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찾아가서 후다닥 둘러보고 가방 가득 한 꾸러미 골라든 책을 집에 돌아와서 마루 바닥에 쫙 펼쳐놓습니다. 옆지기가 고른 일본 그림책 <父さんの子育て繪日記 1>(鈴木まもる,1993)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태어나서 한 해하고 석 달을 보낼 때까지, 어머니와 아이와 고양이 세 마리와 개 한 마리와 닭 두 마리하고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가 식구들 모습과 삶을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줍니다. 아기가 태어나던 병원 느낌, 태어나고 나서 집에서 세 식구가 어떻게 자는지, 젖은 어떻게 먹고 울고 웃을 때 얼굴이 어떠한지, 넘어져서 얼굴이 바닥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 달 두 달 먹어 가면서 크기와 움직임이 어찌 달라지는지, 세 식구는 아이한테 무엇을 느끼게 하고자 어디를 다니고 있는가 등이 부드러운 연필 끝에 담깁니다. 아기를 낳은 뒤 사진을 부지런히 찍어서 인터넷 방에 띄우고 뭐하고 하는 모습은 흔히 보지만, 이렇게 그림으로 하나하나 그려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거의 못 본 듯합니다. 말은 못 읽어도 느낌으로 알겠고, 그림을 죽 넘기는 동안 우리 아이하고 어떤 이야기를 우리 나름대로 엮어 나갈 수 있을까 자못 기다려집니다.
“말을 안 하면 아나? 나의 문은 굳게 걸어 둔 채, 상대방에게 열고 들어오지 못한다고 나무라지 말자. 우리 똑같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손짓하자. 그래서 즐거운 만찬을 가지자.”(128쪽) 김수정 님이 1983년 2월부터 1987년 6월까지 잡지 <여원〉에 이어그렸던 만화를 모은 <신인부부>(바른사,1987)를 넘겨봅니다. 두 번 세 번 혼인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첫 혼인이 있기 마련이고 첫 혼인은 나이든 이든 젊은 사람이든 ‘새내기’나 ‘풋내기’로 이루어 가는 가시버시 사이입니다. 여태껏 비운 밥그릇 수는 많으나, 맞은편 밥그릇 수도 자기만큼 많이 비웠음을 헤아리기에는 모자랄 때인 새내기입니다. 내 밥그릇 숫자가 내 삶과 마음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가를 돌아보기에는 아직 어수룩한 풋내기입니다. 이런 ‘새사람’들 이야기를, 그때로서는 ‘헌’ 부부였을 김수정 님이 알콩달콩 툭탁툭탁 애틋하게 담아냅니다. 요즈음은 달라지셨겠지만, 만화쟁이로서 손금 남아나지 않게 몰아치던 이때에는 ‘택시는 타 본 일이 없고, 오랜 버릇이라고 하나 만원버스야말로 서민 생활에 가장 좋은 소재가 되어서 즐겨타고, 집 둘레 고철상과 폐허가 된 공장부지에 쪼그리고 앉아 작품을 생각’했답니다. 그러니 이 매무새로 ‘새내기 부부’를, 또 ‘회사원 남편과 가정주부 아내 삶’을 꾸밈없고 밝은 붓끝으로 사랑스러움과 풋풋함을 담아서 우리들한테 눈물과 웃음으로 선사해 줄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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