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공화국'과 시민사회의 현 주소

시민사회, 젊은세대에 희망될까 이버들l승인2008.10.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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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88만원 세대다. 내 친구들도 역시 88만원 세대다. IMF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7년 그해 겨울, 우리는 대학입학원서를 썼고 어려운 경제여건과 함께 20대를 시작했다.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 시절부터의 20대는 순탄치 않았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갈 곳 없는 취업대란과 비정규직 자리로 가득 찬 고용 불안, 비정규직보호법으로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2년 안에 그만두어야 하는 차디찬 현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명문대 석사를 마친 친구 K도 비정규직 자리를 전전하고 있고, 벌써 7년째 공무원 시험 준비로 20대를 고스란히 바친 친구 Y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시민사회신문DB>
현재의 ‘88만원 세대’는 사회운동을 어떻게 바라볼까. 지난해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이 학내 민주주의와사회운동연구소와 공동으로 진행한 ‘비정규직 전시회 시즌 1’의 모습.

조금씩 호전되던 경제상황도 최근 들어 더욱 나빠지고 있어, 이러다가 제2의 IMF가 오는 게 아니냐는 불안한 마음도 생기곤 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환율 정책을 고집하면서, 올해 들어서만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226억 달러나 감소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9월말 외환보유액 현황’에 따르면, 9월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2천396억7천만 달러로 6개월째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는 등 미국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 최근에는 사상 최대의 감소폭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급변동하는 외환시장에 잇따른 외화 투입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당분간 이 같은 외화보유 감소는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며, 외환보유액 감소로 인한 유동성 부족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과 같은 국제적 신용위기가 도래할 경우,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면 금융위기의 타격이 더욱 커질 것이며, 국내 금융시장의 가장 큰 약점도 외화 유동성이라는 측면에서 우려와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금융 불안으로 인한 경제 악화가 예상되면서 청년실업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취업도 안 되고, 부모님 눈치와 죄책감, 우울증세가 늘어나면서 청년 자살도 급증하고 있다. 10대 이후나 40대 이후가 대부분 사고나 병으로 사망하는데 반해, 20, 30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하루 평균 33명이 자살로 사망하고 있으며 OECD 국가 중에서 자살 사망이 가장 높은 자살공화국,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우울한 현 주소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자살로 사망한 이는 1만2천174명으로, 하루 평균 33명이 자살하고 있으며 교통사고 사망자(7천604명) 보다 많은 이들이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자살에 대한 고정관념이 크다.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하거나 정신적 질환이 있는 등 지극히 개인적이고 병리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IMF로 인한 심리적, 경제적 불안 요소가 커지면서 우울증으로 인한 심리적 자살이 증가하고 있고, 생계형 자살이라 일컬어지는 일가족 자살도 증가하면서 더 이상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사회 문제가 되어버렸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켐도 자살론을 통해 자살의 원인이 개인, 심리적 차원을 뛰어넘은 사회적 현상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자살 원인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의지 부족으로 치부하기에는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과 경제적 압박은 예상보다 크기 때문이다.

가끔 386선배들을 만났을 때 곧잘 듣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사회 문제에는 관심이 부족하다는 한탄 비슷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선배들에게 요즘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불안과 취업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 깜짝 놀라곤 한다.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보긴 했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지는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대 차이는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어떤 충격적인 사건을 거쳤는지를 살펴보면, 그 사람에 대한 가치관이나 생각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6.25전쟁을 겪은 세대와 그 이후의 세대는 생각 자체가 매우 다르다. 아무리 레드컴플렉스라고 주장해도 전쟁을 겪은 세대가 가지고 있는 전쟁의 충격과 그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를 그 다음 세대가 이해하기는 어렵다.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세대 또한 그들만의 세계관을 이후 세대는 이해할 수 없다. 머리로 생각하고 사진이나 TV화면으로 보는 세계와 직접 몸으로 겪은 경험은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다.

