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권위를 따르지 마라”

철학여행까페[43]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8.08.1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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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가 네덜란드로 망명을 하자 1684년 찰스 2세는 크라이스트처치가 로크에게 주던 장학금을 중단했다. 다음해 영국 정부는 유럽에 지명 수배한 84명의 반역자 명단에 로크의 이름을 올렸다.

1685년에는 제임스 2세가 드디어 왕위를 차지한다. 제임스 2세는 ‘왕정 의회’를 자신을 지지한 다수의 토리당원으로 채웠다. 그러나 가톨릭 교도인 제임스 2세와 토리당원이 다수인 영국 의회는 심각한 갈등을 빚는다. 제임스 2세는 심사율을 무시하고 이른바 종교적 자유를 내세웠다. 심사율은 영국 국교회 신자가 아닌 사람은 공직에 임명할 수 없도록 해서 사실상 가톨릭 교도의 공직 취임을 배제한 것이었다.

이동희
로크의 인간오성론 표지
로크의 정치적 망명


그러나 제임스 2세는 종교적 자유를 내세워 심사율을 유명무실화하고, 로마 가톨릭 신자들을 관리로 채용하였다. 심사율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이러한 정책은 영국의회에게 영국 국교회의 붕괴로 비쳐졌다.

제임스 2세는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로마 가톨릭 신도를 포함한 상비군을 구성했다. 그리고 1688년에 제임스 2세는 영국의 모든 교회에서 양심의 자유 선언을 낭독하라는 칙령을 반포했다. 이것은 실제로 가톨릭교를 인정하라는 포고였다.

캔터베리 대주교 윌리엄 샌크로프트와 6명의 주교가 이에 반대했다가 런던탑에 수감되었다. 1688년 4월 제임스 2세의 아들이 태어났다. 개신교도였던 딸 메리의 왕위 계승을 기대하던 영국의 개신교도들은 영국에 가톨릭 왕국이 세워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 때문에 서로 대립하던 토리당과 휘그당은 동맹을 맺고 국왕에 맞서게 된다.

이러한 제임스 2세의 전횡으로 인한 영국의 불안정한 상황은 네덜란드에 망명해 있던 로크에게는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는 네덜란드 사람인 오라녜(Orajge)공 월리엄을 영국 왕으로 옹립하려는 거사에 참여하였다.

영국의 의회는 월리엄과 메리에게 몇 차례의 초청장을 보냈다. 1688년 11월 5일 윌리엄 오렌지 공은 거사를 결심하고 '자유로운 의회와 신교 보호'란 구호 아래 런던으로 진격해 들어왔다. 런던에서 아무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한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망명의 길을 떠났고, 유혈사태 없이 정권이 바뀌었다. 이것이 영국인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이다.

1688년 명예혁명이 끝나고 이듬해 2월 로크는 개인 비서의 자격으로 오라녜 공주인 메리를 영국으로 수행했다. 메리 공주는 월리엄 3세와 더불어 영국의 공동 왕으로 즉위하였다.

네덜란드에서 보낸 약 5년간의 망명 생활이 로크에게는 외롭고 괴로운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나 사상가들에게 망명 기간은 오히려 집필에 몰두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했다. 단테의 신곡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처럼, 로크는 이 시기에 <관용론>, <통치론>과 <인간오성론>(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을 집필했다.

<인간오성론>에서 로크는 솔직하게 인간이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 인간이 가진 정신 능력의 한계를 밝히고자 했다. 그는 인간의 지식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지식이 어떻게 생기고 그 원천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했다.

그는 인간의 지식은 오직 경험과 경험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오성론> 제1권에서 생득 관념에 대한 논의를 검토하고 그것의 무가치함을 보여준다. 그는 데카르트를 무척 존경했지만 그가 주장한 본유관념을 비판했다. 본유관념이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고 주장되는 관념이다.

이동희
존 로크
“나는 지식의 하급노동자”


로크는 이에 반해 태어날 때 모든 사람의 정신은 백지 상태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신 상태에서 인간이 지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경험 밖에 없다. 백지 위에 정신적 내용들을 기록하는 것이 경험이다. 경험은 두 가지 원천을 가진다. 그것은 감각을 통한 외부세계에 대한 경험과 내적인 자기 지각인 반성이다. 이러한 외부에 대한 경험과 내부에 대한 반성에서 '관념'(idea)이 형성된다. <인간오성론>의 제2권에서 로크는 관념을 단순 관념과 복합 관념으로 구분했다. 로크는 관념은 직접적으로 의식에 나타나는 어떤 것으로, 더 이상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 관념을 단순관념으로 간주한다.

로크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은 이 단순관념들을 비교, 분해, 결합, 추상화하는 능동적인 능력이 있으며, 이러한 단순관념들을 조합해 복합 관념을 만든다. 복합 관념은 실체, 양태, 관계라는 세 종류가 있다. 실체 관념은 저 홀로 실존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관념이고, 양상 관념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실체에 의지해 나타나는 관념이며, 관계는 비교라는 정신적 작용에 의해 얻어지는 것으로 원인과 결과와 같은 관념이다. 이와 같이 로크는 <인간오성론>에서 경험이라는 지식의 원천에서부터 출발해 우리 인간이 어떻게 관념을 얻게 되고, 또한 그러한 관념들을 어떻게 결합시켜 정신적 내용을 구성하게 되는가를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외부 사물 세계 대상 그 자체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에 대한 경험이 우리의 관념을 형성하며, 우리의 지식은 그러한 관념과 관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은 결코 그 자신의 경험을 넘어 나갈 수 없다.

로크는 거대한 인식론을 구축하거나 세계상을 그리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겸손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식의 기초를 어느 정도 밝히고, 지식에 이르는 길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약간 치우는 하급 노동자로서 일하는 것만도 나에게는 충분히 야심만만한 일이다.”

그러나 ‘하급 노동자’로서 로크가 행한 작업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로크의 경험론은 인간의 평등한 상태를 강조한다. 모든 사람이 백지 상태의 정신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하게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로크의 이러한 논지를 따라가면, 인간의 정신은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어떠한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이러한 로크의 생각은 특히 프랑스에서 대중들이 교육을 통해 사회적 종속에서 해방된다는 믿음과 모두가 평등하다는 견해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로크는 <인간오성론>을 출간한 다음 해에 <통치론>을 출간했다. 이 <통치론>은 존 필머의 족장론을 반박한 1부와 자유주의, 권력분립론과 사회 계약 등에 대한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은 2부로 구성되었다. 이 책에 담긴 로크의 사상은 미국의 헌법과 자유주의 정신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근대의 정신적 유산 남기다

로크는 영국으로 돌아온 후 외교관 직책을 제의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거절했다. 그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그에게 호감을 가진 친구들과 그에게 사랑을 느낀 여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1691년부터는 친구 프랜시스 경과 매섬 부인의 집인 '오츠'에 머무르며 이따금 런던에 들르곤 했다. 말년에 로크는 이자, 이자율, 조폐, 무역 등에 관한 소책자를 쓰고 출판하는 데 집중했다. 로크는 1704년 10월 28일에 죽은 뒤 하이레이버 교구 교회에 묻혔다. 로크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근대의 정신적 유산은 엄청난 것이었다. 영국의 철학자 브라이언 메기는 로크의 정신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 권위가 지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종교적인 것이든, 생각 없이 권위를 따르지 마라. 그리고 생각 없이 전통이나 사회적 관습을 따르지 마라. 늘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라. 사실을 통해 자신의 견해와 행동을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에 기초하도록 하라.”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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