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보듬는 ‘뜻의 농업’ 펴자”

김성훈 다시 읽기-식량위기 한국사회 新훈요10조 강상헌l승인2008.09.29 13:14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의외의 재난 속출… 후손들의 땅 잘 가꿔야

농촌은 뿌리, 도시는 꽃-농훈(農薰) 김성훈의 뜻


1. 후손들의 차지인 예쁜 이 땅을 자랑차게 가꾸고, 그 위의 생명을 소중히 보듬는 나라
2. 농민은 소비자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고, 소비자는 생산농민의 살림을 보장하는 나라
3. 농민도 국민 모두와 더불어 잘 사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나라
4. 농촌도 도시와 다름없이 교육 의료 복지 문화 등의 권익을 골고루 누리는 나라
5. 당당한 역사의 고상한 전통 위에 새 문화를 짓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나라
6. 농업도 살고, 기업도 살고, 국제수지도 살뜰히 균형을 맞추는 나라
7. 모든 계층, 각 부문 국민들이 농업의 여러 갈래 깊은 뜻과 역할을 새기고 실천하는 나라
8. 주요한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튼실한 먹거리 정책을 펴는 넉넉한 나라
9. 농소정(농민 소비자 정부)이 함께 다국적기업 등의 외세에 맞서는 슬기로운 나라
10. 하늘 땅 사람, 천지인(天地人)이 하나 되어 더 착한 먹거리를 키워내는 나라

언젠가 상지대총장 김성훈 교수가 가벼운 저녁모임에서 “강 기자, 연애편질세”하며 좀 쑥스러운 표정으로 건네준 한 장짜리 문건을 필자는 잊지 못한다. 그가 ‘자료’를 기자에게 건네준 것은 농정(農政)이나 농업과 관련한 국제적인 흐름 등을 분석하여 언론에 반영하고자 하는 뜻을 표시한 것이다.

경험상 대개 ‘현재’ 언론이 놓치고 있는 사안을 꼬장꼬장하게 톺아 ‘꾸중’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꾸중이 시세에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없기 때문에 기자로서는 ‘무엇이 담겼을까?’하는 기대가 자못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연애편지’라는 표현을 썼을까? 책상에 앉아 ‘농촌은 뿌리, 도시는 꽃’이라는 제목의 그 글을 읽었다. 그 때의 표정이 다시 떠올랐다.

장관을 지낸 인사에게 따르기 마련인, 돈과 그럴싸한 대접이 보장되는 여러 자리의 ‘초빙’을 다 마다하고 필마단기(匹馬單騎) 고군분투(孤軍奮鬪)의 시민운동가를 자처하고 난마(亂麻)처럼 어려운 일만 놓여있던 대학의 ‘투사 겸 해결사’ 자리를 차고앉은 학자다. 그가 이런 ‘연애편지’를 밤 세워 썼다는 얘기다.

당시 이 글에 합당한 ‘답신’을 그에게 전하지 않았다. 최근 농업을 싸고 흐르는 기류(氣流)의 심각한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이 글을 다시 읽을 필요를 느꼈다.

남효선 기자 nulcheon@ingopress.com
강원도 황지 귀네미 마을의 가을 배추 추수 장면.

우리 모두가 농민 농촌 농업에 관해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패륜(悖倫)의 시대’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땅을 모독하고, 그 뜻을 왜곡하며, 그 생명력을 파괴하는 행실들 말이다. 독자와 함께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는 어떤 자리에서건 꼭 이 글을 모두에게 크게 읽어준다.

△이런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인류에 이바지하는 나라입니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은 이제 더 이상 ‘나라의 힘’을 견주는 기준이 아니다. 오직 인류에 이바지하는지, 얼마나 착한 마음을 가지고 지혜롭게 지구촌에서 여러 나라들과 어울리는지의 척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김성훈 교수의 마음이 담긴 이 문건은 환경 식량 따위의 국내외적인 여러 위기상황에 처하는 ‘생명의 훈요(訓要) 10조’로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겠다.

△후손들의 차지인 예쁜 이 땅을 자랑차게 가꾸고, 그 위의 생명을 소중히 보듬는 나라

이 땅은 우리 세대에게만 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은 아마 정치가들보다 초등학생들이 더 잘 안다. 등기부에 자기 이름이 올랐다고 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기 것’이라 착각하는 이들에게는 땅의 생명력이나 그 위의 풀이나 농작물 따위가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농민은 소비자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고, 소비자는 생산농민의 살림을 보장하는 나라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는 일종의 명예계약관계다. 따로 계약서는 없다. 이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계약이며, 결코 망가지면 안 되는 마지노선이다. 그러나 농업을 ‘산업적 측면’으로만 보는 시각과 정책은 이 계약의 뜻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 계약이 잘 지켜지도록 판을 짜는 것이 정부의 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어질지 못하면 소비대중인 시민도 나서야 한다.

