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도. 완당의 자취를 찾아

한용현l승인2007.06.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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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섬의 고장 완도군을 구성하는 201개의 섬 중에 고금도가 있다. 고금도는 500m 거리의 동쪽 섬 약산도와 다리로 연결되어있다. 섬의 북쪽 가교리 마을에서 500m 거리의 강진 마량까지는 새로 다리를 놓아 6월 중 개통한다. 또한. 섬의 서쪽 상정리에서 신지도 송곡 마을과 다리를 놓으려 준비 중이다.

현재 차를 싣고 다니는 나룻배를 타면 고금도 상정리에서 신지도 송곡 마을까지 5분여 만에 닿는 거리다. 신지도~고금도 다리가 놓이면 완도읍에서 이미 개통한 신지대교를 통해 신지도~ 고금도~ 약산도로 차를 타거나 걸어서 오고 갈 수 있다. 약산도 에서는 금일읍. 생일면. 금당면으로 차를 싣고 다니는 나룻배를 타고 수시로 오갈 수 있다.

완도의 많은 섬이 그러했듯이 고금도는 유배의 섬이고 소외의 땅이었다. 조선시대 수많은 벼슬아치와 사대부가 고금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는데 그중에 추사체로 널리 이름을 떨친 완당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이 있다. 완당이 귀양살이하는 아버지 김노경을 찾아뵈려 고금도에 와 잠시 지내면서 한양의 아내에게 한글로 써 보낸 편지가 전한다. 그 편지 내용에 아버지 김노경의 고금도 귀양살이 모습과 완당 자신의 생활이 들어 있다.

순조 30년인 1830년 10월 2일 완당의 아버지 김노경은 당쟁과 세도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고금도에 위리안치 귀양살이 길을 떠난다. 이후 김노경은 3년여 세월동안 고금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영조 대왕의 부마 “월성위” 김한신의 아들인 판서 김이주의 아들로 태어난 김노경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명문가의 후예였다.

자신도 승지. 이조참판. 경상도 관찰사. 평안도 관찰사. 육조판서. 대사헌. 사은 부사. 동 지사. 지돈녕부사 등 조정의 요직을 번갈아 가며. 두루 맡았다. 김노경을 중심으로 하는 경주김씨 가문의 권력 확대가 계속하자 영향력 감소를 우려한 안동김씨 가문의 조작으로 1830년 삼사와 의정부의 탄핵을 받아 고금도 유배로 권력의 중심에서 퇴출당한 것이다.

“완당 (阮堂)김정희”보다는 “추사(秋史)”김정희로 더욱 유명한 김정희(1786~1856)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으며. 과천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6살 때 되던 해 대문에 입춘 첩(立春帖)을 써 붙였다. 우연히 김정희 집 대문 앞을 지나던 실학자 박제가가 이를 보고 집안으로 들어가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에게 “이 아이는 훗날 틀림없이 글과 학문으로 대성할 것이니 잘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내가 비록 부족함이 많지만 이 아이를 맡아 가르쳐 보겠다.”라고 자청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실제로 김정희는 박제가로부터 전통 학문과 함께 실학을 배웠으며. 청나라의 앞선 학문 풍토에 대해서도 늘 듣고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김정희는 24세 되던 1809년 “사마 시”라는 과거에 합격해 “생원”이 되었다. 동지부사의 중책을 맡아 청나라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 연경에 간 김정희는 당대 청나라 제일의 학자 옹방강을 만나 평생의 학문적 좌표를 설정하게 된다.

김정희는 사마 시에 합격한 10년 후인 1819년 다시 문과라는 과거에 합격하고 1822년 규장각 “대제 (待制)”라는 직책을 맡아 본격적인 벼슬길에 나선다. 이후 호서 안찰사. 성균관 대사성. 병조 참판. 형조 참판 등 조정 요직을 맡아 순탄하게 출세 길을 열어갔다.

그러나 당쟁으로 반대파의 모함을 받아 김정희는 55세 되던 해인 1840년 제주도로 귀양 길을 떠나게 된다. 김정희는 제주도. 북청을 포함 총 13년여 동안 귀양살이를 했으나 귀양살이 기간에 그 유명한 “추사체”를 완성하는 등 학문적 연구업적을 남겼다.

김정희는 아버지 김노경의 글과 학문. 박제가의 학문과 실학. 정치사상에 더하여 청나라 금석학. 고증학. 경학 대가인 옹방강(翁方綱)의 학문세계를 물려받아 더욱 발전시켰다.

김정희는 불가의 고승들과도 허물없이 학문을 논하고 차를 나누었다. 또한. 금석학과 고증학. 경학 뿐 아니라 “실학”에도 매우 높은 경지의 연구와 식견으로 당시 실학자였던 정약용. 이덕무 등과도 학문적 교류가 많았다고 한다.

신지도에는 민족정신이 서린 동국진체 “원교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의 유배지가 있다. 바로 옆 섬 고금도의 바람 속에는 “추사체”로 이름을 떨친 완당 김정희가 있다. 석봉 한호. 원교 이광사. 완당 김정희 이 세 사람은 조선을 울린 명필이다. 이 중 두 명필이 완도군 신지도와 고금도에 인연을 남겼다는 사실은 완도와 완도 사람에게 매우 소중한 역사문화 자산이다.

문제는 고금도. 신지도를 포함. 남도바다 많은 섬의 역사. 전설. 설화를 오늘에 되살려 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원교 이광사를 기념하고자 완도의 서예인들이 뜻을 모아 “원교 이광사 기념관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 활동 중이다. 이들은 원교가 귀양살이하며. “원교체”를 완성했던 신지도에 기념관을 세우고자 전국 서예인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완당 김정희”와 고금도의 인연을 기념하고자 하는 노력도 현실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의 주인공인 인어공주 상은 덴마크 코펜하겐 항의 상징이 되었다. 독일 라인 강 가 “로렐라이 언덕”의 전설은 독일작가C. 발렌티노의 시로부터 태어난 가상의 이야기가 실제 전설처럼 널리 알려졌다.

이처럼 가상의 이야기도 지역적 정체성을 부여받으면 지역의 상징이 될 수 있고 관광. 문화 상품의 주제가 될 수 있다. 남도의 많은 섬에서 역사적 사실로 존재했던 이야기를 오늘의 가치로 드러내어 바람직한 지역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용현 참여자치완도시민연대 공동대표

한용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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