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龍)의 얼굴

20세기 우리 사회는 용을 어떻게 그렸을까?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l승인2021.02.1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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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어찌 생겼지? 제설(諸說) 분분(紛紛), 눈보라 휘날리듯 여러 생각과 주장이 어수선하게 돌고 도는 얘깃거리다. 어느 시대에도 상상의 대상이었고, 여전히 스토리의 재료다. 선거 앞두고는 잠룡(潛龍) 얘기로, 드라마에선 ‘개천용’으로 그 이미지가 요즘도 되풀이 소환된다.

▲ 소화15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1면. 소화15년은 조지훈이 ‘봉황수’를 쓴 1940년이다. 저 용(龍) 그림은 여러 의미가 있다. (영화 ‘족벌(族閥) 두 신문 이야기’ 장면 갈무리)

…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玉座(옥좌) 위엔 如意珠(여의주) 희롱하는 雙龍(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 조지훈 시 ‘봉황수’(鳳凰愁) 한 대목, 1940년 일제 치하 스무 살 시인이 피를 토해 빚은 ‘봉황의 시름(愁)’이다.

조선은, 중국 왕 상징인 용을 제 왕 뒤에 걸지 못했다. 꿩 대신 닭인가, 봉황을 그렸다. 청와대 문장(紋章) 봉황새의 원조다. 짜잔하고 추잡스런 모욕, ‘거미줄 옥좌’를 잊으면 아니 된다.

보통사람들 살림에서야 어디 그런 제한이 있었으랴? 그러나 지엄한 ‘지도층’의 세계는 엄연히 달랐겠다. 우리 전통의 격식 갖춘 용의 그림(모양)이 드문 까닭일 터. 시인이 봉황을 시름한 바로 그 무렵에 발행된 조선일보 지면의 용의 위용(偉容)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개봉돼 시민사회 전반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족벌(族閥) 두 신문 이야기’에서 용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천황 폐하’ 부부의 사진, 국화를 그린 일본 왕실상징 문장, 그 인물들을 묘사한 언사와 함께 용의 이미지는 적실(的實)했다.

‘저런 것을 용이라 하는구나’하는 실감이 났다. 방불(彷佛)하다 할만 한 그림이었다. 지난 세기 사람들의 마음에 있던 용의 모습이라고 짐작하거나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니 한국회화(繪畵)사의 사료(史料)로도 의미 있으리라 본다.

‘천황폐하의 어(御)위덕(威德)’ 제목은 용을 그린 이유나 필연성을 설명하는 것 같다. 御는 ‘왕의 권위’를 표시하는 말. 그 왼쪽기사(신문용어로는 사이드톱)는 조선총독 남차랑(南次郞)의 ‘흥아유신달성(興亞維新達成)에 분약사명(奮躍使命)을 진갈(盡竭)!’ 기고문이 실려 있다.

저 때 신문에는 짱짱한 화가들이 삽화(揷畫)를 그렸다. 유명한 동양화가 청전 이상범도 시대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그림을 그렸다. 저 용을 누가 그렸는지, 영화는 답을 주지 않았다. 제작팀은 그 신문지면 일장기(日章旗) 색깔이 빨강이었음을 실물 그림을 찾아내서 보여주었다.

문헌(文獻)은 용을 어떻게 그렸을까? 저 용이나, 우리가 생각하는 용과는 어떻게 닮았을까? 상상의 결과가 빚은 동물이니 시대와 지역, 겨레에 따라 다양한 용이 존재할 것이다.

흔히 용의 번역어로 쓰이곤 하는 드래곤(dragon)은, 역시 상상의 결과물이긴 하지만, 동양의 용과 이미지와 뜻이 다르다. ‘라이온=사자’의 등식은 맞지만 ‘드래곤=용’은 아니다, 용은 용이고, 드래곤은 드래곤이다.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중국 문헌 ‘광아(廣雅)’는 ‘용은 인충(鱗蟲 비늘로 덮인 벌레) 중 우두머리로서 다른 짐승들과 아홉 가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동아시아의 용 관(觀)이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이다.

…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은 뱀, 배는 큰 조개, 81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각각 닮았다. 비늘은 구리쟁반 울리는 소리가 난다. 입엔 수염, 턱엔 구슬, 목엔 역린(逆鱗 거꾸로 박힌 비늘), 머리엔 공작꼬리 같은 박산(博山)이 있다 …

장관(壯觀)이다. 존엄의 상징으로 이지러짐이 없다. 신문의 저 용(龍)을 또 톺아본다. 역사다.

▲ 용과 함께 붉은 일장기를 실은 조선일보 지면.

토/막/새/김

고대인들의 상상력과 그 화려함

갑골문에는 양 끝에 용머리를 한 동물이 양쪽 강기슭의 나루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글자가 있다. 용 두 마리가 하늘로 물을 뿜는 것으로도 읽는다. 무지개를 그린 첫 그림이겠다.

이 그림은 역사와 신화의 세례를 거쳐 차츰 虹(홍 무지개)자로 변해 왔지만, 그 그림에서는 고대인 상상력의 화려함을 낙낙히 맛볼 수 있다. 그 龍을 나타내는 벌레 충(虫)이 의미(形) 요소로, 장인 工(공)이 발음(聲) 요소로 虹을 지은 것이다. 이런 걸 형성(形聲)문자라고 한다.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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