△농민도 국민 모두와 더불어 잘 사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나라

대저 농사란 것이 하늘 아래 큰 바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는 허울뿐이다. 말은 옛말은 외우되, 뜻은 달리 새긴다. 농사군의 아들로, 그 아버지의 땀이 만든 쌀로 출세한 여러 사람들까지도 ‘그 빌어먹을 농사’라고 생각한다. ‘근대화’의 산물이 최근까지도 ‘차 반도체 팔아 식량 사먹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굳어져 있다.

농사란 원래 이문이 박하고, 일이 험하며,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어서 세상이 먼저 이를 도와야 한다고 다산 정약용은 오래 전에 설파했다. 그래야 먹거리 걱정 없고 세상이 편하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모여 굳어진 말이 ‘농자천하지대본’이다.

제 백성, 이 세상을 편하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농사의 뜻을 ‘경쟁력’이란 말과 바꿔먹은 몰가치(沒價値)의 세상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이제 식량을 싸게 팔 나라는 없다. 돈 주고도 식량 못 사올 수 있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7%다. 이 ‘위기’를 못 보는 소경들이 정치인이고 언론인인가?

△농촌도 도시와 다름없이 교육 의료 복지 문화 등의 권익을 골고루 누리는 나라

노인과 TV밖에는, 사람이 살면서 챙겨야 할 것들이 농촌에는 없다고들 한다. 우리 농촌이 이토록 피폐해진 것은 결과적으로 농촌을 망하게 해온 살농(殺農)정책의 거듭과 쌓임에 까닭이 있다. 닭과 달걀의 ‘누가 먼저’ 논쟁이지만, 이제는 그 고리를 끊어야 할 때다.

‘국민 모두와 더불어 잘 산다’는 얘기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학교가 있어야 젊은 농민이 살 것이다. 병원이 있어야 농촌의 사람들도 건강할 것이다. 문화는 ‘농민보다 우수한’ 도시 사람들만의 전유물인가? 이런 것은 나라가 마땅히 해야 할 바다.

△당당한 역사의 고상한 전통 위에 새 문화를 짓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나라

농촌의 공동체문화, 비록 망가져가고 있으나 없어지고 나면 모두가 아쉬워할 터다. 우리 전통과 문화가 농민 농촌 농업에 기반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촌스럽다고 깔 볼 것인가?

선진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 촌스러움을 농촌만이 줄 수 있는 혜택이라 하며, 거기에 깃들이고 싶어 안달인 것을 우리 세련된 도시 사람들, 정치가들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에도 막 시작된 어메니티(amenity)라는 새로운 유행이 바로 이런 촌스러움에 대한 추구인 것을 말이다. 어질고 바른, 그리고 편안한 마음이 농촌의 삶에는 있다. 도시에는 없다.

△농업도 살고, 기업도 살고, 국제수지도 살뜰히 균형을 맞추는 나라

김성훈 교수는 ‘힉스와 롤즈’만 제대로 알고 실천하면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자주 얘기한다. 197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영국 경제학자 J. R. 힉스의 ‘보상의 원칙’과 미국 정치철학자 J. 롤즈의 ‘최약자 보호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정책이건 이익을 얻은 계층이 그로 인해 손해를 본 계층을 지원해 형평을 유지하도록 하는 (정부의) 제도적 보정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덜어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이 ‘온풍기’가 있었기에 서구 자본주의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 세계 최고의 반도체나 선박, 멋진 차 수출을 위해 그 바탕이 되어준 농업의 희생은 제대로 보상을 받았는가? 풍부하고 우수한 노동력을 공급해주고, 값싼 쌀을 만들어 도시와 산업을 살찌워 온 우리 농업의 오늘은 그만한 영광을 누리고 있는가?

△모든 계층, 각 부문 국민들이 농업의 여러 갈래 깊은 뜻과 역할을 새기고 실천하는 나라

‘쌀을 만들어내는 터전’으로서의 농업은 원래 뜻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농업이 가진 다양한 기능은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아닌 우리 전체를 위한 것이다. 그들이 정성으로 일을 하면 그 결과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 된다.

