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지 아니한가!

[시민운동 2.0] 김희순l승인2008.09.1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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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한 우리네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여름 태양 아래 하얀 소복을 입은 채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쿵쾅쿵쾅 심장이 몇 번이나 뛰었을까, 살짝 뒤척이는 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살아있구나.’

힘겹게 숨을 내쉬며 살기 위해 죽어가고 있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바라보니 시민단체 활동가랍시고 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정말이지 내가 돈을 많이 아주 많이 벌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맘껏 일하게 하고 일한 만큼 대우해주고 싶었다.

도대체 태양은 왜 이글거리는지 한 손으로 햇빛을 가리면서 하늘을 쳐다봤다. 아니 40m 높이의 철탑을 쳐다봤고, 그 곳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KTX 노동자들을 바라보고자 했다. 허술한 사다리는 그나마 철탑의 3분의 2정도 높이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사다리도 미쳐 닿지 않는 철탑 꼭대기에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초가을이어도 30도를 넘는 더운 날씨에 현기증이라도 나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지 아찔해보였다. 정말이지 내가 변호사가 되어서 부당해고 하고 불법, 탈법 일삼는 고용주들 다 처벌받게 하고 싶었다.

기륭전자 노동자를 보며

우리 단체는 ‘우리사회 노동히어로가 말한다’라는 타이틀로 6개의 취약집단을 구성해 그들이 일하면서 느꼈던 점,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점, 그런 것들을 이렇게 바꿨으면 좋겠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있다.

지난 주 첫 시간은 청소년 노동자들이었다. “시급이 천 원인데도 있었어요”, “상사한테 성희롱 당했다고 사장에게 말하니 회사 이미지 나빠진다고 어디서 말하지 말래요”, “예치금 떼고, 구멍난 돈 메우고 이래저래 하니 월급 70만원 중 20만원 받았어요.” 이게 지금 우리나라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정말이지 내가 노동부 장관이 되어서 고용주들이 법 제대로 지키나 제대로 감시하고 처벌하고 싶었다.

2년 전 나는 활동가가 되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고, 세상은 점점 더 좋은 쪽으로 바뀐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더딜 수도 있다는 생각이 요즘 들기는 하지만 지금도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젊은 열정만으로는 세상을 바꾸기에 내 자신이 부족한 게 너무 많다고 느껴진다. 내가 돈 많은 기업가나 변호사, 장관이라면 이 세상을 좀 더 빨리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는 게 빠를까, 내가 성공한 CEO나 변호사가 되는 게 빠를까 저울질하다보니 ‘풋’ 웃음이 나온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으니 그냥 하고 싶은 시민운동 열심히 하련다.

이제 조금은 운동의 맛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잠시 높은 데 올라가신 분들이 본분을 잊고 되레 시민을 탄압하고 시민단체 압수수색까지 해 주신 덕분에 운동하는 목적이 뚜렷해져서 더욱 힘이 난다.

또한 점점 더 척박해지는 운동 환경이 운동 역량을 더욱 무럭무럭 자라게 해주리라 생각하니 흥이 난다. 상대가 세지면 세질수록 경기는 흥미롭다. 열심히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 주리라 믿는다. ‘앞으로의 5년은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리라!’라고 자기암시를 걸어본다.

하지만 멋모르고 열심히만 하면 되던 ‘초보’ 운동가가 아닌 열정 더하기 능력도 있는 운동가가 되고 싶다. 노동법을 더 공부해야겠고 운동적 상상력을 키울 책도 읽어야겠다. 다른 나라는 비정규직 확대로 인한 노동시장의 왜곡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책임은 회피하는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무엇인지도 찾아내야 한다. 일반 시민들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알리는 감동적인 캠페인도 고민해야 한다.

경기는 흥미진진해진다

마음이 급해진다. 기륭전자 노동자들, KTX 노동자들, 청소년 노동자들, 미디어에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모습이 스친다. 마음 한켠이 시려온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신명나게 운동할 때라 생각하니 즐겁지 아니한가! 이렇게 ‘빡세게’ 운동해야 할 시절이 또 오지 않을 것이기에.


김희순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

김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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