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에 진이 다 빠진다

작은 인권이야기[53] 나현필l승인2008.08.2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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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검찰은 이른바 조중동 불매운동을 주도한 네티즌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뿐만 아니라 피디수첩 제작진, 촛불집회 참여자들에 대하여 무차별적으로 구속, 기소를 남발하고 있다. 그에 반해 지난 8·15 때는 재벌총수들을 비롯한 비리정치인들이 대거 사면복권되었다. 한쪽에서는 국민화합과 경제살리기를 이유로 중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풀어주는 가 하면, 한쪽에서는 법질서 확립이라는 명목으로 경미한(?)범죄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규칙이란 공정하게 적용할 때만 의미가 있다. 심판이 힘이 세거나 자기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판정한다면 누구도 그 규칙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법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반 국민들이 공권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대표되는 법의 적용에 있어 형평성이 지켜지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더욱이 법은 그 죄질의 경중에 따라 처벌도 달리 하고 있다. 어떤 범죄는 벌금만 내면 되지만 어떤 범죄는 징역을 살아야 한다. 그런 차등을 두는 이유는 초등학생들도 다 알고 있다. 그리고 검찰이나 경찰이 어떤 범죄부터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지도 명확하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 국가 공권력이 얼마나 스스로의 존립이유인 법을 우습게 만드는지 한심할 지경이다. 지난 정권 때도 그런 경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법치를 스스로 우습게 만드는 최근 공권력의 모습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화내는 것조차 허탈할 지경이다. 도대체 이게 정상적인 국가인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 악법의 적용마저 편파적이라면 그 법은 지킬 이유도 지켜지지도 않는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이름부터가 참 중요해보이는)위반 혐의로 기소되어도 보통 불구속이 되는 재벌 회장님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당한 노동자들의 처지 비교가 진부하다면,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경찰폭력에 의해 연행된 후 구속되는 촛불시위대와 가스통을 들고 나오고, 시민들을 폭행해도 수사가 진행되는지 조차도 알 수 없는 이른바 보수 시위대의 무제한적인 집회시위의 자유향유는 폭력적인 시위는 엄벌하겠다는 정권의 발표와 함께 날 서글프게 한다.

과연 우리는 이 더러운 비 매너 플레이를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까? 정권이 바뀌었으니 어느 정도 어드밴티지는 ‘용납은 못해도 이해까지는’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편파판정 중인 이 땅의 공권력을 과연 공권력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이 든다.

지난번 핸드볼 편파판정이 있었을 때 국제 핸드볼연맹의 제소가 이뤄졌고 재경기가 펼쳐졌다. 그러나 우리 이명박 정권은 어떤가? 국제 엠네스티의 조사결과를 두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이 정권은 앞으로 UN 인권 특별조사관의 보고서에도 UN인권기구들의 권고도 깡그리 무시할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답이 안나오는 막무가내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설쳐대는 정권 덕에 한국의 인권수준은 끝없이 추락할게 눈이 뻔히 보인다. 최소한 반칙은 하더라도 규칙이 무서운 줄은 알아야 할 텐데, 반칙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게 현재의 정권 수준이라는 점에서 정말 괴롭다.

국제인권기준도 무시하고 헌법도 무시하는 정권. 우리는 그것을 독재정권이라 부른다. 선거에 의해 선출되었다지만 겨우 지지율 30%를 회복했음에도 이렇게 막무가내인 정권이 앞으로 4년이나 넘게 남았다. 하도 여러 반칙들을 한꺼번에 하는 바람에 그것을 일일이 지적하는 것도 힘겨운 이 정권은 아마도 초반에 진을 빼놓을 모양이다. 아예 지적하고 반대하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말이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상임활동가

나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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