이를 전문용어로 ‘농업의 다원적(多元的) 기능’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세계무역기구(WTO)도 농업의 이러한 여러 역할을 ‘비교역적관심사항’(NTC)라고 이름 붙이고, 이것이 망가지지 않도록 배려한다.

우리 사회는 이 부분의 이해에 극히 인색하다. 아름다운 경치, 맑은 물과 상쾌한 공기, 홍수나 사태 등으로부터의 안전 등은 기본이고 기후변화 등의 생태위기로부터 우리를, 지구를 지키는 막중한 역할이 농업에는 있다.

농민, 농촌, 농업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대기업이 비행기로 농약 비료뿌리면 된다고? 정주영도 실패한 세계 최대의 농장 실험을 보고도 그런 막가는 얘기를 할 수 있나?

△주요한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튼실한 먹거리 정책을 펴는 넉넉한 나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등 잘 산다는 나라들 다 봐도 농업이 시원찮은 나라는 없다.특히 전쟁을 겪으며 터득한 ‘식량무기화’의 공포를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 나라 농민들의 수입 중 40~60%는 정부보조다.

그들은 식량 전체를 자급하고도 남지만, 우리는 겨우 쌀만은 자급한다. 그러나 이 자급도 식생활 패턴의 변화에 따라 10여년 전부터 쌀을 워낙 덜 먹게 된 상황까지를 생각하면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다.

나머지 곡물의 자급률은 5% 내외, 전체 자급률은 27% 내외다. 남아도는 것 같던 세계의 곡물시장은 수요가 늘고, 기후변화 등으로 생산은 줄어 위태위태하다. 최근 후진 각국에서 빚어진 식량폭동을 ‘강 건너 불’로 여길 수만은 없게 된 것이다. 선진국들은 자급자족을 넘어 식량을 다른 나라를 움직이는 지렛대로 삼는 전략과 전술을 펴고 있다. 오래 전부터의 일이었는데 우리는 애써 눈을 감고 있었다.

식량이 반도체 선박 차보다 더 비싼 시대가 바로 턱 아래까지 닥쳤다. 우리가 애써 망가뜨리고 있는 우리의 농업, 우리의 식량이 이제 우리의 목을 죄는 모양이 된 것이다. 쌀(식량)은 경제이기도 하지만 이제 (국제)정치다. 전쟁과 평화를 주관하는 신(神)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토 만들자던, 그 피맺힌 새만금을 대부분 농사 아닌 다른 용도로 쓰겠다고 한다.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그 사실 조차 알지 못하는 무명(無明)이여!

△농소정(농민 소비자 정부)이 함께 다국적기업 등의 외세에 맞서는 슬기로운 나라

농민 소비자 정부 등 농업과 관련한 각 주체가 뜻을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원활한 소통(疏通)이 전제 조건, 소통을 위해 생각을 모우고 이를 가지런히 하기 위해서는 각 주체가 성실하게 공부를 해야 한다. 가을들판에서 쌀나무가 어떤 것이냐고 묻거나, 포도원에서 포도 말고 건포도나무는 어디 있느냐고 묻는 ‘농맹'(農盲)이 아직 있다한다. 웃고만 넘기기에는 좀 아쉽다.

제 뱃속만을 위한 잇속을 섣부른 명분으로 사탕발림한 의논으로는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 공부와 명상은 문제의 핵심을 떠올려준다.

우리의 큰 경계의 대상이 미국과 같은 나라의 그늘에 숨은 다국적기업의 노련한 장삿속임을 농소정 3주체가 정확히 인식한다면, 그 대응의 방안을 내는 것도 또한 까다롭지 않다. 또 우리 내부에 오래 도사리고 있으면서 적(敵)과 내통하거나, 결과적으로 ‘우리’를 슬프게 하는 세력도 뽑아내야 한다. 개혁(改革)은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늘 땅 사람, 천지인(天地人)이 하나 되어 더 착한 먹거리를 키워내는 나라

하늘을 거스르지 않는 착한 백성에게 하늘은 풍요를 준다. 천지인의 공존(共存)과 순환(循環)을 좇아 힘을 다하는 농업은 그 오묘한 뜻인 ‘생명’을 품은 먹거리를 낸다. ‘귀한 생명’인 당신은 생명 아닌 것을 먹어선 안 된다. 생명 아닌 것을 다른 사람에게 먹여도 안 된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하늘임을 잘 아는 이 땅의 사람들의 선택은 당연히 생명의 농업이다. 이는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다.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상헌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