시키지 못한 점은 지적을 받을 만하다.

시민사회 다양한 의견의 창구를 자임하는 우리 <시민사회신문>은 소비자단체의 이번 성명과 관련한 사안을 주목한다. 이는 ‘정부의 고집’이나 ‘언론의 의도적인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단체가 본분에 입각해 ‘소비자의 최종적인 이익’을 도모(圖謀)한 해석과 미국의 축산업자들도 수긍할만한 적절한 해결방안을 제시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선책은 물론 ‘재협상’이지만, 이것이 정 어렵다면 20개월령 이상 30개월령 미만의 미국 소에 대해 광우병 인자 유무를 가리는 전수검사를 하여 위험인자가 없는 쇠고기만을 들여오게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최선의 차선책’이 아니겠느냐고 정부에 묻는 것입니다.”

문은숙 소비자시민모임 기획처장의 이런 ‘요구’는, 실은 정부로서는 귀하게 받아들여 활용해야 할 금과옥조다. 분노에 찬 ‘촛불’의 위세에 대책 없이 궁지에 몰린 정부가 ‘명분’으로 삼을 만한 비책(秘策)이 아니겠는가.

혹 정부는, 이제 ‘촛불’은 끝났다고 여기고 있는가? 국민들은 망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어느 쇠고기’건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고 이 정권의 공덕을 노래해줄 것이라 여기는가? 자신들이 동원한 전문가들의 ‘증언’ 대로 광우병 비극의 확률 게임이 이명박 씨의 승리로 귀결되리라고 확신하고 있는가?

100년 쯤 전 미국 작가 업튼 싱클레어가 쓴 ‘정글’이라는 소설은 미국 소와 미국 축산업의 본질을 증언한다. 도축장의 비참한 노동환경과 비위생적인 처리과정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당시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랄프 네이더가 개념을 완성한 ‘미국 소비자 운동’의 발상지가 바로 싱클레어의 ‘정글’이라고도 얘기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지금도 미국의 소비자단체와 소비자운동가들에게 현재진행형이다. 새롭게 미국 축산업의 문제를 파악하고 고발하는 책이나 미디어 프로그램들이 줄을 잇는다. ‘미국 소비자의 안전’을 위한 미국 시민사회의 노력이다. 이런 노력은 한국의 소비자들과도 무관할 수 없다.

미국의 컨슈머스 유니언(Consumer's Union Of America)은 최근 국제소비자기구(컨슈머스 인터내셔널)의 동료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에 이런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수입하는 한국이 왜 큰 소리를 치지 못하고 미국에 끌려가느냐? 일본은 20개월 미만 쇠고기 중에서도 일부만 수입하지 않느냐? 소 이빨로 나이 판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이 규정을 더 약화(弱化)해 놓고 한국정부에 ‘강화(强化)했다’고 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 한국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한국 정부에 문제 제기를 하라.”

‘나라의 기둥’이라 할 만한 직함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미국 쇠고기 홍보시식회를 열고 “정작 먹어 보니 아무 문제없고, 한우보다 맛만 있네”하고 내놓고 떠드는 행실머리를 TV로 지켜본 국민들의 허무함과 황당함을 어찌 씻을 수 있을까?

우리가 세금을 내서 미국 업자들 대리인들 하수인들이나 키우고 있지 않나 하는 원망이 촛불을 횃불로 키우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소비자시민모임의 성명을 읽어보니 이미 거기엔 횃불의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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