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평등·박애를 일군 루소의 사상

철학여행까페[48]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8.09.2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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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가 디드로를 만나기 위해 뱅센으로 가는 도중에 얻은 깨달음은 나중에 디종 아카데미 현상 논문으로 나타났다. 루소는〈학문과 예술에 관한 논문 Discours sur les sciences et les arts〉(1750)을 작성했다. 디종 학술원은 “예술과 학문의 진보가 도덕의 향상에 기여하였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현상논문을 모집하였다.

이동희
털모자를 쓴 루소
디종학술원 회원들은 전적으로 계몽주의 정신에 입각해 문화적 업적의 진보성에 대한 찬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소는 <학문과 예술에 관한 논문>에서 그러한 기대를 뒤엎어 버리고, 진보를 부정하였다. 그에게 학문과 예술의 발전이란 인간적인 것의 타락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은 본래 선하지만 사회와 문명 때문에 타락했다."

루소가 제출한 논문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은 디종 학술원의 두 번째 현상논문의 주제가 되었다.
“인간의 불평등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이며 그것은 자연법적 근거를 지닌 것인가?”

루소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인간 불평등기원론>을 썼다. 이 논문에서도 그는 앞의 논문과 같은 기조를 유지한다. 우선 그는 인간이 자유로운 자연 상태로부터 어떻게 자유를 잃어버렸는가를 설명한다.

토지의 독점과 인간본성

그에 따르면, 모두에게 속했던 자연 상태의 토지를 인간들이 분할 소유해 각자의 재산으로 할 때부터 이미 인간은 자유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토지를 분할해 각기 소유한 뒤부터 재산을 늘리는 것은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렇게 해서 부자와 빈자가 생겨나고, 마침내 주인과 노예가 생겨난다. 부자들은 뭉쳐서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국가와 법령을 만들자고 순진한 사람들을 꼬드겨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불평등한 제도를 영구화시켜 버렸다.

그렇게 주인과 노예를 제도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인간은 자유로운 자연 상태를 벗어나 예속과 복종의 상태로 떨어진 것이다. 루소는 이러한 불평등을 원인을 막을 수 있었다면 지금 겪고 있는 인류의 고통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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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잠들면 재앙이 온다.
“어떤 한 사람이 어떤 토지에 막대기를 꽂고 이것은 내 땅이라 주장하는 것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주위사람들로 하여금 단순하게 믿게 만든 최초의 인물이 부르죠아 사회의 본래의 창시자이다. 여기서 누군가가 그 꽂힌 막대기를 뽑아내거나 제멋대로 파헤쳐진 도랑을 메우고는 이웃 사람들에게 ‘이 사기꾼을 믿지 말라’ ‘그대들이 만일 여기서 자라는 모든 열매는 우리들 모두의 것이며 단 한 조각의 토지도 어떤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그대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되리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 사람이야 말로 인류가 겪은 얼마나 많은 범죄, 전쟁, 살인, 빈곤과 갖가지 불의를 예방할 수 있겠는가.”

볼테르는 이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읽고 루소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고 한다.

“나는 인류 자체를 거역하는 당신의 새 책을 입수하였습니다…. 아마도 우리 인간을 동물의 상태로 떨어뜨리는 데 있어서 당신 이상으로 기지를 발휘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나 자신이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걸은 지는 이미 60년이나 지난 나로서는 더 이상 그런 문제를 놓고 고심할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볼테르는 이성과 진보를 신봉하는 입장에서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루소를 비판했다.

루소는 볼테르를 비롯한 사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인간 불평등기원론> 이후의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인간이 어떻게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고심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불평등기원론>과 다른 처방을 내린다. 시민사회나 국가가 정당한 사회계약에 기초한다면, 인간은 자연 상태의 독립을 희생한 대가로 더 나은 정치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나 사회의 정당한 지배권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기초는 오직 전체의 합의, 즉 자유로운 동의에 있다. 이 합의가 바로 사회계약이다. 이제 각 개인은 자기의 인격과 자기가 소유한 일체의 권력을 공동재산으로 간주하고 이를 일반의지에 종속시킨다. 각자는 일반의지에 복종함으로써 각자의 자유와 모든 이의 평등을 보증한다. 일반 의지는 개인 의지에 따라 이루어 진 것이기에 일반의지에 복종하는 것은 각 개인의 자유와 자신의 법칙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루소에게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의지가 나의 의사에 위배되거나, 자유를 구속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루소는 이 물음에 대해 이렇게 답을 한다.

