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짓는’ 건축이란

고층건물과 반지하방의 단절 백운광l승인2008.08.2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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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마저 배제의 공간으로…

<한겨레21> 제723호는 반지하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창문을 열면 도로 바닥이 보이는 곳, 방 안쪽은 습기와 곰팡이가 차지하고, 굵은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에는 하수도 물이 솟구쳐 올라와 방안을 점령하는 곳. 물론 그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가고 꿈과 삶의 의지를 다지겠지만, 기사는 그러한 주거 공간이 얼마나 인권을 무시하는 지를 지적한다.

일을 하든 잠을 자든 누군가를 만나든 우리는 언제나 어떤 공간 안에 있다. 그 공간 속의 하루하루 활동이 모아져 우리의 삶을 이룬다. 반지하방. 위생과 안전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공간은 그 속에서 엮어가는 삶을 억압한다.

주거공간과 인권

누구나 더 좋은 집을 꿈꾸고 이를 위해 애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렇듯 공간은 삶의 조건이면서도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건축가 승효상 씨는 자신의 책<건축, 사유의 기호>에서 '건축의 분명한 뜻은 우리의 삶은 짓는 것'이라 말한다.

<시민사회신문DB>
경기도 과천 경마장 앞의 꿀벌마을. 이러한 수도권의 비닐하우스촌은 1980년대 주택가격 폭등으로 형성된 도시빈민들의 주거지다.

이 책은 건축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과 삶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자신이 감동한 16개의 세기적인 건축물과 그 건축가를 소개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낯선 건축가들과 건물들. 빈에 있는 아돌프 로스의 로스 하우스, 코모에 있는 주세페 테라니의 파시스트의 집,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바이센호프 주거단지, 르 코르뷔지에의 찬디가르, 한스 샤로운의 베를린 필하모니 홀, 파리 퐁피두 센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등을 소개하며 저자는 ‘전문가로서 말하는데 건축이란 이런 거야’라고 이야기 하진 않는다. 오히려 건축물을 보며 자신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는 것 같다. ‘사유의 기호’라는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건축을 읽어보고 생각해 보자고 한다.

여백과 소통. 승효상 씨의 이야기 속에서 빈번히 나오는 말이다. 그는 건물을 보며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여백과 소통은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는 걸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네 건물을 생각한다.

필자에게 건물은 '사유의 기호'로서 생각의 기회를 주기 보다는 즉흥적인 느낌을 주었다. 반지하방을 보며 불편과 함께 안쓰러움을 느꼈고, 높은 고층빌딩은 감탄과 함께 두려움을 주고 주눅 들게 하였다.

주변의 건물을 보니

그러고 보니 도시를 이루는 많은 건축들은 여백보다 채움을, 소통보다 단절을 만들어 나간다. 그 속에서 서로에 대해 경계警戒한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경계境界가 아니라 서로를 의심하고 배척하며 거리를 두려는 경계警戒 말이다.

심지어 부유층이 거주하는 어느 건물은 거주자 이외의 방문자에게 신분증을 요구한다. 약간만 삐딱하게 말하면 그들은 자신들 이외의 사람은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잠재적 범죄자이다.

단절과 경계의 공간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고층빌딩의 위압감과 보이지 않는 ‘관계자외 출입금지’, 신분증을 맡기라는 부유층의 건물이 외부를 향한 폭력이라면, 반지하방은 이 선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외부로부터의 폭력이다.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든지….

승효상 씨의 건축이야기를 듣고 보니, 단순히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여백을 만들어나가는 게 건축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이 그러할 때 우리 삶을 형성하는 수많은 관계들이 더욱 다양하고 활발해지며, 우리 삶의 더 많은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어 보인다.

소통을 위한 여백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그 목적이 여백과 소통을 위한 건축인 광장조차도 폭력으로 인해 단절과 배제의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러한 단절과 배제의 끝은 갈등과 파괴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승효상 씨는 말한다. “우리를 지속시키는 것은 공간의 힘이며 그 공간의 법칙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결국 우리를 변화시킨다.” 건축가가 공간을 창조한다면 우리네 활동은 공간을 완성시킨다. 그러한 공간에서 우리의 삶은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엮어나가야 하는가? 어느 공간, 어느 사람들과도 주눅 들지 않고 경계하지 않으며 기꺼이 소통하고 서로를 통해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시대를 꿈꾼다.









승효상, <건축, 사유의 기호>, 돌베게, 2004


백운광 두리미디어 주간

백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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