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길준 씨 생각이 났다. 이길준 씨는 촛불집회 진압작전에 투입되면서 극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며 양심선언을 하고 7월 27일부터 7월 31일까지 5일간 신월동 성당에서 전의경제도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을 했던 현역병이다.
그는 7월 31일 체포영장이 발부된 후 농성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도 재판정에서든 감옥에서든 꿋꿋이 삶의 주체가 되는 저항을 계속해나가겠다며 중랑 경찰서로 자진출두를 했다. 현재 이길준 씨는 중랑 경찰서 유치장을 거쳐 성동구치소에 수감되어있다.
징병제도에 관해 근본적으론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회 공동체를 위한 임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던 그가 어느 날 전투복을 입고 죽도록 뛰어 촛불시위대 진압의 젤 선두에 서게 된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단 이길준 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방의 의무가 신성한 것이라 교육받고 자라 군에 입대했는데 시민과 내가 적대적인 관계로 마주하는 순간 대부분의 전경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 않았을까.
전투경찰제도는 1970년에 도입되어 군사독재정권 하에서는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민주화 이후에도 시위진압에 차출되며 원래 전투경찰 설치의 목적인 대간첩작전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임무에 투입되어 왔다. 이러한 전투경찰제도에 관해 오랫동안 비판의 목소리들이 있어왔고 1991년에는 헌법소원까지 제기되었으나 별다른 진척사항 없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다가 지난 참여정부 임기 말기에 2012년까지 전·의경과 의무소방대, 경비교도대원 등의 전환복무제를 전면 폐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참여정부 시절 결정된 굵직한 국방정책을 뒤집는데 일가견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결정 역시 몇 번에 걸친 어청수 경찰청장의 전의경제도 폐지 반대 발언을 통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였다. 왜 결정을 뒤집게 되었는지 정부에서는 충분히 해명하거나 의견을 수렴하거나 하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진 않지만 예기치 못한 촛불에 덴 정부가 앞으로 또 이런 시위가 벌어질 것을 우려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인 것 같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열기가 가라앉은 뒤인 지난 8~9월 총리실 주관으로 전의경 제도 유지와 관련한 관계기관 협의를 벌여왔다고 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전의경 구타 및 가혹행위 직권조사 결과를 보면 전의경제도 자체의 문제점이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피보기게임’, ‘바닥돌리기’, ‘걸레짜기’, ‘땡겨’, ‘잠깨스’, ‘물PET’, ‘미싱’ 등 이름조차 괴상한 방식의 가혹행위와 구타, 왕따, 왜곡된 조직문화, 성추행 등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전시를 상정하고 군사훈련을 받는 군대 내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이 잊을만하면 불거지는데 하물며 거리에서 매일 전시를 방불케 하는 전투를 수행해야 하는 전의경 부대 내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시민을 적이라 상정할 것을 요구받고 ‘공격해야 할 적에 대해 공격하지 않으면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전투경찰대설치법 9조 2항)에 처해지는 전의경들의 업무 자체가 이러한 문제의 원인인 것이다.
이길준 씨가 우리 사회에 울린 울림은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그의 선택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의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고 말했지만 영어의 몸인 그의 처지는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젊은이들이 그가 인간적으로 할 수 없었던 그 임무에 내몰리지 않길 바란다.
제2, 제3의 이길준이 창살 아래 갇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대간첩작전을 할 게 없으면 전의경제도는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고 그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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