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사태, 한국의 책임과 역할은?

구정은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l승인2021.09.0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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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10·7, 8·31.

암호 같은 이 숫자들은 이번 세기에 들어와 유라시아 내륙의 척박한 나라 아프가니스탄을 불길 속으로 몰아넣은 날짜들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심장부에서 테러범들이 초유의 테러공격을 저질렀다.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미국은 아프간 폭격을 시작했고, 아프간 탈레반 정권은 수도 카불을 버리고 도망쳤다. 3년간의 미군 점령통치를 지나 새 정부가 출범하고 원조금이 흘러들어갔다. 민선 정부는 부패했고 탈레반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프간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학교가 문을 열고 여학생들이 공부를 시작했다. 여성 각료가 임명되고 독립적인 언론도 생겨났다. 원조금에 의존한 것이기는 하지만 수치상으로는 경제도 성장했다.

그럼에도 도저히 탈레반을 제거할 수 없었던 미국은 그들을 인정해주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탈레반과 협정을 맺은 미국 바이든정부는 2021년 4월 14일 “9·11테러 20년을 맞는 오는 9월 11일 이전에 미군을 모두 철수시키겠다”라고 선언했다. 그후 넉달, 대공세를 벌여 전국을 거의 장악한 탈레반은 8월 16일 카불에 입성했다.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뒤 세계의 카운트다운은 8월 31일에 맞춰졌다. 미군이 탈레반과 약속한 철수시한이다. 이날 크리스 도너휴 82공수사단장을 끝으로 미군은 아프간을 떠났고 20년 전쟁은 공식 종료됐다. ‘마지막 미군’이 떠나는 순간까지도 카불공항은 미처 떠나지 못한 외국인들과 탈출을 바라는 아프간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20년 전쟁의 종착점은 ‘엑소더스’였다.

카불공항의 혼란과 국제사회의 무기력이 두드러지는 것은 이 전쟁에 발을 들인 나라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투 임무에 가담한 나라는 8개국이었지만 그들을 포함해 이후 국제치안유지군(ISAF)으로 개입한 나라는 50개국이 넘었다. 한국도 군대를 보냈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 직후인 2001년 12월부터 2007년 말까지 해성·청마·동의·다산부대를 보냈으며,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다시 오쉬노부대를 파병했다. 연인원 5000여명의 한국군이 현지에서 활동했다.

세계가 이어져 있는데 외국의 일이라며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에너지를 수입해 쓰고 교역으로 돈을 번 한국으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미 1990년대 말에 동티모르에 군대를 보내 신생 독립국의 국가 수립과 치안을 도와 높은 평가를 받은 전례도 있다. 그럼에도 파병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며 시민의 동의와 냉정한 평가를 필요로 하는 문제다. 테러범들을 숨겨준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겠다며 아프간을 공격한 미국의 행위는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지만 최소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사후 승인하는 형식으로 ISAF를 조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한국군을 보낸 것은 정당성을 찾기 힘든 일이었다. 국제운송의 중요한 뱃길인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근해의 치안 유지에 협력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해도, 아덴만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배치한 청해부대를 미국의 압박에 의해 2020년 이란 앞바다 호르무즈로 이동시킨 것은 윤리적으로나 실리적으로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20년 동안 세계는 너무 많은 혼란과 비극을 겪었다. 미-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 시리아 내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테러와 보복 테러의 악순환, 그리고 난민 사태. 이제는 거기에 아프간 엑소더스와 탈레반의 재집권이라는 새로운 국면이 겹쳐지고 있다. 한 시대가 또다른 우울한 시대로 이어지는 것만 같은 요즘, 다행이라면 적어도 한국이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프간에 군대를 보낸 뒤 구호와 개발을 돕기 위해 많은 이들이 힘을 기울였으며 그렇게 쌓아올린 관계가 힘을 발휘해 ‘미라클 작전’으로 이어졌다. 어쩌다 제주도까지 오게 된 예멘인들을 받아줄 수 없다며 아우성치던 일부 한국인들의 반발을 보며 국제사회는 ‘저토록 발전한 나라가 어째서 아직도 저토록 편협한가’라는 의문을 표했더랬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여론은 확실히 그때와는 온도가 다른 것 같다. 탈레반 통치가 가져올 공포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영향도 있지만, 우리가 파병했던 나라이고 우리를 도왔던 이들을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이 작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가 필요했다면,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전쟁에 우리 군대를 보낼 때 반대했어야 했다.

베트남에 파병해 경제발전의 밑천을 벌어왔다는 인식은 반세기가 지나도록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자국의 필요에 따라 남의 전쟁을 이용하는 것을 우리는 쉽사리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인 듯이 포장한다. 20년 전 아프간 파병을 결정한 정부와 그에 동조한 이들의 논리 중 하나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 남북관계를 푸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호르무즈에 파병할 때에도 똑같았다. 남의 전쟁으로 나의 평화를 살 수 있을까. 옳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단호히 일러줘야 한다. 거짓말을 진심으로 믿는 척하지 말라고.

정부가 난민을 난민이라 부르지 않고 ‘특별기여자’라는 호칭을 만든 것은 현명한 일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그들이 우리 곁에 왔다는 것, 우리가 그들에게 문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물론 반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인권이라는 윤리적 기준만 가지고 함부로 난민을 받아선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권 보호’라는 기준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하고 실리적이다. 20세기의 후반 50년 동안 국제체제는 인권이라는 윤리적 기준을 지키는 나라들이 존중받고,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손가락질당하며 제재를 받게끔 만들어져왔다. 유엔의 존재와 난민협약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체제’들이다. 한국은 더이상 개도국이 아니다. 인권이나 난민, 기후대응 등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서 책임있는 면모를 보여야 하고, 그러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아프간 협력자들을 끌어안은 것은 그 첫걸음이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며 아프간에서 온 이들에게 문화적 동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문화주의와 동화주의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문화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들 역시 여기서 살아가려면 한국사회의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어느 것도 강요로는 되지 않는다. 존중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접점을 넓혀갈 수밖에 없다. 아프간에서 온 400명이 채 못 되는 사람들은 분명 우리에겐 낯선 존재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기회라는 선물을 가져다줬다.

구정은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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