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독립’은 포장?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8.08.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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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은 정권의 전리품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정연주 KBS사장을 강제로 해임했다. 정 사장은 5년 동안 정들었던 KBS를 떠났다. 검찰은 하루 뒤인 12일 정 사장을 전격 체포했다. 검찰, 감사원, 국세청, 교육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청와대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한 것이다. 포클레인으로 떠낼 때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던 정 사장은 ‘토목 대통령’의 ‘삽질’로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인물로 빈자리를 메꾸려 할 것이다.

“여러분들이 공영방송 KBS를 지키는 일에 저의 존재와 이를 둘러싼 문제가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정 사장은 사내 게시판에 올린 ‘퇴사의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제 사내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을 사수하는 ‘과업’은 사원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사외에서 함께 투쟁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반역사적이고 반민주적이며 오만과 무지에 찬 이명박 정권”과의 싸움을 선언했다.

정 사장이 KBS를 떠났지만 ‘KBS 사태’가 끝난 것은 아니다. 18년 만에 KBS 사옥에 경찰력을 불러들인 이사회의 무리수, 무참하게 짓밟힌 사원들의 자존심, 무자비한 ‘백골단’의 폭력에도 KBS를 지킨 촛불들, ‘국민의 방송’을 정권에 빼앗긴 국민의 허탈감 등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정 사장이 제기한 해임처분 무효확인 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남아 있다. 정 사장이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법원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법률에 규정돼 있지 않은 대통령의 KBS 사장 해임권과 KBS 이사회의 해임 제청권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KBS의 독립성을 가름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권력은 최우선적으로 방송장악을 시도했다. 총칼로 무장한 박정희 쿠데타 세력은 한강다리를 넘자마자 남산 KBS 사옥을 점거하고 아나운서에게 이른바 ‘혁명공약’을 낭독하게 했다. 전두환은 계엄 하에서 보도내용을 검열하고 비판적인 언론인을 강제 해직했으며 방송사들을 통폐합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수순도 이들을 꼭 빼닮았다. KBS 이사회는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이명박 정부에 우호적인 6명의 이사만 참여한 가운데 KBS 사장 해임제청 안을 의결했다. 유재천 이사장이 경찰력 투입을 요청했다. 300여명의 경찰이 KBS 3층 회의실과 6층 임원실에 난입했다. 방송사의 심장부를 유린한 것이다.

경찰력 투입은 KBS 사장만 요청할 수 있다. 이사회의 KBS 사장 해임제청권은 법에도 없다. 법을 잘 아는 ‘원로 언론학자’가 스스럼없이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사회의 제청을 받아 들여 곧바로 정 사장을 해임했다. 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KBS사장 해임권을 행사한 것이다.

방송인들은 1987년 6·10시민항쟁 이후 방송민주화를 위해 끈질기게 싸워왔다. 정권의 방송에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 기나긴 투쟁을 벌였다. 정부가 임명한 사장의 출근저지와 파업 투쟁 과정에서 수십명이 감옥에 끌려 가는 아픔도 겪었다. 그래서 얻어낸 것이 2000년 제정된 통합방송법이다. 방송독립을 위해 KBS 사장의 임기를 법적으로 보장한 것이다. 대통령의 KBS사장 해임권을 없애고 절차적 임명권만 부여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이번 폭거는 20년이라는 기나긴 투쟁 끝에 쌓아 올린 방송독립의 금자탑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린 것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독재정권들처럼 정권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방송 장악’이 최우선 과제라고 여기는 것 같다. ‘방송 독립’은 거추장스러운 포장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KBS 사원들은 지난 11일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을 출범시켰다. ‘방송 독립’의 기치를 내릴 수는 없다는 사명감 때문일까. 이들이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어떤 투쟁을 벌일지 기대된다. 그러나 KBS는 사원들의 방송이 아닌 ‘국민의 방송’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이번 방송장악 저지 투쟁 과정에서 수많은 촛불들이 매일같이 밤늦게 KBS를 지킨 이유를 알아야 한다. 뒷짐지고 서 있던 KBS 노조는 촛불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촛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1986년 ‘땡전뉴스’에 반발하여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던 ‘KBS 시청료 거부운동’을 상기해 보라. KBS에서 ‘땡박뉴스’가 울려 퍼지게 되면 촛불은 수신료 거부운동에 들어갈 것이다. KBS사원들과 이명박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KBS를 지켰던 촛불이 KBS를 향해 던지는 횃불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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