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피해자 김응익씨, 폐이식 17개월만에 숨져

제공=환경운동연합, 정리=양병철 기자 양병철 기자l승인2021.11.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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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 가해기업 처벌, 제대로 된 배·보상 등 고인과 피해자들 요구 담아

고인과 함께 SK, 옥시 등 가해기업과 정부청사 돌며 추모

또 한 분의 피해자를 떠나 보냈다. 지난 11월 21일 새벽 1시 16분 김응익씨가 지난해 6월 폐이식을 한 뒤 1년 5개월 만에 부인과 두 아들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향년 64세로 삶을 마감했다. 고 김응익씨는 지난 1997년부터 2011년 이후까지 15년 이상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사용했다.

▲ 2021년 8월 17일, SK 본사가 있는 서울 종로 SK서린빌딩 앞에서 신속하고 정당한 배·보상을 촉구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고 김응익씨의 모습이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부인 권모씨는 “옥시 제품을 좋아해서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늘 사다 썼다. 빨간색 뚜껑으로 가운데를 누르면 일정량이 올라가서 뚜껑에 일정량이 담기는데 그걸 가습기 물통에 넣곤 했다. 가습기 여러 대를 거실과 침실 곳곳에 틀어 놓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2011년 이후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기 시작해 뇌경색이 왔고, 폐섬유화를 동반한 호흡곤란 등으로 병원을 자주 다니기 시작했지만, 가습기살균제를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부인 권씨는 “2011년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알려졌다지만 우리는 그때 몰랐다. 그래서 2011년 이후에도 계속 사용했다”고 말했다.

김응익씨는 2016년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난 뒤에야 정부에 피해 신고를 했다. 하지만 폐손상 판정 결과 4단계, 즉 ‘관계없음’으로 판정됐고, 재검사에도 불구하고 2019년 12월에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으면서 피해를 공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었다.

그 사이 피해자들이 속출하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 제정돼 가해 기업들과 정부가 낸 구제기금으로 피해자를 지원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2018년 11월 김응익씨는 ‘구제계정인정’이라는 통보를 받으며, 정식 피해자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기업기금에서 지원하는 조건에 해당된다는 애매한 결과를 받아들어야 했다.

정부는 2014년 첫 피해 판정 때 매우 엄격하고 좁은 인정 기준을 내세워 ‘폐섬유화를 동반한 폐손상’만을 피해로 인정하다가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 뒤 인정 질환을 점차 늘려갔다. 고 김응익씨의 경우, 2018년 ‘성인간질성폐질환’과 ‘기관지확장증’ 두 가지 질환으로 가해 기업들이 낸 구제기금 지원대상이 되긴 했지만, 결국 2020년 특별법이 개정되고 나서야 겨우 공식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세상을 떠난 지금 이 순간까지 김씨와 유족들은 가해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단 한 푼의 배·보상도 받지 못했다.

2018년부터 김응익씨의 건강상태는 점점 나빠져 지난해 6월에는 폐이식을 받아야 했다. 폐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마지막 수순이었다. 폐이식 뒤 김응익씨는 매우 밝은 목소리로 지인들에게 전화해 “숨쉬기가 너무 좋다. 왜 진작에 폐이식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병원에서 폐이식을 권하면 꼭 수술을 받으라고 다른 피해자들에게 권고하겠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응익씨는 폐이식 합병증 등으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건강이 더 나빠져만 갔다. 올 6월에는 위암 3기 진단까지 받아 항암치료까지 견뎌야 했다. 고 김응익씨와 같이 가습기살균제 사용 피해로 폐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던 피해자들은 신고된 사례만 4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김응익씨 처럼 폐이식 뒤에도 고통받다가 숨진 경우가 여럿이다. 2015년과 2019년 두 차례나 폐이식을 받은 배구선수 출신 안은주씨의 경우도 만 3년이 넘도록 입원 중으로 아직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SK케미칼(당시 유공)이 처음으로 제품을 출시한 뒤 2011년까지 18년 간 옥시, 애경, LG,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삼성 테스코), GS, 다이소, 헨켈 등 국내외 유수의 기업들이 앞다퉈 유사한 액상제품을 개발해 최소 43종류 998만 개 이상 판매했다. 그러나 첫 제품을 개발한 SK케미칼은 물론이고 이후 PB제품 등의 카피제품을 출시한 모든 기업들이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제품안전점검을 하지 않았다.

2019년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전국 규모의 피해 정밀조사를 한 결과, 제품사용 경험자가 894만명이고 건강 피해 경험자가 95만명, 이 가운데 사망자는 20,366명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오늘 김응익씨의 사망 사례가 추가됐다.

올해 8월 김응익씨는 전화로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 너무나 억울할 것 같다. SK 앞에서 열리는 기자회견에 나가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 17일, SK서린빌딩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휠체어를 타고 온 김응익씨는 웃옷을 벗어 폐이식 수술부위를 보여주며, 자신의 피해를 온 몸으로 호소했다.

▲ 고 김응익씨가 사용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제품의 라벨 ‘아이에게도 안심’,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당시 김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을 약속한 지 4년이 넘었다. 임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어쩌려고 이러느냐. 피해자들이 10년 넘도록 고통받고 있다. 제발 적극적으로 해결해 달라. 참사 10주년인 8월 31일까지 배·보상 문제를 해결해 달라. 나는 얼마 못 산다. 살아 있을 때 해결되는 걸 보고 싶다”고 울부짖었다.

특조위가 가동됐지만, 문재인 정부는 내내 뒷짐 지고 외면해 왔고, 급기야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 끝났다’고 강변하는 환경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특조위의 기본 업무이자 존재 이유인 가습기살균제 진상 조사 기능 자체를 없애 버렸다. 전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사망자만 2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10명 중 1명도 아직 찾아내지 못하면서 진상규명의 기본인 참사의 규모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가해 기업들과 그 임직원들에 대한 형사 처벌도 옥시 등 일부에만 국한되어 버린 상황에서 SK, 애경, 신세계이마트 등 임직원들에 대해서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조차 1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는 등 형사 책임조차 제대로 묻지 못하고 있다. 고인이 소망했던 제대로 된 배·보상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보상 조정위원회가 출범했지만 피해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배·보상이 언제 이루어질지도 알 수 없다.

이렇듯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진상규명부터 가해 기업 처벌, 피해 배·보상,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마무리되지도 않은 상황이다.

유족들은 3일장을 마치는 11월 23일 장지인 충남 서산으로 향하기 전에 고 김응익씨의 영정과 유해를 안고 SK그룹 본사가 있는 SK서린빌딩, 여의도에 있는 옥시(현 레킷) 본사 앞을 비롯해 광화문 부근에 있는 배보상조정위원회와 정부서울청사 앞을 돌며, 고인이 생전에 외쳐 온 메시지를 전하고 시민들에게 알리기로 했다.

양병철 기자  bcyang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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