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감 선거, 그 뒤가 문제다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15%라는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끝났다. 그만큼 교육감선거가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했다는 얘기다. 심지어 선거가 끝난 지금도 자기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감은 일 년에 6조 3천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예산을 주무르고, 천 개가 넘는 초·중·고등학교의 운영을 지시·감독하고, 6만 명이 넘는 교사와 교육관료들에 대해 인사권을 행사하고, 자립형사립고·특목고와 일반 학교의 설립 허가권을 가지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전체 학교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수백 개 사립학교에 대한 감독권과 수만 개에 이르는 학원에 대한 관리·감독권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교육대통령’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는 서울교육의 정책방향을 놓고 격렬한 논쟁과 대립이 벌어졌다. 연임에 성공한 공정택 후보는 ‘경쟁과 선발’을 앞세우며 초등학교 단계부터 일제고사 도입, 학교성적 공개 등 경쟁체제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평준화 대신 특목고와 자율형사립학교를 증설하고, 학교 선택제를 도입하여 학교 간 경쟁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공 후보의 이런 공약은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정책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리틀 이명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반대로 공 후보와 막판까지 예측불허의 박빙의 승부를 벌였던 주경복 후보는 ‘교육기회의 평등’을 내세우며 ‘교육 양극화 해소’와 ‘학교서열화 완화’, ‘강북지역 학교환경 개선’과 ‘교육소외층 지원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교육관료들이 좌지우지해 온 교육행정과 학교운영에 학부모와 교사의 참여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향후 서울교육의 항로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고비였다.

그래서일까? 정부와 정당, 언론들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선거를 지켜보았다. 사회단체들도 각각의 성향에 따라 지지후보를 공표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선거에 개입했고, 특히 부유층 밀집지역의 대형교회들은 노골적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위해 불법·편법적인 방법까지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표 결과, 공정책 후보는 서울의 전체 선거구 25개 가운데 이른바 ‘강남 빅 3’로 불리는 서초·강남·송파 등 8개 지역에서 몰표를 얻어 당선을 확정지었다. 주경복 후보는 17개 선거구에서 이기고도 전체 유권자 800만 명 가운데 겨우 2만여 표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투표결과를 놓고 “강남 엄마들의 계급투표가 당락을 갈랐다”거나 “공정택 교육감은 강남교육감”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칼로 두부 자르듯 거의 반반으로 나뉜 투표 결과는 교육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극단화된 대립과 갈등 양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승자도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기에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고, 패자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유권자들을 등에 업고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을 확보한 셈이다. 결국 교육문제를 둘러싼 해묵은 대립과 갈등은 끝난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공정택 교육감이 ‘유권자의 선택’을 앞세워 절반의 지지 밖에 얻지 못한 설익은 정책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교육이 특정 계층의 집단적 이익을 관철하는 수단이 아닌 바에야, 사회적 공감대 확보를 위해서는 반대그룹과의 대화와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정택 교육감은 마치 서울교육의 전권을 위임받기라도 한 듯이 당선되자마자 ‘국제중학교 설립’ 등 해묵은 숙원사업부터 밀어붙이고 있다.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정책이 우수한 학생 중심으로 흘러가고, 재정 역시 수월성교육 쪽으로 우선 배정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평범한 학생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재정적 투자는 그만큼 소홀해지기 쉽다. 하물며 저소득층이나 장애학생 등 교육소외층에 대한 배려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또 경쟁에 박차를 가할 경우, 남들보다 앞서나가기 위한 사교육비 지출은 필연적으로 늘 수밖에 없고, 이것은 거꾸로 교육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되풀이된다. 그 와중에 교육의 당사자인 학생들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어찌 보면 경쟁지상주의 교육정책과의 한판 승부는 이제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사실 많은 유권자들이 학교에 대한 막연한 불신 때문에 “뭐든지 좋다, 변화만 일어난다면…” 하는 심정으로 경쟁주의 교육에 손을 들어준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미친 교육 체험학습’을 통해 경쟁주의 교육의 폐해를 깨닫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 공부를 했으니, 본전이라도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1년 10개월 뒷면 다시 교육감선거가 치러지고, 그 때는 ‘미친 교육’에 확실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소수 상류층의 전유물로 변질되어가는 공교육을 시민 모두에게 되돌려주는 것, 그것이 바로 ‘교육 정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