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 찢긴 건 국가에 대한 패륜?

[문한별의 미디어 바·보] 문한별l승인2008.08.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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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은 국가의 피부다. 지난 4일자 중앙일보 ‘시시각각’ 코너에 오른 김진 논설위원의 칼럼 제목이다. 김 씨의 논지는 간명하다 못해 투명할 정도다. 지난달 27일 새벽, 서울 도심에서 젊은 경찰관 2명이 시위대에게 상의가 벗겨지고 린치를 당했는데, 이명박 정권은 강경대응하지 않고 뭐하고 있느냐는 거다.

물러터진(?) 이 대통령을 자극하기 위해 김 씨는 '물태우'라 놀림받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지면에 불러내 비교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강경대군 사망 사건으로 정권 전체가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했을 때, 노 전 대통령은 마침 외국어대에서 벌어진 ‘정원식 총리 밀가루 투척사건’을 역이용해 학생들의 패륜행위를 부각시키는 한편, 공권력을 총동원하다시피해서 재야의 투쟁계획을 좌절시키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는데, ‘불도저’라는 이명박 대통령은 경찰이 옷벗김을 당하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도 당최 자신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있으니 그게 답답하다는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일까? 김 씨에 따르면, “발가벗겨진 경찰들의 사진이 신문에 실린 그날 아침,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일이 벌어져야 한다”. 어떤 식으로? 대통령은 휴가지에서 특별회견을 갖고 죽어가는 법과 맞는 경찰을 살리겠다고 선언했어야 하고, 총리는 법무·행정안전부 장관과 검찰총장·경찰청장을 불러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어야 한다, 기타 등등. 폭력시위 사태 내내 그들이 이런 직무를 유기해서 “젊은 경찰의 팔과 다리가 부러지고 나라의 법은 휴지처럼 뒹굴었다”는 게 김 씨의 진단이다.

‘제복=국가의 피부’론을 강조하는 칼럼의 마지막 단락은, 최후 결단을 주저하는 이 대통령에게 17년전 그때처럼 언론이 뒤를 받쳐 줄 테니 우리를 믿고 맘껏 ‘민중의 몽둥이’를 휘두르라는 은근한 추파 내지는 달콤한 부추김에 다름 아니다. “제복을 찢고 경찰의 맨살을 패는 것은 국가에 대한 패륜행위”요, “국가의 정신에 밀가루를 뿌리는 것”이라며, 정원식 밀가루 투척 사건과 경찰 옷벗긴 사건을 무리하게 대입시키려는데서 칼럼의 비열한 속내가 빤히 묻어난다.

중앙일보가 이명박 정권 들어 저널리즘 대신 애널리즘을 실천하는데 김 씨가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평소 익히 일고 있었지만, 김 씨의 이 칼럼은 특히나 더 고약하다. 의도의 음험함과 생각의 천박함, 그리고 언론에 대한 몰지각성에서 감히 그에 필적하는 적수를 찾기 어려울 만큼.

‘물태우’라 불리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원식 사건을 이용해서 정국 반전에 성공했듯이, 이 대통령도 경찰 옷벗겨진 사건을 활용해 강경하게 치고 나가라는 게 언론인이 입에 담을 소린가. 또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복 찬가’를 불러대고 ‘제복 찢긴 건 국가에 대한 패륜’이란 어거지논리를 창안하는게 유력신문사의 논설위원이란 사람이 할 짓인가. 도대체 명색이 기자라는 사람 눈에 정권의 안녕과 권력의 누수만 보이고 공권력에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된 국민들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2008년 8월 4일자 <중앙일보> 김진 칼럼
분명히 말한다. 제복이 국가의 피부라면, 국민은 국가의 살점이고 심장이다. 경찰을 발가벗기는 것이 국가의 피부를 찢는 것이라면, 국민에게 뭉둥이를 휘두르는 것은 국가의 살점을 도려내는 짓이다. 제복을 찢고 경찰의 맨살을 패는 것이 국가에 대한 패륜행위라면, 촛불을 든 국민의 머리를 날 선 방패로 내리 찍고 군홧발로 짓이기는 것은 국가의 심장을 후비는 만행이다. 피부가 살점과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듯이, 민주화시대의 제복은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김 씨가 제복이 벗겨진 사건을 과장하고 극대화시키면서 이로써 이명박 정권을 선동하여 국민 압살의 명분을 삼으려 하는 것은 지난 날 독재시절처럼 제복으로 하여금 ‘정권의 갑옷’으로 되돌아가라고 떠미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경찰의 몽둥이와 방패, 군홧발에 짓밟혀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피같은 울분’을 터트리기는 커녕 권력자에 기생하여 아첨의 말이나 속삭이고 있는 당신을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대통령의 뒤를 닦아 줄 시간은 있어도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시간은 없는 추악한 애널리스트의 전범으로.


문한별 미디어전문기자

문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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