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독단에서 깨어나게 한 흄

철학여행까페[45]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8.09.0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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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를 치면서 철학적 문제를 생각할 수 있을까? 흄(David Hume, 1711~1776)이 살던 시대는 당구가 보급되어 인기를 끌던 시대였다. 당구는 그 당시에 대단히 유행한 실내 스포츠였다.

예나 지금이나 당구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고, 밥상 위에 올라 온 콩자반도 당구공으로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유명한 18세기 영국의 풍자화가 길레이는 당구게임에 빠진 상류층 영국 남자들의 모습을 희화화하여 그려 놓았다.

당구와 철학사

벽에는 2개의 시계가 걸려 있어 시간을 알려 주지만, 시간 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들은 눈알이 튀어 나올 정도로 큐대와 당구알에 집중하고 있다. 그림 우측에 한 남자는 점수를 매기는 알인지 주화인지를 손바닥에 들고 오른 쪽 엄지손가락을 쳐들고 있다. 길레이의 그림을 보면, 그때도 내기 당구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의 모습은 똑같았다.

이동희
길레이가 그린 18세기 당구장 모습

흄도 당구를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당구공의 충돌을 예로 들어 인과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정도였으니까. 흄 말고도 철학자 중에 당구를 좋아했던 사람은 칸트였다. 기하학적 사유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주위에 당구를 권유했다고 하니까.

그런데 흄은 당구장에서 당구 게임 보다는 철학적 회의에 더 몰두한 것 같다. 흄은 우리가 당구대로 당구공 A를 때려 (사건 A라고 하자) 당구공 A가 당구공 B에 충돌하는 것 (이것을 사건 B라고 하자)을 본다면, 우리는 사건 B의 원인은 사건 A라고 말할 것이다. 사건 A이라는 원인 때문에 사건 B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타당한가? 흄은 이에 대해 이렇게 의문을 나타낼 것이다.

이동희
흄의 초상화
“우리는 관찰을 통해 사건 B가 사건 A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관찰한 사실은 사건 A가 있고 난 다음 사건 B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사건을 연결해 주는 인과 관계는 관찰하지 못합니다.”

흄의 말대로라면, 인과 관계를 관찰할 수 없다면, A와 B라는 두 사건은 각각 별개의 사건이다. 우리가 A가 B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하려면 A와 같은 사건이 일어날 때 틀림없이 B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과 관계가 아니면서도 A와 같은 사건이 일어날 때 반드시 B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날마다 낮이 오고 그 다음에는 밤이 온다. 그러나 낮은 밤의 원인이 아니다. 낮과 밤은 모두 다른 것, 태양의 주의를 도는 지구의 공전에 따라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어서 일어나는 두 사건을 보고, 그것이 인과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흄이 당구를 예를 들어 제기한 문제는 칸트를 비롯한 여러 철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흄은 인과 관계 뿐만 아니라 당연히 전제되는 ‘자아’라는 실체도 의심했다. 버클리는 당연히 우리와 독립해 존재해 있을 것이라는 물질의 실체를 부정했었다. 버클리는 우리가 주장하는 외부의 물질적 실체는 우리의 지각에 의해 파악된 것뿐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자아의 실체도 의심하라

풀이 파란색을 띠지만 사실 우리는 그것이 원래 파란색인지 모른다. 우리의 자아가 눈을 통해 그렇게 지각할 뿐이라고 버클리는 주장한다. 그러나 흄은 더 나아가 그렇게 지각하는 우리의 자아라는 ‘실체’도 ‘존재’하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버클리는 그 점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았다. 과연 지각의 주체인 ‘나’는 있는 것인가? ‘나’ 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실제로 우리가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각, 사고, 정서, 기억 등 ‘나’가 경험한 내용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들을 진술할 수 있지만, 그러한 경험을 하는 ‘자아’라는 실체를 만날 수도 없고, 그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래서 흄은 지각의 주체는 허구라고 말한다.

흄은 경험적 탐구 방법을 통해 철학이 오랫동안 아무런 근거 없이 믿던 독단적인 신념을 ‘회의’에 빠뜨려 버렸고 철학의 전환을 불러 일으켰다.

흄은 경험주의 방법의 토대위에서 형이상학적 독단을 여지없이 깨 부셨다. 그는 미신적이고 인간의 지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허구적 궤변을 담은 반계몽주의적, 형이상학적 서적들은 차라리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희
데이비드 흄의 동상
“도서관의 책들을 한번 잘 살펴보자. 어떻게 도서관을 청소해야 할 지! 예를 들어 신학 책이나 형이상학 책 한 권을 뽑아들고 물어 보아야 하리라. 그 책은 수량에 관한 추상적인 연구를 포함하고 있는가? 아니다! 그 책은 사실과 존재에 대해 경험에 맞는 논의를 담고 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 책을 불 속에 던져 버려라! 왜냐하면 그 책은 궤변적인 허구만을 담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성이 풀 수 없는 쓸데없는 문제에 계속 매달리는 것은 지성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무모한 시도이다. 흄은 “인간의 지성을 엄밀하게 조사 연구하고 이 지성의 힘과 능력을 정확하게 분석해” 인간의 지성이 수학 이외에 경험을 벗어 난 형이상학적 대상을 다루기에 부적당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했다.

“인간 지성의 제한된 능력에 가장 알맞은 대상에 우리의 연구를 국한해야 한다. 인간의 상상은 본성적으로 커다란 비약이다. 인간의 상상은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것, 비정상적인 모든 것들을 즐기며, 통제 없이 시간과 공간과는 가장 관계가 먼 부분까지 대강 훑어봄으로써 습관상 너무나 익숙해진 대상들을 회피한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 능력은 그것과 정반대의 절차를 밟으며, 온갖 멀리 놓여 있는 고도의 탐구를 한쪽으로 제쳐 놓고, 익숙한 삶과 일상의 실천과 경험에 속하는 그러한 대상에 자신을 국한시킨다.”

칸트의 고백

궤변적인 허구나 독단적인 지식은 물론 자명한 형이상학적 원리도 그에 의해서 이제 ‘회의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이제 흄을 거치지 않고서는 새로운 철학의 등장은 어렵게 되었다. 칸트는 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데이비드 흄에 대한 나의 기억은 내가 수년 동안 빠져 있었던 독단의 선잠에서 비로소 깨어나게 했고, 사변 철학 분야에서의 나의 연구에 완전히 다른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이다.”

흄은 이렇게 철학사에서 중요한 전환을 이루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흄은 철학자로서 보다 역사가로서 명성을 먼저 얻었다. <다음 호에 계속>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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