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위헌 확인

정치적 비판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 핵심 양병철 기자l승인2020.12.2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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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해차에 따라 문화 지원 배제는 헌법적 용납 안 되는 공권력 행사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및 이를 근거로 지원 배제를 지시한 것은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위헌적 공권력 행사임이 확인됐다. 지난 2017년 4월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과 참여연대가 헌법소원을 청구한지 4년여만에 나온 결과이다.

헌법재판소는 12월 23일 재판관 9인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근혜 정권이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 및 이를 근거로 한 지원 거부 지시가 헌법상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평등권에 위배됨을 확인했다. 이번 위헌결정으로 예술문화인들의 정치적 성향, 견해, 활동 등의 정보를 수집, 보관하고 이를 활용해 국가의 지원사업에서 배제하는 행위는 헌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공권력 행사임을 분명히 선언했다.

▲ (사진=참여연대)

표현의 자유 제한 중 특정 견해, 이념, 관점에 근거한 제한이야말로 가장 심각하고 해로운 제한이며, 국가가 자원을 배분할 때 이와 같은 가장 핵심적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한계를 선언한 것이라는 데 중대한 의미가 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의 특검 수사를 통해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사건을 주제로 한 문화예술활동 및 시국선언, 당시 야당 정치인 지지 등을 한 문화예술인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근거로 국가의 각종 문화예술 지원 사업에서 배제하도록 지시하여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블랙리스트’ 대상 문화예술인들이 주축이 되어 블랙리스트 작성 및 지시를 행한 김기춘 당시 청와대비서실장, 조윤선 정무수석 등 핵심 관련자들에 대해 형사 책임과 별개로, 정부가 자신들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에 대해서는 지원배제를 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반헌법적이며, 비민주적 발상인지 헌법적 확인이 필요하고 이 같은 행태가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헌법소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2017년 4월 서울연극협회,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윤한솔 연출, 정희성 작가 등 문화예술인 및 단체들이 청구인으로 참여했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담당 김선휴 변호사)가 공익변론을 맡아 진행했다.

정치적 성향과 관련된 정보들을 수집하여 명단으로 관리한 것이 청구인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청구인들이 야당 정치인 지지선언을 하였거나, 세월호를 주제로 한 작품활동을 했다고 지원에서 배제하는 것이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 및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며, 지원사업의 목적달성과 무관한 정치적 성향 등을 이유로 지원에 있어 차별하는 것은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었다.

▲ 헌재는 이와 같은 청구인들의 주장에 대해

‘블랙리스트’ 작성 행위에 대해 정치적 성향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법률적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의사를 표현한 자에 대한 문화예술 지원을 차단하는 위헌적인 지시를 실행하기 위한 것으로 그 목적의 정당성도 인정할 여지가 없어 헌법상 허용될 수 없는 공권력 행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른바 ‘블랙리스트’의 위헌성을 판단함에 있어 수집한 정보의 성격, 정보주체의 의사, 국가기관이 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려는 목적, 구체적 수권조항의 존재 등을 고려했고, 공개된 정보를 수집, 이용한 것도 기본권 침해로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향후 유사한 국가기관의 정보수집과 명단관리 행위의 위헌성 판단에도 일정한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블랙리스트를 근거로 한 지원배제 지시에 대해 정부가 특정 정치적 견해, 활동을 근거로 개인 또는 단체의 지원을 배제하는 지시는 문화예술 지원 공모사업에서의 공정한 심사 기회를 박탈하여 사후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이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 지난 2017년 1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다 모여라!”, 블랙리스트 집단소송 원고 모집 기자회견을 시민사회단체들이 진행하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특히 정치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자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며, 특정 견해, 이념, 관점에 근거한 제한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해로운 제한이라고 선언했다.

마지막으로 헌재는 문화지원사업의 목적과 별개인 정치적 견해를 기준으로 배제하는 것은 문화의 다양성, 자율성, 창조성 보장을 위해 필요한 국가의 중립성을 위반한 자의적 차별로서 평등권도 침해했음을 확인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2009년 당시 교육부 장관의 고교 역사교과서 수정명령(공익변론 김보라미 변호사) 위헌소송, 2010년 인권영화제 지원중단에 대한 행정소송(공익변론 박주민 변호사) 등을 통해 국가가 일정한 재량권을 가지고 있는 교과서검정 및 영화진흥정책에 있어서도 정치적 견해나 관점에 따라 그 내용이나 수혜기준을 구성하는 것은 위헌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관련해 참여연대는 “이번의 헌재 위헌 결정으로 특정 정치적 견해에 따른 국가의 자원 배분에서의 배제는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문화예술 지원에 있어 지켜져야 할 헌법원칙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양병철 기자  bcyang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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