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소 돼지 닭은?”이라는 질문이 묻지 않는 것에 대하여

하재영 작가l승인2021.11.0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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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이제는 개 식용 금지를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라고 발언했다는 기사가 나오자 댓글에는 익숙한 질문이 따라왔다. “소는? 돼지는? 닭은? (식물은?)” 개 식용 논의에 ‘반드시’ 등장하는 이 질문을 볼 때마다 동종의 동물을 반려동물이자 식용 가축으로 여기는 두 인식 사이의 아득한 거리감을 느낀다. 나는 우리가 동물권에 대해 논의할 때 개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개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한 동물의 분열된 위치를 돌아보는 일이자, 가장 가까운 동물(반려동물―가족)과 가장 먼 동물(농장동물―음식)에 관해 생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려동물로서의 개는 여전히 과도기적 상황에 놓여 있다. ‘강아지 공장’이라 불리는 번식장은 수요를 뛰어넘는 공급을 제공한다. ‘세상의 어떤 개도 팔 수 있다’는 경매장은 새끼 강아지부터 번식장의 모견과 종견, 심지어 출산과 생식 능력이 떨어진 이른바 ‘폐견’까지 거래한다. 폐견을 낙찰받아가는 사람들은 육견업자들이다. 대형견은 고기로, 소형견은 개소주용으로 사용한다. 번식장과 경매장의 문제는 개 식용 문제로 연결된다.

동물생산업에 대한 규제가 약한 우리나라에서 강아지는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다. 애견숍이 아니라도 자신이 키우던 개를, 또는 그 개가 낳은 새끼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거나 무료로 양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쉽게 데려온 사람들은 쉽게 버린다. 한해 10만마리가 넘는 유기견이 발생하는 이유다.

개 식용이 잔존하는 우리나라에서 유기견이 맞닥뜨리는 가장 큰 위협은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또는 개농장에 팔아넘기려는 사람들이다. 개농장이 아닌 유기동물 보호소로 들어간다 해도 식용이 될 가능성은 없지 않다. 일부 위탁보호소에서는 입양되지 않은 개를 안락사하는 대신 개농장에 팔아넘긴다. 그렇게 어떤 개들은 반려견에서 유기견으로, 유기견에서 음식으로 전락한다.

유기견 문제의 또다른 축은 번식장에서 공급하는 품종견이 아닌 흔히 ‘믹스견’이라 불리는 혼종견이다. 일부 시골 지역과 도심 외곽에서는 잔반 처리용으로 혼종견을 짧은 줄에 묶어 키우거나, 반대로 떠돌이 개와 다름없이 풀어놓고 키운다. 이 개들은 평생 1미터 반경에서 살다 복날에 팔려가거나, 혼자 돌아다니다 잡혀간다. 혼종견들은 ‘대충’ 키워질 뿐 아니라 ‘끝없이’ 태어난다. 번식장이 수요를 웃돌아 공급해도, 혼종견들의 개체 수가 넘쳐나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쓸모없어진 개를 언제든 식용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늙고 아프고 버림받고 효용을 다한 개들이 도살장으로 흘러가는 한편에는, 식용으로 사용할 개를 조직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개농장이 존재한다. 개농장의 비위생적이고 비인도적인 환경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무법지대에 있었던 개 식용을 합법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로운 종(개든 고양이든 또다른 동물이든)을 축산 시스템에 편입하는 일이 ‘합리적’인 일일까? 또한 이것이 ‘가치 있는’ 일일까? ‘축산동물’, ‘식용동물’로 제각기 불리던 용어가 ‘농장동물’이라는 언어로 순화되었지만, 평화롭고 목가적인 동물농장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들은 농장이 아니라 ‘공장’에 살고 생명이 아닌 ‘고기’로 취급받는다.

축산업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887년이고 소, 돼지, 닭의 밀집 사육 축산이 시작된 것은 1926년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공장식 축산의 폐해는 개선되기는커녕 인간, 동물, 환경 모두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여러 나라들이 동물복지를 기반으로 한 축산 패러다임의 전환을 실행하는 상황에서 어느 나라도 축산물로 지정한 적 없는 종을 법제화하고, 기준에 맞는 사육·축종·도살 방식을 연구하며, 이에 상응하는 시설을 마련하려면 막대한 세금이 든다. ‘세계 최초의 개 식용 합법화 국가’라는 타이틀이 가져올 유무형의 손실과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의 수습 비용도 계산해야 한다. 190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새로운 동물을 주된 축산종에 포함한 사례가 거의 없으므로 이 비용은 산출도 어렵다. 동물과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동물권 보호가 세계적인 흐름이 된 상황에서 이 비용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현대 축산업은 최소 비용, 최대 생산, 밀집 사육으로 요약된다. 축산 체계에 들어간 동물은 숨이 붙어 있을 때도 고깃덩어리와 똑같이 취급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살처분이라는 가장 쉽고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해결해왔던 가축 전염병의 원인, 인류의 위협이 된 인수공통감염병의 주범, 온실가스 배출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공장식 축산 시스템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는? 돼지는? 닭은?”이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공장식 축산의 비극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이 질문 아닌 질문은 농장동물의 고통을 은폐하고, 동물과 환경에 대한 인간의 자기성찰을 불가능하게 만들며, ‘완벽한 비거니스트가 아니면 어떤 동물의 고통에 대해서도 논하지 말라’고 압박한다. 모든 생명체에게 무해한 존재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가 자본과 산업의 이름으로 망가뜨린 것들에 대해서 아예 고민하지 말자는 태도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시작하고 개입해야 한다. 동물 문제의 당사자는 동물만이 아니다.

때로는 ‘무엇을 하는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가’가 한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것 같다. 비거니스트는 식물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물을 ‘먹지 않기’ 위해 채식을 선택한다. 개 식용을 금지하려는 사람들은 소, 돼지, 닭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다른 동물을 그 시스템에 ‘밀어 넣지 않기’ 위해 개 식용 반대 입장을 선택한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확신할 수 없을 때도 우리는 무엇이 더 가치 있고 지속 가능한 일인지 고민해야 한다. 최소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소는? 돼지는? 닭은?”이라고 묻는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동물은 더 사랑받고 어떤 동물은 더 착취당하는 모순에 대해. 그러나 이 모순을 벗어나기 위해 모든 동물을 ‘더 착취당하는 존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좀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 모른다.

하재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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