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식코’ 의료재앙, 한국 상륙?

섣부른 ‘의료의 미국화’ 대안은 없나 홍수연l승인2008.08.1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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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을 가진 자는 힘이 없고, 힘 있는 자들은 대안을 실천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상황은 항상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된다.”

저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존 갈브레이스가 1992년 미국 경제를 전망하며 한 말이다. 그러나 미국의 거시경제 지표는 1990년대 내내 장기호황세를 이어갔다. 그렇다면 갈브레이스의 전망은 틀렸던 것일까?

아니다. 이 시기 미국에서는 ‘주주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가 전면화되었다. 사실상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세계화의 유일한 모범인 것처럼 완성된 시기였다. 1990년대 미국 자본주의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역사상 가장 노골적으로 상위 1%가 자본이득을 독식했고, 하위 60%의 사람들은 실질임금 저하, 노동시간 연장이라는 악조건에서 살아가는 대사건을 맞았다. 그 와중에 1930년대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국민의료보장’을 부르짖었던 미국의 의료제도 개혁세력이 당시 힐러리 클린턴을 필두로 완전히 항복했다는 사실도 살짝 숨겨져있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완성기

많은 국민들이 영화 ‘식코’를 관람했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보았던 100여 명의 시민들은 격앙됐다. 국민건강보험 없이 민간보험이 활성화된 미국식 의료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된 까닭이다. 동시에 현재 건강보험 보장성 60%인 한국 의료현실에서 정부가 ‘식코’ 속 미국의료를 따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영화 상영 내내 우는 분들도 계셨다. 영화가 끝난 후 ‘도대체 저렇게 악랄한 의료제도에 맞설 대안은 왜 없는 거냐’ 면서 분개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대체로 식코를 본 시민들의 의구심을 종합하면 이렇다. 미국 사람들은 죄다 바보라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일까, 그렇게 나쁘기만 하다면 미국이라는 사회는 이미 붕괴되었어야 마땅하지 않나? 한국의 지배세력들은 식코를 보고서도(?) 왜 미국식 의료제도를 따라가려 하는 것일까? 겉보기에 미국, 영국, 프랑스는 비슷비슷한 것 같은데 의료제도는 왜 그렇게 다른 것일까?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SCIKO)’가 던진 충격은 한국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식코의 한 장면.

대개 선진국들의 의료제도란 어떤 천재적 개인에 의해 고안된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적 과정과 관습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근대적 의미에서의 의사, 의료제도는 미국에서 100년이 채 안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로 만들어진 만큼 미국을 지탱하는 원초적 가치는 ‘개인, 책임, 개척’ 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전미총기협회(NRA)’ 등의 보수 집단이 항상 외치는 구호이기도 하다. 의료제도 역시 의사는 의사집단으로, 국민인 개인들은 의사에게 각자의 주머니에서 직접 진료비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 ‘의료보험’ 혹은 ‘의료보장’이라는 개념이 알려진 게 30년도 안 된다. 70년대만 해도 병원 문턱이 얼마나 높았는지 어르신들은 모두 기억하고 계신다.

1929년 대공황 시기에 미국에서도 노동력 보전과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보건의료제도에 관심이 크게 대두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사회주의국가 소련의 무상의료 역시 무시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미국 공산당의 ‘전국민 의료보장’ 요구에 ‘미국의사협회’가 전면적으로 반대하면서(2000년 한국 의약분업 때 한국의사들의 휴진과는 비교가 안 된다), 미국의료는 보장으로 갈 기회를 놓치게 된다.

게다가 미국노동총연맹(AFL) 역시 대기업을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조합들이라서 의사협회와 직접 직장의료보험 방식의 계약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한국에도 265개의 지역의료보험조합들과 직장의료보험조합연합회라는 분리된 의료보험자들이 있었는데, ‘국민건강보험’으로 재정과 조직운영을 통합 일원화하기 위해 직장의료보험조합을 구성하고 있던 대기업노조를 설득하는 데에 10여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농어촌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료보험조합은 어르신들의 구성비가 높아서 들어오는 보험료는 적고, 나가는 의료비는 많아 항상 적자상태였다. 반면 대기업의 젊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직장의료보험조합은 월급에서 보험료 꼬박꼬박 걷어도 젊은 구성원들이라 잘 아프지도 않고, 아파도 직장생활하며 병원 간다고 빠지는 일도 드물어 엄청난 흑자를 보았다.

