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의 이론적 아버지 '루소'

철학여행까페[47]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8.09.1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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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 감옥 공격

보통 철학사에서 영국경험론 그 다음에 등장하는 철학 사조는 칸트로부터 시작되는 독일 관념론이다. 그러나 독일관념론으로 건너가기 전에 꼭 언급해야 할 철학의 흐름은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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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an Ramsay가 그린 루소 초상화
계몽주의의 아버지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자들 중에서도 프랑스 혁명의 이론적 아버지로, 독일 관념론 철학자들 및 이후의 정치철학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루소다. 평생 시계처럼 시간을 지켜 산책을 했던 칸트는 루소의 책을 읽다가 산책시간을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헤겔도 청년 시절에 루소에 대해 공부하며 루소가 남긴 문제들을 두고 평생 진지하게 고민했다.

루소가 활동했던 18세기 프랑스는 영국에서 불어 온 변화의 바람에 지적으로 요동치던 사회였다. 볼테르, 몽테스키외 등 18세기 프랑스 지식인들은 변화된 영국 사회와 뉴턴의 과학 그리고 로크의 철학에 상당한 충격과 영향을 받았다. 종교적으로는 자유로운 사상가들이, 정치적으로는 급진적인 사람들이 등장해 새로운 지식인층을 형성하였다.

새로운 지식인층은 교회와 절대 왕정의 폭압에 대해 투쟁했고, 종교적 미신이나 관습 그리고 불합리한 전통으로부터 사람들을 계몽하고자 노력했다. 볼테르는 거침없는 풍자와 조소로 전통적인 종교적 신념들과 불합리한 정치이론을 우습게 만들어 버렸고, 디디로는 전 35권의 백과전서를 편찬해 기존의 ‘상식적인 사유 방식’을 뒤엎어 버렸다. 또 합리주의, 새로운 과학, 인도주의를 소개하였다. 몽테스키외는 영국사회를 모범으로 삼아 프랑스 절대 왕정을 비판하며 로크의 이론을 발전시켜 삼권분립을 주장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모든 곳에서 사슬에 매여 있다"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해 인간은 사슬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루소를 비롯한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의 노력은 마침내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진다. 절대 왕정은 무너졌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에 관한 기본적인 헌정인 인권선언이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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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와 프랑스혁명
인간의 철학이 등장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인권선언문에 나오는 이 구절은 루소에게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루소는 프랑스 계몽주의자들과 더불어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이론을 제공했다. 그는 백과전서파사람들에게 가까이 지내기도 했고, 백과전서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루소는 계몽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자유를 확립하기 위한 계몽주의의 이론을 첨예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몽주의에 항거하는 낭만주의의 길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는 계몽주의가 신봉했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루소는 인간의 자유로운 자연 상태를 전제하고, 인간은 완전히 자연적인 질서 속에서 완전히 자신의 ‘감정’을 신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와 반대로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성장한 인간은 자신의 참된 감정을 억누르고, 사회적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인위적인 사고 범주들을 자신의 정서에 강제로 주입하도록 교육받는다. 루소는 이렇게 주장한다.

“반성의 상태는 자연에 반하는 것이며 생각에 골몰해 있는 사람은 타락한 동물이다.”

루소는 <신엘로이즈>라는 소설을 통해 이성과 자기 억제보다 감성과 정서가 뛰어남을 찬양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이론에 기초한 교육서 <에밀>도 집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어린이가 가진 원래 선한 본성을 믿고 북돋아 주어야 하며, 그들이 사회로부터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에게 어떠한 강요나 도덕적 규정도 강제하지 말고 “자연의 본성에 따라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우도록” 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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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
어쩌면 그가 <에밀>에서 주장한 교육적 이상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루소는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다. 1712년 어머니가 루소를 낳다가 죽자 가난한 시계공이었던 아버지가 그를 길렀다. 그는 가난한 집안 형편과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릴 적에 집을 떠나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스스로 배워 나갔다. 작가 지망생, 수공업자, 신부의 조수, 음악 교사, 시종, 비서, 교사, 유랑 악단, 토지 등기소 직원 등을 안 해 본 직업이 거의 없었다.

그가 19살 되던 해 우연하게 드 바랭 남작 부인을 알게 되어 후원을 받게 된다. 이 부인은 그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철학자, 문인, 음악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후원했다. 이 부인은 루소의 어머니이자 애인 역할을 하였다. 몇 년간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루소는 남작 부인의 바람기에 실망을 해서 26살 때에 그녀를 떠났다. 그는 리용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하다 30세 때에 음악을 통해 명성을 얻을 목적으로 파리로 갔다. 그 곳에서 문필가로서 야망을 지닌 디드로를 운 좋게 만났다. 디드로는 그때〈백과전서>의 편집자였다.

루소는 디드로와 더불어 ‘백과전서파’로 불리는 ‘철학자들’에 사이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 급진적 반(反)교권적 견해를 발표하는 주요수단이었던〈백과전서〉기고자들은 대개 철학자이자 개혁가이며 자유사상가였다. 루소는 주로 음악에 관한 기고문을 실었다. 루소는 오페라〈마을의 점쟁이 Le Devin du village〉(1752)를 작곡하여 왕과 왕실로부터 인정을 받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음악 보다 오히려 사상과 산문 부문에서 더 크게 성공을 거두었고, 더 오래 지속되었다.

37세 때 그는 반종교적 성향의 글로 구속된 디드로를 만나기 위해 뱅센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훗날〈고백록 Confessions〉에서 밝혔듯이 그 때 어떤 영감에 사로 잡혀 빛에 눈이 멀어버리는 것과 같은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이동희
인권선언문
영감에 사로잡히다


“일찍이 어떤 돌발적인 영감이 떠올랐는데, 나를 사로잡은 이 충격이 바로 그것이다. 갑자기 나는 빛에 쌓여 눈이 멀어 버리는 것처럼 느꼈다. 무수히 많은 생각이 엄청난 힘으로 단번에 몰려 와 나는 형언할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나는 취기가 머리끝까지 오른 듯 한 혼란에 빠졌다고 느꼈다. 가슴을 죄는 불안감이 엄습해서 숨 쉬기조차 힘들었고, 더 이상 걸어갈 수가 없어서 나무 밑에 주저앉았다. 거기서 30분 동안을 그렇게 흥분한 상태로 있었는데, 일어섰을 때 나는 내 윗저고리가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오! 언젠가 이 나무 아래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단지 찰나의 한 부분만이라도 묘사할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분명하게 우리 사회 질서의 그 모둔 모순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 어떠한 힘으로 우리 제도의 모든 악습을 설명할 수 있고, 얼마나 분명하게 인간이 천성적으로 선하지만 제도로 말미암아 악하게 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은 그 많은 위대한 진리 가운데 내 기억 속에 남아 나의 저서에 기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 나를 감동시켰던 그것의 희미한 여운에 불과하다.”

루소가 사로 잡혔던 이 사상적 충격은 이후 그의 사상을 결정지었다. 그가 사로 잡혔던 사상적 충격은 어떤 것이었을까?

<다음 호에 계속>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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