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여 따르라, 백기완의 ‘새날’

호시(虎視) 큰 어른의 우보(牛步) 저승길을 벅차게 배웅함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l승인2021.03.1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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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

여태, 차마 끝까지 따라 부르지 못한다. 그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 백기완의 장시(長詩) ‘묏비나리’ 한 대목이다. 혁명 5.18 직후 1980년 12월 모진 고문 끝에 형무소에 갇혀서 썼다. 그 한 토막 잘라 황석영이 가사 짓고, 광주의 노래운동가 김종률이 곡을 썼다.

▲ 우리에게 ‘새뜸’ 깃발 전해준 백기완 선생이 가셨다. 지금도 그의 손가락은 ‘노나메기’ 새날을 가리킨다.

비나리는 두 손 모아 비는 것이다. 신새벽 장독대, 정한수 사발 향한 어머니의 손바닥 기운은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이다. 어떤 종교가 이 순진무구의 기원(祈願)을 이길 것이랴. 묏, 뫼는 산(山)이다. 순수함의 비유일 터다. 종교보다 큰, 우리 마음의 바탕이다. 왜 애먼 데 보느냐?

매서운 호랑이 눈으로 세상 뚫어져라 바라보고 늘 소처럼 큰 바름 향해 걸음 내딛었던 겨레운동가 백기완 선생, 아름다운 겨레말의 옥구슬을 꿰었던 언어전문가이기도 했다.

우리 매체 ‘전남새뜸’ 이름 중 ‘새뜸’을 역사의 골방에서 끄집어내 우리에게 안겨준 분이니 오늘 추모의 정 더 절실하다. 이 말에 기꺼운 모든 분들과 함께 가신 이를 다시 생각한다.

전에 ‘전남새뜸’의 표지에는 <‘새뜸’은 좋은 소식이란 뜻의 우리말입니다.>라는 글이 있었다. 지금도 판권(板權) 표지에 이 말의 간단한 의의가 적혀있다. 새로 뜨는 태양, 설렘과 자랑스러움의 표현이다. 다음은 필자의 글(‘풍류해자’ 5회, 2016년) 일부분의 인용이다.

… <어릴 적, 겨울밤이 지겨워 “엄마, 해는 언제 뜨는 거야” 칭얼대면 어머니는 “참아라, 곧 새뜸이 온단다” 하셨다. 이때 ‘새뜸’은 다시 솟아오르는 해다.> 일하러 집 떠난 아버지 보고 싶다 보채면 어머니는 또 곧 새뜸이 온다하셨다. 이때 뜻은 ‘(좋은) 새 소식’이었다. …

소년 적 백기완의 추억이 기쁜 소식의 깃발로 남도에 휘날린다. 남도의 마음이 늘 싱싱한 까닭일 터. 이제 ‘새뜸’은 이렇게 보통명사가 되었다.

‘바른 생각의 겨레’만을 외친 투사였다. 순결한 시는 세상 흔들었다. 겨레학 개념이 그로 인해 생겼다. 겨레말 지킴이로도 큰 나무였다. 새내기 모꼬지 동아리 달동네도 그의 ‘작품’이다.

새내기는 신입생 프레시맨 등의 기존 ‘용어’를 퇴출시켰다. 모꼬지는 파티 같은 모임의 우리말이다. 동아리는 우리 일상에서 서클(circle)이나 클럽이란 말을 지웠다. 달동네란 낱말의 작명(作名) 의의는 지금도 무릎을 치게 한다. 적실(的實)하면서 아름답다.

대화나 연설도 멋졌다. 화려하진 않았으되 에두르지 않았다. 생각바탕이 너르고 깊어 그 울림은 컸다. 정의 의리 덕성이 스러져가는 세상에 등대가 됐다. 선비는, 어른은 이래야 하리라.

선생 말씀 노나메기, 너와 내가 노나(나눠) 함께 땀 흘리고 함께 잘 살자는 바른 세상의 뜻은 이제 잊힐 수 없다. ‘그날’을 향한 백기완의 승리다. 또, 이 승리를 기뻐하는 당신의 승리다.

‘코로나’로 다 보지 않는가. 좌(左)다 우(右)다, 어쩌다 서쪽 처진 인간들에게서 배웠던 허망한 생각일랑 다 던져버려라, 우리는 대한(大韓)이다. 청년아, 그 새날 향해 깃발 다시 들어라.

토/막/새/김

 ‘내일’을 갖게 된 내역

백기완은 우리말 한자어 내일(來日)에 대응하는 ‘올제’라는 말을 세웠다. 어쩌다 ‘내일’의 뜻 토박이말이 사라졌을까? 원래 ‘내일’(이라는 말)이 없던 겨레인가? 그럴 리 없다. 그 후 ‘후제’도 내일의 등가어(等價語)로 언어사회에서 떠올랐다. 또 있다.

고 진태하 선생은 옛 문헌에서 ‘하제’라는 말을 찾았다. 고려 때 북송(北宋)의 외교관 손목이 쓴 고려견문록 ‘계림유사’에 ‘내일은 하제’ ‘천(天)은 하늘’(필자의 번역) 등의 고려 말 번역이 대역(對譯)의 형태로 적혀있었던 것이다.

재야국어학자 고 최한룡 선생을 인용해 철학자 윤구병 교수가 제시한 ‘어제 이제 아제’론(論)도 실팍하다. ‘이제’는 오늘, ‘아제’는 내일이란 것이다. ‘이제’는 ‘지금’으로 흔적 남았고, ‘어제’만 제 뜻으로 살아남았다. 올제 후제 하제 아제, 우리가 여러 ‘내일’들을 갖게 된 내역이다.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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