2차 세계대전 후 불어닥친 매카시즘 광풍으로 미국공산당이 완전히 몰락하고 미국노동총연맹 또한 우경화된 후, 더 이상 전국민 의료보장을 위한 운동에 전면적으로 나설 수 있는 집단은 미국에서 사라졌다.

공공의료 서비스의 한계

베트남 전쟁과 68혁명으로 불리는 세계적 운동이 불붙던 시기에 미국에서도 전환의 기회를 맞았다. 1965년 미국에서는 메디케이드(Medicaid, 주정부가 주관하는 저소득층 의료부조)와 메디케어(Medicare, 연방정부의 저소득노년층 의료사회보장)가 시작되었다.

이 때는 전세계에서 미국으로 많은 의사들이 이주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영국 국가건강제도에 반대하는 영국의사들을 필두로 한국전쟁 후 원조경제 시대에 미국의 미네소타 플랜 등으로 키워진 한국의 젊은 의사들까지. 우리 주변에서도 이 시기에 미국이나 캐나다에 이주한 선배의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미국의사협회의 통제는 느슨해졌고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의사들도 많아졌다.

메디케이드는 빈곤선 기준소득 차상위 120% 이내의 극빈층에게 제공되는 의료보장이다. 한국의 의료보호제도와 흡사하지만 인구의 12% 가량을 포괄하고, 보장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는 점에서 한국 의료보호 보다는 훌륭하다.

메디케어는 정규직으로 일정 기간 이상 일한 사람들이 낸 세금을 재원으로 65세 이상이 되면 의료보장을 제공하는 제도인데, 노인의료비가 워낙 급증하다보니(미국에서는 한 사람이 평생 쓰는 의료비의 약 절반을 사망 전 2년 동안 사용한다는 통계도 있다) 2019년이 되면 재원이 다 고갈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노인인구의 30%가 메디케어의 전면적인 혜택을 받고 있다.

소수세력차별시정정책(Affirmative action)의 역할도 크다. 빈곤층, 소수인종, 유학생 ,장애우 등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의료 영역에서도 관철된다. 가난한 나라 출신의 고급과정 유학생에게는 거의 상징적인 정도의 학생의료보험료로 많은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이는 교육을 주된 상품으로 취급하는 미국 제도에서 최소한의 장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혜택으로 90년대 이전에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다닌 많은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미국 의료제에 호의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미국 의료제도가 도대체 뭐가 어때서, 고맙고 좋기만 한데’라고 강변할 수 있는 현실적 이유가 되기도 한다.

또한 미국의 공공의료 비중은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 미국의 공공의료기관은 전체의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대학병원, 재향군인 병원, 수도회 병원 같은 기관에서는 연구 및 자선 등의 명목으로 자원하는 환자들이나 희귀병 환자들에게 파격적으로 낮은 진료비로 진료받을 수도 있다. 천문학적인 국민의료비 지출이 주된 축이지만, 이면에 위와 같은 보완적 장치들이 미국의료를 지탱해주고 있다.

한국 의료의 미국화 우려

신자유주의를 달리 표현하면 ‘미국적인 것이 세계의 유일한 표준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식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미국적인 것’이 무엇일까? 미국 인구의 15%, 4천500만 명 가량이 아무런 의료보험 플랜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혹은 미국에서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중산층 직장인조차도 의료비 때문에 파산할 수 있다는 사실일까?

의료제도는 삶과 죽음의 문제로 직결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돈 없으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공공연한 현실이 된 세상이다. 미국 의료제도에서의 공공적 인프라도, 의료에 쏟아붓는 막대한 공공지출도 없는 상태에서 한국이 섣불리 ‘미국화’ 될 때 받을 결과는 구성원 개인에게는 더 두려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한국 의료제도에 미국식의 파국은 그렇게 쉽게, 혹은 빨리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서비스산업화와 선진화가 그러하다. 제주 영리병원 허용을 둘러싼 논란과 민간보험 활성화가 ‘의료영리화’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화하지 말자’라고 외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른 나라, 다른 세계에는 다른 제도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를 우리 안에서 발견하고 튼튼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우리에게 미국처럼 되지 않을 의료제도에서의 대안은 없는가?

홍수연 치과전문의, 새사연 운영위원

홍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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