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사의 선비 안중근

軍神이 터뜨린 그 총성은 ‘평화 부르는 나팔소리’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l승인2021.04.1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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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장군은 적군 우두머리 68세 이등박문을 총살했다. 한국 중국 대(對) 일본 러시아의 국제전쟁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심장을 쏘아 처형한 것이다.

한 세기 지나 생각하니, 승기(勝機)를 바꿔 잡은 장쾌한 총성이었다. 성웅(聖雄) 이순신의 해전처럼 30세 젊은 이 군신(軍神)이 거둔 그 승전은 바로 역사의 장(場)에 오른다.

▲ 장흥 해동사는 유일한 안중근 사당이다. 안 장군은 후세들이 더 당당하라고 요구한다. 청년들은 그의 ‘평화’와 새삼 만나자.

장흥 해동사는 오늘도 단심(丹心), 붉은 그 마음을 품어낸다. 그의 영령(英靈)을 모신 유일한 사당(祠堂)이다. 옥중(獄中)의 그를 향해 ‘목숨 아끼지 말고 당당하게 죽어라.’ 했던 모친의 말씀에 이곳을 찾는 이들은 한 번 더 옷깃을 여민다. 참으로 큰 바다(海)로구나, 어머니는...

독립운동가 의병장 등의 경력과 그 ‘행동’이 합쳐져 군인 또는 지사(志士)나 의사(義士)의 이미지로 떠오르지만, 군인으로서의 시대적 본분을 제외하면 그는 선비의 풍모가 완연하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국제평화’를 거명한 안중근을 다시 볼 필요가 또렷하다.

일본이 ‘사악한 테러리스트’라는 이름을 붙여 안중근을 부정하는 것은 제 마음 그릇 크기와 비뚤어진 생각의 반영일 따름이다. 섬나라 근성 등 열등감으로도 읽힌다. 과거 일본과 이등박문의 ‘우리를 향한 사악함’이 하늘을 찔렀지만, 한국의 인식은 다만 ‘역사의 한 대목’이다.

지금도, 심지어 일부 적들에게까지 인품과 함께 깊은 존경을 받는 많은 휘호(揮毫 붓글씨)는 문기(文氣)가 흘러넘친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의 호방(豪放)함과 당당함이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때만 잘 만났다면, 전쟁이 아닌, 세상을 위한 큰 학문을 지었을 인걸(人傑)이다.

안중근의 본디는 그가 옥중에서 저술했던 ‘동양평화론’에서 절정을 보인다. 당시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시작됐으나 아직 대륙(중국) 등 동아시아는 천하(天下) 담은 온 세상이었다. 그래서 한중일(韓中日) 중심의 동양의 섭리는 지금 생각하면 세계평화를 논하는 큰 궁리였다.

옥중에서 필생의 작업으로 시작한 이 저술을 그는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동양평화론’을 마칠 때까지 형의 집행을 잠시 미뤄달라고 요청했으나 일제는 이를 거부했다. 서(序)·전감(前鑑)·현상·복선(伏線)·문답의 5개 장(章) 중 2장까지 쓴 후 그는 순국했다.

그의 ‘평화’는 컸다. 그를 ‘범죄자’로 몰고 싶어했던 왜(倭)가 겁먹었겠다. 적대감 복수가 아닌 대의(大義)를 통한 협력으로 약육강식 방식의 서양 사고방식에 대비하자고 했다.

청일·러일전쟁 이후 한국 중국에 대해 일본이 약속과 의리를 어기면서 서양 세력들과 한가지로 제 잇속만 챙기는 것에 대해 무섭게 질타(叱咤)하고, 이를 시정해 한 덩어리 된 동양이 세계(인류)의 평화를 세우자는 당당한 논지를 폈다. 3, 4, 5장을 마저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행동하는 선비 또는 사상가 안중근을 다시 보는 까닭이다. 그가 지향(志向)했던 이미지인 평화(平和)의 平은 ‘평평하다’는 뜻, 화(和)는 ‘서로 응하다’는 뜻이다. 북두칠성과 통하며 살라고 부친이 준 아명(兒名) 응칠(應七)의 뜻을 안중근은 31년 평생 품었다.

지난 3월 26일은 영원히 젊은 스승, 대한민국독립군 안중근 장군의 111주기. 겨레를 위해 ‘나’를 초개(草芥)처럼 버린 선조의 모습은 내 바탕, 우리 존재의 뜻이다. 이 바탕은 속 좁은 저 이웃나라 왜(矮) 닮지 말고, 세상 모두 품을 호연(浩然)의 기운이라야 한다.

서구(西歐)를 넘어서는 역사적 문턱에서, 청년 안중근의 후손임이 자랑스럽다.

▲ 골문의 화(和), 지금 글자의 입 구(口)는 피리 부는 입 그림(龠 약)이 간단해진 것이다.

토/막/새/김

大笙謂之巢 小者謂之和

갑골문의 和는 소리 대롱이 여러 개인 피리다. 화음 만들기에 적당하였겠다. 중국문헌 이아(爾雅)의 大笙謂之巢 小者謂之和(대생위지소 소자위지화·큰 생황을 소巢라 하고 작은 생황을 화和라 한다) 대목에 나온다. 하모니(어울림)를 이르는 중요한 뜻글자의 바탕이다.

갑골문의 입과 피리 그림 글자 피리 약(龠)과 벼 화(禾)의 합체가 화(龢)다. 禾는 [화]라는 소리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 나중에 龠자가 입 口(구)로 간단해지고 좌우 바뀌어 和가 됐다.

그림이 글자가 됐다는 건 글자가 그림이라는 뜻, 글자 하나하나가 각각 뜻을 가진 한 단어라는 얘기다. 소리글자 한글(훈민정음)을 쓰는 우리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개념이다.

영어가 그리스어 라틴어 독어 불어 등의 잡탕이듯, 한국어는 한글과 한자어, ‘오픈’ 같은 외국어(외래어) 등이 모였다. 우리말글의 문해력(文解力)에는 이 요소들을 두루 아는 것이 필요하다.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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