“그런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경우에 시민은 일체의 법률을 그것이 자기 의사에 위배되거나 그 중의 어느 한 가지에 저촉되어 자기가 형벌을 받을 수도 있는 그런 법률이라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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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가정생활
일반의지와 전체의지


여기서 그는 법률은 나의 의지를 포함한 전체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따라 처벌당하는 것이 오히려 나의 자유를 따르는 것이라 본다. 그는 일반 의지에 복종할 때, 자연인이 아니라 시민이 될 수 있으며 정치적 자유를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모든 국가구성원의 항구적 의지가 곧 전체의지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비로소 국가의 모든 구성원은 시민일 수 있고, 동시에 자유로울 수 있다.”

사회계약론은 박해를 피해 프랑스가 아니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출간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프랑스 국내로 몰래 반입해 그 책을 읽었다.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혁명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되었다.

루소는 뱅상으로 가던 길에 깨달은 생각을 사회, 정치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교육에서도 관철시키고자 했다. 그는 교육 소설 <에밀>을 통해서도 그러한 주장을 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 <에밀>, <신엘로이즈> 등 일련의 저술을 통해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 부패와 불의한 권력을 고발하는 자신의 저술로 인해 비난과 박해를 받았다. 그가 1762년에〈에밀〉을 출판했을 때, 프랑스 의회의 독실한 얀센주의자들이 분노했다. 얀센주의자들은 이 책을 불태우게 했고, 저자를 체포하도록 했다. 파리의 고등법원은 이 책을 압수할 것을 결정했고, 루소는 체포를 면하기 위해 황급히 몽모랑시를 떠나야 했다.

그는 파리와 제네바 당국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도피생활을 했다. 그러나 도피생활 중에도 유명한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곤해 했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일부러 고독한 은둔생활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는 적들과의 논쟁, 동료들과 설전에 지친 탓인지 모른다.

말년에 그는 일종의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우울한 생활을 했다. 1766년에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그를 영국으로 데리고 가 도우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영국 지식인들이 자신을 조롱하고 있고 흄도 자신을 몰래 비난한다고 의심했다. 결국 사람 좋은 흄도 루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루소는이름을 숨긴 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다. 그는 이후 복장을 아르메니아식으로 하고 머리에는 털가죽 모자를 쓰는 등 기이한 모습을 하고 다녔다.

루소는 23년의 동거 끝에 하녀 테레즈가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1768년 56세 때 그녀와 결혼했다. 루소는 교육이론가이면서도 테레즈와의 사이에서 낳은 5명의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 버려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가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 버린 것은 자식들이 너무나 소란스럽고 양육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프랑스를 망쳤다”

루소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주로 적들의 비난에 대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자서전적인 글을 썼다. 〈고백록>,〈루소는 장 자크를 심판한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썼다.

그는 말년에 정신적 안정을 되찾았고, 1789년에 프랑스 대귀족 콩티 공과 지라르댕 후작의 영지로 피신했다가 죽었다. 죽은 후 루소의 명성은 엄청났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사람들은 루소의 시신을 판테옹으로 이장했다. 프랑스인들은 루소를 혁명의 이론적 아버지로 기리기 시작했다. 루이 16세는 감옥에서 볼테르와 루소의 저서를 읽어 보고, 이렇게 불평했다.

“바로 이 두 사나이가 프랑스를 망쳐 놓았다.”

루이 16세가 불평한 것처럼, 루소는 프랑스 독재 군주제도를 망쳐 놓은 인물이었고, 새로운 시대와 사회를 연 인물이었다. 프랑스 공화국 헌법은 사회계약론을 본 따 만들어졌고, 자유 평등 박애라는 혁명 구호 역시 루소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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