IMF는 한국 사회에 있어 6.25전쟁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다. IMF를 몸으로 겪은 사람들의 경제적 위기감과 심리적 불안감이 매우 높기 때문에, 아무리 인권, 환경, 생태 등 다른 가치를 강조해도 사람들의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 천박한 자본주의라고 비난받기도 했던 부자 신드롬이나 도덕적 해이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공사·공기업들의 높은 취업열풍을 볼 때, IMF충격이 뿌리 깊게 한국 사회에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IMF 이후의 경제 위기를 고용 불안과 취업대란 등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경제’ 이외의 다른 가치는 한가롭게 들린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취업공부를 시작해야 하고, 치열한 학점 전쟁과 영어, 면접 등 취업관문을 통과해야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의 정치적 무관심, 미국식 사고방식과 자본주의 경제관 등은 결국 젊은 세대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그들에게 투영되었을 뿐이다.

대학을 다니던 시기의 낙천낙선운동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애초부터 다른 진로를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새로운 희망과 역사를 시민사회에서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있는 6년여 동안 나름 열심히 생활해왔고 노력해왔다고 자평하지만 ‘희망’이라는 단어를 쉽게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단순히 시민사회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나빠지고, 정권의 변화 같은 외부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정작 인식하고 알아야할 시민들의 마음 상태와는 무관한 운동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생기기도 하고, 스스로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 우울한 생각이 들 때마다 답답해지곤 한다. 혹자는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는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하지만, 과연 발전적인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게다가 때로는 비민주적인 시민단체들의 내부적인 문제점을 마주 대하기도 하고, 한 가지 사안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을 때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를 때가 많다.

일례로 최근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확정한 추경예산을 공고했다. 물가안정대책의 일환으로 전기 가스요금 인상을 억제하던 정부가 한전전력공사에 6천680억원과 한국가스공사에 3천360억원에 보조금을 주기로 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고 적자를 세금으로 메운다는 것은 결국 전기를 적게 쓴 사람이 많이 쓴 사람을 도와주는 형국이며,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도와주는 셈이다. 게다가 국제 유가가 유동적이고 장기적으로 에너지수급부족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국고보조는 안 좋은 선례로 남을 것이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다른 에너지원인 천연가스와 석탄 등도 함께 가격이 많이 상승했다. 그러나 물가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정부 논리에 막혀 전기·가스요금을 단 한 차례도 올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전은 1조6천699억원, 가스공사는 8천400억원의 손실을 떠안았다. 책임을 느낀 정부가 손실분의 50%를 세금으로 지원하자고 국회를 설득했고, 이에 40%를 지원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전기요금이 장기간 동결되면서 1차 에너지인 석유나 가스보다 전환에너지인 전기를 많이 쓰는 아이니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1차 에너지의 40%만이 전기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전기만 물가안정대책으로 요금결정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지극히 모순적이다.

그러나 전기요금은 다른 에너지원과는 달리 물가안정대책 차원에서 요금이 결정되고 정부 물가안정대책회의에 참석하는 소비자단체들은 대부분 전기요금 동결을 끊임없이 요구해오고 있다. 물론 단순히 소비자의 권리와 입장만을 생각한다면 전기요금은 동결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본다면 전기요금 또한 국제가격 변동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같은 사안의 경우, 일반 시민들과 에너지시민단체, 소비자단체들 사이에 생각의 간극이 발생한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시민단체라면 하나의 그룹처럼 보이지만, 시민단체 내에는 많은 스펙트럼과 생각, 가치의 차이가 있다. 각각의 시민단체가 가지는 특수성과 입장에 따라 하나의 정책에 대해서도 많은 입장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언론이나 시민들은 시민단체의 스펙트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언론에서는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시민단체를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시민사회에 대한 이미지는 점차 왜곡되어간다. 한때 신뢰하는 기관·그룹 2위까지 올라갔던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는 점차 떨어져가고 있다.

과연 IMF 이후의 젊은 세대들에게 시민사회가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현실을 너무 모른다거나, 현실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다거나, 정치성이 강하다는 비판만 듣진 않을까. 내 또래 오래 활동하는 친구들이 점차 없어져가는 현실 앞에서 어떤 마음으로 시민운동을 해야 하는 것인지 많은 고민이 생긴다.


이버들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차장

이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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